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따뜻한 검사
2014년 09월 15일(월) 00:00 가가
김 은 정
광주지검 검사
광주지검 검사
“용기있는 검사, 따뜻한 검사, 바른 검사, 공평한 검사, 진취적인 검사, 어떤 검사가 되고 싶은지?”
5년 전 신임검사 교육 첫 5일간 갓 임관한 신임검사들에게 던져진 질문이었다. 우리는 5일간 각각의 주제에 관하여 풍부한 경험을 가진 교수님들로부터 강의를 듣고, 토론하면서 어떠한 검사가 되어야 할지 고민하였다. 아마도 임관 후 한달동안 처음 접하는 ‘실제 사건’ 앞에서 실무적인 문제로 전전긍긍하였을 햇병아리 검사들에게 구체적인 실무교육에 앞서 임관시 검사 선서를 통해 다짐하였던 검사로서의 자세에 관하여 생각하게 하려는 법무연수원의 배려가 아니었나 싶다.
5주간의 신임검사 교육을 마친 후 간단한 설문조사가 있었고, 설문지에서 묻는 ‘어떠한 검사가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주저없이 ‘가슴이 따뜻한 검사’라고 기재하였다. 경찰관이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중학교 때 검사가 되기 위하여 법대 진학을 결심했던, 검사란 ‘피해자를 울리는 나쁜 사람을 잡아넣는 정의의 사도‘였던 내게는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고,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가슴이 따뜻한 검사야말로 검사로서의 최상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5년여간 많은 사건을 수사하였고, 그 중에는 피해자의 눈물을 ‘제대로’ 닦아준 사건도 상당히 있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다른 청 근무 당시 여성 무속인을 사기죄로 직구속한 사건인데, 그 내용은 한 무속인이 자신을 찾아온 지적 장애 여성에게 ‘굿을 하지 않으면 뇌졸중으로 쓰러져 있는 남편이 곧 죽는다’라는 등의 거짓말을 하여 수년간에 걸쳐 유일한 재산인 부동산 등을 담보로 대출까지 받게 하면서 2억원 상당의 전재산을 굿 값 명목으로 편취하였다는 것이었고, ‘사경’ 단계에서 구속영장을 신청하였으나 피의자는 자신이 빌려준 돈을 변제받은 것 뿐이라는 취지로 거짓 참고인을 내세워 참고인 진술을 이유로 영장이 기각된 후 검찰에 송치된 사건이었다.
검찰 송치 후 관련 계좌 추적과 여러 명의 참고인을 추가로 조사하여 위 피의자측 참고인 진술의 신빙성을 탄핵한 후 구속영장을 재청구하여 구속기소하였고, 1심에서 허위 증언을 한 위 참고인은 위증죄로 인지, 구속기소되었으며 피의자는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자 항소심에 이르러 범행일체를 자백하면서 피해액을 변제하고 피해자와 합의하였다. 피해자는 사건 당시 전 재산을 편취당한 후 시댁에서 쫓겨나 식당일로 두 아이와 함께 생계를 이어나가면서도 두 아이의 방황에 힘들어 하였는데 피해자에게 정신장애 4급의 장애등급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아이들의 전문기관 상담을 병행하면서 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통해 생활비 지원을 받게 해 주었다. 처음 만났을 당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던 그녀는 재판이 마무리될 즈음에는 어느덧 전화기 너머로 밝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어머니가 되어 있었다.
사람이 살고 있는 주거지를 중장비를 동원하여 강제철거해버렸음에도 인접지역에서 공사를 하던 인부들이 착오로 철거한 것이라는 취지로 단순 재물손괴죄로 의율, 약 30쪽 분량의 기록으로 송치된 사건을 집중 수사하여 사실은 오토캠핑장 개발 중 땅을 팔지 않겠다는 원주민을 압박하기 위해 철거용역을 동원, 피해자의 주거를 강제 철거한 것이라는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고 오토캠핑장 개발업자 등 수 명을 인지, 구속하여 하루아침에 주거를 잃게 된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준 사건도 있었다.
5년차 검사 생활이 한창인 요즈음 신임검사 교육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면서 과연 내가 따뜻한 검사가 되어 가고 있는지 되돌아본다. 사건이 많다는 이유로 피해자들의 억울한 호소를 흘려들은 채 사건을 처리하지는 않았는지, 사건관계인들의 각종 면담신청과 통화요구를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하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느라 피의자들의 목소리를 듣는데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어느덧 초심과는 꽤 멀어져 있는 나의 머릿속으로 참으로 부끄럽고 후회되는 장면들이 스쳐 지나간다.
특히 피의자들에게 지나치게 엄격했던 것은 아닌지, 피의자들 역시 범행에 이르게 된 각각의 사정이 있고, 가족이 있고, 후회와 반성의 마음이 있었을 것인데 나는 과연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었는지 반성하게 된다.
오늘 아침 출근을 하기 위해 택시를 타고 검찰청으로 가자고 하니 기사 아저씨가 대뜸 “어이쿠∼ 그렇게 무서운 곳은 왜 가세요?”하고 되묻는다. 검사실이 이웃집 사랑방 같으면 아니 될 말이겠지만 죄는 미워하되 사람만은 따뜻하게 대하고, 피의자들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일 수 있는 따뜻한 검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하면서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 ‘우리방’으로 들어선다.
5년 전 신임검사 교육 첫 5일간 갓 임관한 신임검사들에게 던져진 질문이었다. 우리는 5일간 각각의 주제에 관하여 풍부한 경험을 가진 교수님들로부터 강의를 듣고, 토론하면서 어떠한 검사가 되어야 할지 고민하였다. 아마도 임관 후 한달동안 처음 접하는 ‘실제 사건’ 앞에서 실무적인 문제로 전전긍긍하였을 햇병아리 검사들에게 구체적인 실무교육에 앞서 임관시 검사 선서를 통해 다짐하였던 검사로서의 자세에 관하여 생각하게 하려는 법무연수원의 배려가 아니었나 싶다.
사람이 살고 있는 주거지를 중장비를 동원하여 강제철거해버렸음에도 인접지역에서 공사를 하던 인부들이 착오로 철거한 것이라는 취지로 단순 재물손괴죄로 의율, 약 30쪽 분량의 기록으로 송치된 사건을 집중 수사하여 사실은 오토캠핑장 개발 중 땅을 팔지 않겠다는 원주민을 압박하기 위해 철거용역을 동원, 피해자의 주거를 강제 철거한 것이라는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고 오토캠핑장 개발업자 등 수 명을 인지, 구속하여 하루아침에 주거를 잃게 된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준 사건도 있었다.
5년차 검사 생활이 한창인 요즈음 신임검사 교육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면서 과연 내가 따뜻한 검사가 되어 가고 있는지 되돌아본다. 사건이 많다는 이유로 피해자들의 억울한 호소를 흘려들은 채 사건을 처리하지는 않았는지, 사건관계인들의 각종 면담신청과 통화요구를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하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느라 피의자들의 목소리를 듣는데 소홀하지는 않았는지. 어느덧 초심과는 꽤 멀어져 있는 나의 머릿속으로 참으로 부끄럽고 후회되는 장면들이 스쳐 지나간다.
특히 피의자들에게 지나치게 엄격했던 것은 아닌지, 피의자들 역시 범행에 이르게 된 각각의 사정이 있고, 가족이 있고, 후회와 반성의 마음이 있었을 것인데 나는 과연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었는지 반성하게 된다.
오늘 아침 출근을 하기 위해 택시를 타고 검찰청으로 가자고 하니 기사 아저씨가 대뜸 “어이쿠∼ 그렇게 무서운 곳은 왜 가세요?”하고 되묻는다. 검사실이 이웃집 사랑방 같으면 아니 될 말이겠지만 죄는 미워하되 사람만은 따뜻하게 대하고, 피의자들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일 수 있는 따뜻한 검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하면서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 ‘우리방’으로 들어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