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봄이 되면 검사들은 1일 선생님이 된다. 관내 초등학교, 중학교 및 고등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학교폭력, 법질서 준수 등에 관해 1시간 여 남짓 강의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곳 광주지방검찰청에서 세 번째 봄을 맞는 내가 그동안 찾아간 광주 지역 학교만도 다섯 곳이나 된다. 푸르른 녹음이 우거지는 계절에 왁자지껄한 학생들을 만나는 것도, 십 여 년만에 다시 학교로 돌아가 수업 종소리를 듣는 것도 꽤 신선하다. 여검사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학생들과 눈을 맞추는 것도 재미있다.

얼마 전 한 중학교 교감선생님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스승의 날 행사로 각종 직업 체험 수업을 개설할 예정인데, 장래 희망이 검사인 학생들이 서른 명이나 모였다며 그 학생들을 위해 강의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하필 업무가 많이 몰려 바쁜 때였지만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서른 명이나 된다는데 도저히 그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올해 스승의 날, 나는 그렇게 서른 명의 학생들의 1일 선생님이 되었다. 세 학년을 합쳐서 100명 남짓 되는 작은 학교에서 학년에 상관없이 서른 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모여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실에 들어서는데 “와!”하는 함성이 들려왔다. 생각보다 젊은, 그리고 여검사가 강의를 하러 온 것에 놀란 듯했다. 한 학생이 “여자 검사님 처음 봐요!”라고 이야기 하길래 “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예쁜 여검사를 기대한 것 아니겠지? 그런 검사는 없단다.”라고 답하였더니 다들 웃었다.

간략하게 내 소개를 하고 검사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검찰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야기해주었다. 아이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돈 얼마나 벌어요?”, “공부 얼마나 해야 검사 되요?”라는 단골 질문도 역시 빠지지 않았고, “시체 본 적 있어요? 무섭지 않나요?”라는 질문도 나왔다. 초임검사 시절 당직을 하면서 대조동 나이트클럽 화재 사건의 변사체 지휘를 한 적이 있었다. 당시 구조를 마치고 나오던 3명의 소방관이 무너져 내린 건물 더미에 깔려 순직하였는데 그 분들의 사체 검시를 지휘하며 참 마음이 아팠다. 그런 분들을 뵈면서 무섭다는 생각을 할 수는 없다고 이야기 해주었더니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범죄로 인해 사망한 피해자를 마주할 때도 마찬가지다. 사망하여 검사 앞에 온 분들은 모두 안타까운 사연이 있는 분들이고 그 억울함을 풀어 주는 것이 검사의 일이기 때문에 무섭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고 답해 주었더니 몇몇의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왜 검사가 되셨어요?”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순간 가슴이 조금 먹먹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까지 학교생활기록부에 나의 장래 희망은 항상 ‘검사’라고 적혀있었다. 한 번도 다른 꿈을 이야기 하지 않는 나를 친구들은 신기해했다. 어린 시절의 나였다면 왜 검사가 되고 싶느냐는 질문에 “검사는 정의를 실현하는 사람이니까요. 세상을 깨끗하고 밝게 만드는 사람이니까요.”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검사가 되어 아이들로부터 그런 질문을 받으니 선뜻 답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의 내가 어린 시절 내가 꿈꾸던 검사로 살고 있는지, 그 마음 그대로 일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기 때문이다. 조금 생각하다가 “너희들이 살아갈 세상을 조금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 수 있는 직업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검사가 되었어. 그런데 오늘 너희와 이야기하다 보니 내가 정말 그런 일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는구나.”라고 대답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이야기 해주었다. 내가 검사가 되었을 때 친구들의 반응은 다 같았다고.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하더니 결국 검사가 되는구나!”였다고. 여러분이 가지는 꿈을 믿고 끊임없이 꿈을 꾸면 결국 이루어 질 것이라고. 그래서 언젠가 검찰청에서 후배 검사가 된 여러분을 만나고 싶다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내 이야기에 귀기울여준 아이들이 고마웠고 그 시간이 참 감사했다. 처음 검사를 꿈꾸던 그 때 그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아이들이 도리어 나의 선생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