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불신 그리고 해법 찾기
2014년 05월 12일(월) 00:00 가가
이 대 로
광주지법 순천지원 판사
광주지법 순천지원 판사
주말에 읽었던 프란츠 카프카의 미완성 장편소설인 ‘소송’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유능한 은행원인 K는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된다. K는 자신의 죄목이 무엇인지 묻지만 누구도 설명해 주지 않는다. 화가 난 K는 법원을 찾아가 예심판사와 말다툼을 하며 소란을 피운다. 그곳에서 부패하고 무기력한 직원들을 보며 K는 더욱 법원을 믿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소송은 죄가 명백하다는 것을 전제로 진행되고 K의 불신과 적대적인 태도는 상황을 악화시킨다. 다급해진 K는 변호사와 법원직원 등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그들은 판사의 환심을 사거나 시간을 끄는 방법 따위만을 알려 줄 뿐 진정한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결국 K는 무죄입증에 실패하고 사형집행인이 그를 찾아온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K는 자신의 죄가 과연 무엇인지, 미처 생각해내지 못한 반대 변론은 없는지를 열심히 생각하지만, 결국은 죽음을 피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개 같은 상황’이라고 욕을 하며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형사재판을 하다 보면 자신이 ‘도대체 왜?’ 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 강하게 따져 묻는 피고인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그들은 주인공 K처럼 화가 나 있다. 수사기관이 고소인들과 한통속이라거나 자신들의 말은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법정에 세웠다는 것이다. 불신은 이제 법원을 향한다. 어차피 결과는 뻔한 것 아니냐고 되묻는 사람들, 가벼운 질문조차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 하고 싶은 말만 큰 소리로 외치는 사람들, 그 중에는 과거에 소송을 했던 경험으로 인하여 더 이상 법원을 믿을 수 없다는 이들도 있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의 비난도 듣게 된다.
안타깝게도 재판에 대한 사회 일각의 불신은 뿌리가 깊다. 과거에는 법조인이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동시에 소수의 엘리트들이 사법권을 독점한다는 인상도 강했다. 사람들은 재판은 판사, 검사, 변호사들끼리 알아서 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부당한 거래도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가지게 되었고, ‘법조브로커’, ‘전관예우’,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들이 생겨났다.
우리 법원은 재판불신에 대한 대책으로 오래전부터 공판중심주의를 지향해 왔다. 모든 증거는 공개된 법정에서 내용을 확인하고, 그에 대한 소송당사자의 의견을 들은 후에 증명력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더 이상 법관이 집무실에서 외롭게 사건기록을 뒤져가며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법정에서 공개됨으로써, 어떠한 자료를 기초로 판결이 선고될지 예측할 수 있게 되고 각종 청탁이나 관행이 재판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오해의 소지도 줄어들고 있다.
소설 속에서 K가 실제로 사형을 당할 만한 죄를 지었는지 여부는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K가 법정에서 자신을 방어할 기회를 제대로 가지지 못했다면, 결론이 정당하다고 해도 그 재판에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은 어쩌면 현대사회에 보내는 작가의 경고일 수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인 이상 수사와 재판도 미진한 점이 있을 수 있는데, 이 점을 간과하면 아무리 훌륭한 소송제도를 갖추어도 당사자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당사자가 거친 태도로 억지스러운 주장을 하더라도, 이를 더욱 경청하는 것이 재판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법원이 그들의 주장을 흘려듣지 않고 성실하게 사실관계를 확인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언젠가는 그들도 법원과 재판의 지지자로 돌아설지 모른다.
소설을 읽으면서 필자는 작년에 진행하였던 절도사건을 머리에 떠올렸다. 피고인은 자신이 특별한 전과가 없음에도 범죄자로 몰렸다는 생각에 K처럼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여서, 흥분을 진정시키는 데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우여곡절 끝에 증거조사를 마치고 보니, 피고인에게 억울한 사정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잘못이 없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리하여 재판을 마치고 벌금형을 선고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필자도 모르게 “피고인의 주장을 여러모로 고려해 봤지만, 증거들에 따라 유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라는 말을 하고 말았다.
판결은 판사의 당연한 업무인데 그때 왜 미안하다는 말이 튀어나왔을까. 어쨌든 피고인은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밖으로 나갔지만, 항소를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재판에 대한 더 이상의 기대를 접었던 것인지, 유죄라고 볼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해하고 결과에 승복한 것인지, 아니면 필자의 마지막 말이 위안이 되었던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그 때의 그 피고인을 떠올리면서, 앞으로도 당사자들이 신뢰하고 납득할 수 있는 재판을 위해 앞으로 더욱 노력하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된다.
유능한 은행원인 K는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된다. K는 자신의 죄목이 무엇인지 묻지만 누구도 설명해 주지 않는다. 화가 난 K는 법원을 찾아가 예심판사와 말다툼을 하며 소란을 피운다. 그곳에서 부패하고 무기력한 직원들을 보며 K는 더욱 법원을 믿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소송은 죄가 명백하다는 것을 전제로 진행되고 K의 불신과 적대적인 태도는 상황을 악화시킨다. 다급해진 K는 변호사와 법원직원 등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그들은 판사의 환심을 사거나 시간을 끄는 방법 따위만을 알려 줄 뿐 진정한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결국 K는 무죄입증에 실패하고 사형집행인이 그를 찾아온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K는 자신의 죄가 과연 무엇인지, 미처 생각해내지 못한 반대 변론은 없는지를 열심히 생각하지만, 결국은 죽음을 피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개 같은 상황’이라고 욕을 하며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소설 속에서 K가 실제로 사형을 당할 만한 죄를 지었는지 여부는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K가 법정에서 자신을 방어할 기회를 제대로 가지지 못했다면, 결론이 정당하다고 해도 그 재판에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은 어쩌면 현대사회에 보내는 작가의 경고일 수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인 이상 수사와 재판도 미진한 점이 있을 수 있는데, 이 점을 간과하면 아무리 훌륭한 소송제도를 갖추어도 당사자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당사자가 거친 태도로 억지스러운 주장을 하더라도, 이를 더욱 경청하는 것이 재판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법원이 그들의 주장을 흘려듣지 않고 성실하게 사실관계를 확인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언젠가는 그들도 법원과 재판의 지지자로 돌아설지 모른다.
소설을 읽으면서 필자는 작년에 진행하였던 절도사건을 머리에 떠올렸다. 피고인은 자신이 특별한 전과가 없음에도 범죄자로 몰렸다는 생각에 K처럼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여서, 흥분을 진정시키는 데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우여곡절 끝에 증거조사를 마치고 보니, 피고인에게 억울한 사정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잘못이 없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리하여 재판을 마치고 벌금형을 선고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필자도 모르게 “피고인의 주장을 여러모로 고려해 봤지만, 증거들에 따라 유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라는 말을 하고 말았다.
판결은 판사의 당연한 업무인데 그때 왜 미안하다는 말이 튀어나왔을까. 어쨌든 피고인은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밖으로 나갔지만, 항소를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재판에 대한 더 이상의 기대를 접었던 것인지, 유죄라고 볼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해하고 결과에 승복한 것인지, 아니면 필자의 마지막 말이 위안이 되었던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그 때의 그 피고인을 떠올리면서, 앞으로도 당사자들이 신뢰하고 납득할 수 있는 재판을 위해 앞으로 더욱 노력하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