어릴 적 어른들에게 흔히 듣던 말들 중 하나가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냐’라는 것이었습니다. 바꿔 말하면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이고 이것을 좀 더 거창하게 말하면 좋은 대우가 따르는 일이라면 다른 일보다 더 책임과 의무가 부가된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판사나 검사를 ‘영감님’이라고 불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다소 우습게 들리기까지 하는 영감님이라는 호칭과 관련해 개인적인 얘기가 있습니다. 국선변호를 하였던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제가 변호사를 막 시작할 무렵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제 사무실에 들어오면서 저를 변호사라고 부르지 않고 ‘영감님’이라고 하길래 ‘저는 판사가 아니고 변호사입니다’라고 말했음에도 계속해서 말끝마다 ‘영감님, 영감님’하는 것입니다. 연로하신 분으로부터 듣는 어색한 호칭에 내내 불편했지만 저를 칭하는 호칭에 대한 불편함보다는 사건에 대한 호소에 담긴 목소리의 절절함 때문에 더 이상 뭐라 하지는 못하고 상담을 마쳤던 기억이 납니다.

그날밤 선배 변호사들에게 낮에 있었던 얘길 하였더니 예전에는 판사뿐만 아니라 변호사들도 ‘영감님’이라고 부르던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영감은 본시 조선시대에 정삼품과 종이품의 벼슬아치를 이르던 말이었는데 현대로 오면서 급수가 높은 공무원이나 지체가 높은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로 쓰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일제강점기부터 판사나 검사들을 영감이라고 부르는 것이 보편화되었다고 합니다. 갑자기 영감타령을 하는 이유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 같은 변호사들도 영감님 대접(?)을 받고 싶다는 생각은 더욱 더 아닙니다. 그저 일반 국민이 ‘영감님’이라고 불렀던 그 사람들이 그 호칭에 담겨진 책임과 의무를 다하였는가를 생각해 보기 위함입니다. 지금 변호사를 포함한 법조인들에 대한 일반 국민의 차가운 시선은 ‘영감님’으로 상징되는 권위만을 누릴 뿐 거기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았던 과거에 대한 대답일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대다수 국민은 법집행이 공평하지 않고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영국의 철학자 홉스는 자기의 부, 권력, 비호세력 등을 믿고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와 자신이 하는 행동이 범죄인줄 알면서 법을 우습게 알고 고의적으로 범죄를 저지를 경우에는 중벌로 다스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범죄자들이 사회적으로 기득권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기득권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물론 그 힘을 이용해 처벌까지 피할 경우 사회공동체가 유지될 수 없다고 합니다.

지난 2011년 빈부격차 해소를 요구하며 일어났던 ‘월가를 점령하라’라는 시위가 한참일 때 아주 흥미로운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월터 샤이델과 스티븐 프라이즌이라는 두 역사학자는 카이사이를 시절의 로마와 2011년 민주주의 시대의 미국을 비교한 매우 의미 있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는데, 그 내용인즉 로마시절의 상위 1% 지배계급은 로마제국 전체 부의 16%를 독식했지만 미국의 경우 상위 1%가 40%의 부를 독식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구처럼 편중돼서는 안 되겠지만 자본주의사회에서 경제적인 차이가 있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대가 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돈 없는 것도 서러운데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공정한 법집행마저 차이가 난다면 정상적인 사회가 유지되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