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IBM의 ‘왓슨’ 프로그램이 퀴즈쇼에 출연하여 역대 인간 챔피언들을 물리치고 우승한 이후 인공지능은 다시 사람들의 큰 관심을 받게 되었다. 이제 애플의 시리, 구글의 무인자동차 같은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한 제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고, 주식투자나 신문기사 작성을 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개발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이처럼 전문가의 영역으로 생각되던 작업을 수행하는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컴퓨터가 법률가처럼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되었다.

컴퓨터가 법학적 사고를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다면 어떤 경우에 컴퓨터가 법학적 사고를 한다고 볼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컴퓨터 과학과 인공지능의 아버지로 불리는 앨런 튜링이 제안한 튜링 테스트가 답을 줄 수 있는 것 같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튜링은 사람과 컴퓨터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대화 상대편이 컴퓨터인지 아니면 진짜 인간인지 대화 당사자인 사람이 구분할 수 없다면 그 컴퓨터는 진정한 의미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는 주장을 했다. 마찬가지로 컴퓨터가 어떤 판결을 제시받고 그 판결과 같은 법적 쟁점을 다룬 판결을 찾으라는 작업을 지시받았는데, 인간인 법률가와 비슷한 수준으로 관련 판결들을 찾아낸다면 그 컴퓨터는 법학적 사고 능력을 갖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법학적 사고 능력을 가진 컴퓨터 프로그램이 개발된다고 해도, 그 프로그램이 법률가의 일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법률가들은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동일한 법적 쟁점을 다룬 판결을 찾는 것은 어떤 법률규정의 적용을 위한 비교기준을 마련하는 것일 뿐, 문제된 사례가 검색된 사건들의 집합에 포함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인간 고유의 통찰력이 필요한 지적 작업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법률가의 일을 할 수 없는 지능적 프로그램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더구나 법률가들은 참조판례와 같은 인용색인을 통해 관련 판례를 효율적으로 잘 검색하고 있는데, 굳이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지능적 프로그램을 만들 필요가 있는가?

현재에도 인용색인이 잘 구축되어 있긴 하지만 그 대상이 주로 대법원 판결에 국한되어 있고, 하급심 판결에 대한 검색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추세를 감안하면 보다 효율적인 판례 검색을 위해 지능적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법학적 사고 능력을 가진 프로그램은 판사들의 판례 검토뿐만 아니라 검사의 공소장 작성, 변호사의 소장이나 준비서면 작성 업무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IBM의 ‘왓슨’이 출연한 퀴즈쇼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인간 출연자 2명은 마지막 가장 어려운 문제를 맞혔지만, ‘왓슨’은 오히려 스튜디오에 있는 모든 사람이 놀랄 정도의 엉뚱한 답을 내놓는 때였는데, 이 장면이 인간과 컴퓨터의 미래를 잘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

스티븐 호킹과 같은 일부 과학자들은 미래에 인공지능의 사고 역량이 인간의 뇌를 초월해 인류에 재앙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지만, 컴퓨터는 인간의 지적 작업에 도움을 줄 수 있을 뿐이며, 법률 분야가 지능적 프로그램이 인간의 지적 작업을 보조하는 가장 모범적인 사례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