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서 저는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말을 할 수 없어서 울음으로 의사표현을 하는 둘째는 물론이고 요즘 부쩍 우는 일이 잦아진 첫째까지….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소리 높여 우는 아이들이 야속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아이들의 ‘울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어느 책에서 서양의 육아법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는데, ‘S.L.O.W. 육아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S(Stop) 아기가 울 때는 무조건 울음을 멈추게 하기 전에 울음소리를 듣고 아기의 의사전달을 이해한다.

L(Listen) 아기의 울음을 잘 듣는다. 아기가 우는 시간이 언제인지, 울기 전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꼼꼼하게 살핀다.

O(Observe) 아기가 울 때 울음소리 외에도 몸짓, 표정 등을 동시에 관찰한다.

W(What’s up) 아기의 울음을 듣고 관찰한 내용을 종합해 아기의 의사를 추론한다.

저는 이 내용을 접하는 순간 ‘아차’싶었습니다. 아이가 울기 전에 어떠한 일들이 있었고 아이가 어떠한 몸짓과 표정으로 울고 있는지 살펴보려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아이가 우는 불편하고 심란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행동하기 바빴던 제 평소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이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육아뿐만 아니라 업무 과정에서도 나타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듭니다.

법원에 찾아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법적인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달리 찾아갈 곳이 별로 남아있지 않은 이들입니다. 각자 처한 상황이 같을 수 없기에 그로부터 비롯된 문제의 구체적인 모습들도 다양할 수밖에 없고, 그들이 법원에 나와서 하려는 이야기도 당연히 같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간절히 말하고자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그들의 처지가 어떠한지에 대해서 살펴보려는 고민을 다하지 않고, 단지 문제 해결에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로 그들의 세세한 목소리를 주의 깊게 듣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앞으로 저는 ‘S.L.O.W. JUDGE(판사)’가 되고자 합니다. 핵심적인 쟁점과 관련이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춰 서서 당사자들을 바라보려 합니다. 일단 귀 기울여 그들이 어떠한 것을 원하는지 듣고자 합니다.

그들이 법원에까지 나와 이야기를 하게 된 전후 사정은 어떠한지도 살펴보려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친 다음, 비로소 법률 지식을 적용하여 문제의 해결 방법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물론 같은 사건을 처리하는 데에 투입되는 시간과 노력이 이전에 비해서 늘어날 것이고, 제게 주어진 제한된 시간과 능력 안에서는 당사자들의 모든 이야기를 빠짐없이 들을 수도, 그들의 사정을 속속들이 이해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무엇인지도 파악하지 못한 채 정답을 궁리하는 것은 올바른 문제 해결 방법이 아닐 것이기에, 이러한 S.L.O.W.의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비록 당사자들의 문제를 속 시원하게 해결해 주지는 못하더라도, 길을 가다 넘어져 아파하는 이에게 배고픔을 달래라고 빵을 주거나, 무더위에 땀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이에게 추위를 이겨내라고 외투를 입히는 우는 더 이상 범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리고 적어도, 자신의 가슴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상처받은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어떤 이로부터 그 이야기를 시작할 기회 자체를 앗아가는 안타까운 일은 만들지 않으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