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덧 계절이 바뀌어, 하루 종일 장맛비가 내리고 있다.

올해 2월 광주지검에 발령받고 첫 출근하던 날, 새벽 기차에서 내렸을 때 차가운 공기에 하얀 입김까지 나왔던 것을 생각하면 시간이 참 빠르다는 걸 실감한다. 삭막하던 앞마당에 연두색 새싹이 돋더니 금세 봄꽃이 피었다가 지고, 이젠 온갖 이름 모를 풀들과 벌레들까지 가세하여 여름이 되었음을 알려준다.

바쁜 일상 속에서 계절의 바뀜을 그때그때 알아채지 못하고 봄의 싱그러움이나 여름의 에너지를 만끽하며 살지도 못하지만, 출퇴근길에 문득 발견한 작은 꽃이나 수수한 빛을 내고 있는 별을 보면서 소소한 기쁨을 느끼곤 한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지 뭐’ 이렇게 위안을 삼으면서.

광주지검에서 이제 5개월 정도밖에 근무하지 않았지만, 예상하건대 나에게 광주지검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첫 출근 날 따뜻한 커피와 예쁘게 깎은 연필을 건네며 친절하게 맞아준 우리 검사실 식구들과, 최근 다리를 다쳐 절뚝거릴 때 평소 안면이 없었는데도 먼저 다가와 손을 잡아주고 부축을 해준 광주지검 직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검찰청에 이처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광주지리를 잘 모르고 운전에 서툴러 택시를 종종 이용하는데, 기사님들이 검찰청 정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휴, 검찰청은 괜히 무서워요. 살면서 이런 데는 가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다.

하긴 검찰에서 누구를 구속하고, 어디를 압수수색하고, 누구를 재판에 회부했다 등등 흉흉한 느낌의 검찰기사가 빠지는 날이 없으니, 언뜻 검찰이 차갑고 무시무시해 보일수도 있겠다. 필자야 어릴 때부터 탐정소설이나 미스터리 수사물을 보며 검사의 꿈을 키웠던 터라 검찰청이 삶과 꿈의 터전이지만, 일반인들에게 검찰은 우스갯말로 ‘돈을 트럭으로 갖다 줘도 가고 싶지 않은 곳’일 것이다.

검찰은 국가의 형벌권을 행사하는 곳이므로 본질적, 태생적으로 차갑고 어두운 곳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은 맞다. 관공서이자 ‘수사를 위한 공간’이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여느 사기업처럼 건물을 화려하고 멋지게 꾸밀 수도 없다. 게다가 보안유지상 청사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으니, 건물에 딱 들어서는 순간 죄를 짓지 않았어도 죄를 지은 것처럼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도 있다.

하지만 검찰청 앞마당에 꽃이 피고 작은 별이 반짝이듯이, 꽃처럼 마음이 예쁘고 별처럼 홀로 어두운 곳에서 남모르게 빛을 내며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또한 검찰청이다. 자랑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도 외계인이 아니라 멀쩡한 한 가정의 아빠·엄마이자 아들딸이니 어쩌면 당연한 말일 수도 있다. 사람 사는 거, 사실 다 똑같다.

얼마 전 광주지검 현관에 ‘겸손, 배려, 경청으로 국민과 함께하는 검찰이 되겠습니다’라는 현판이 걸렸다. 겉으로 내세우기 위한 공허한 말이 아니다. 조금 더 노력하자는 광주지검 직원들의 바람이자 다짐이다. 이런 작은 노력들로 지금 당장 검찰에 대한 이미지가 확 바뀌지는 않더라도, 가까운 미래에 검찰이 따뜻하고 배려하는 국민의 검찰로 다가가리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