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파산제도에 대한 단상
2014년 03월 24일(월) 00:00 가가
김 동 욱
광주지법 판사
광주지법 판사
저는 작년부터 개인파산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파산·면책신청이란 쉽게 말해 ‘빚을 갚을 능력이 없으니, 빚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법원에 신청하는 것입니다. 즉, 내가 갚아야 할 돈이 있으나, 갚을 수 없으니, 갚지 않아도 되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저는 10여 년 전 법학공부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A가 B에게 줄 돈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공부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줄 돈이 있는데 갚을 수 없고, 심지어 영원히 갚지 않아도 되도록 해달라니! 이건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가요! 그럼 돈을 빌려준 사람은 어떻게 되고, 성실하게 채무를 변제한 사람은 어떻게 된다는 말인가요?
그래서인지 처음 파산·면책신청 사건을 볼 때 ‘과연 진술내용이 진실일까?, 판사를 속여 채무를 면탈하려는 나쁜 채무자가 아닐까? 돈을 빌려 투기를 하거나 사치를 하지 않았을까?, 혹시 숨겨둔 재산이 없을까?’ 등에 초점을 맞추어 기록을 살피고, 꽤 ‘엄격하게’ 심문을 진행했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요. 수많은 사건을 마주하며 제게 작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순간 제 앞에 있는 채무자들은 ‘못 갚겠으니 배째라!’라고 말하지 않고, ‘살려 달라!’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돈도 없고, 빽도 없지만, 다시 살아보고 싶으니 제발 좀 살려 달라!’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개인파산·면책을 신청한 채무자들 중에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학창시절부터 시작된 고된 노동과 이자의 굴레에 얽매여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분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가정은 파탄상태에 이르러 가족의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는 경우도 꽤 있었습니다. 지독한 채권추심으로 불안, 우울 증세를 달고 사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대부분 채무자들은 빚진 죄인이라는 생각에 파산·면책을 신청하는 것을 몹쓸 짓(?)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 채무자들에게 ‘숨기고 있는 재산은 없는지, 가족 명의로 재산을 빼돌린 것은 아닌지, 진술 내용에 조금이라도 허위가 없는지’ 등을 무서운(!) 눈으로 캐물어 더욱 상처준 것은 아닌지 돌아보았습니다.
물론 일부지만 가족 명의로 재산을 은닉하고, 소득을 허위로 진술하며, 지인의 채무만 사전에 변제하는 등 도덕적 해이를 엿볼 수 있는 채무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부 채무자들 때문에 대부분의 ‘성실하지만 불운한’ 채무자들을 지나치게 의심하며 개개 사건을 접근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았습니다.
채권자의 정당한 권리 실현과 채무자의 갱생이라는 이념 중 어느 것을 우선시할 것인가에 따라 파산·면책제도의 운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과잉 금융공여가 만연하고, 소비자금융이 급격하게 발달하고 있으며, 가계부채는 1000조 원을 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세 모녀가 빚·생활고에 힘들어하다가 집주인에게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을 남기고 동반 자살하는 뉴스가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과연 국민으로부터 파산·면책의 권한을 위임받은 법원과 판사는 파산·면책제도를 어떻게 해석하고, 운영해야 할까요?
‘열 명의 범인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법언(法諺)이 있습니다. 이는 적법하게 수집된 각종 증거를 통해서도 유죄의 확신이 들지 않는 경우, 피고인을 단순한 의심만으로 처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판사도 열 명의 범인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위 법언을 파산·면책제도 운영에 조금 참고하면 너무 과한 것일까요?
저는 국민으로부터 사법권을 위임받은 판사입니다. 불편부당(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짐 없이 공평함)하게 사건을 처리해야 함을 숙명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동안 채무자들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려 하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을 열고 한걸음 나아가고자 합니다. 더 이상 세 모녀의 이야기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는 10여 년 전 법학공부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A가 B에게 줄 돈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공부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줄 돈이 있는데 갚을 수 없고, 심지어 영원히 갚지 않아도 되도록 해달라니! 이건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가요! 그럼 돈을 빌려준 사람은 어떻게 되고, 성실하게 채무를 변제한 사람은 어떻게 된다는 말인가요?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요. 수많은 사건을 마주하며 제게 작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순간 제 앞에 있는 채무자들은 ‘못 갚겠으니 배째라!’라고 말하지 않고, ‘살려 달라!’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돈도 없고, 빽도 없지만, 다시 살아보고 싶으니 제발 좀 살려 달라!’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일부지만 가족 명의로 재산을 은닉하고, 소득을 허위로 진술하며, 지인의 채무만 사전에 변제하는 등 도덕적 해이를 엿볼 수 있는 채무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부 채무자들 때문에 대부분의 ‘성실하지만 불운한’ 채무자들을 지나치게 의심하며 개개 사건을 접근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았습니다.
채권자의 정당한 권리 실현과 채무자의 갱생이라는 이념 중 어느 것을 우선시할 것인가에 따라 파산·면책제도의 운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과잉 금융공여가 만연하고, 소비자금융이 급격하게 발달하고 있으며, 가계부채는 1000조 원을 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세 모녀가 빚·생활고에 힘들어하다가 집주인에게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을 남기고 동반 자살하는 뉴스가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과연 국민으로부터 파산·면책의 권한을 위임받은 법원과 판사는 파산·면책제도를 어떻게 해석하고, 운영해야 할까요?
‘열 명의 범인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법언(法諺)이 있습니다. 이는 적법하게 수집된 각종 증거를 통해서도 유죄의 확신이 들지 않는 경우, 피고인을 단순한 의심만으로 처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판사도 열 명의 범인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위 법언을 파산·면책제도 운영에 조금 참고하면 너무 과한 것일까요?
저는 국민으로부터 사법권을 위임받은 판사입니다. 불편부당(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짐 없이 공평함)하게 사건을 처리해야 함을 숙명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동안 채무자들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려 하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을 열고 한걸음 나아가고자 합니다. 더 이상 세 모녀의 이야기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