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지혜로운 왕인 ‘솔로몬’은 재판할 때 당사자의 상황과 심리까지 파악하여 ‘단 번’에 살아있는 아기의 진정한 생모를 가려준다. 이와 같이 단 한 번에 당사자와 일반국민까지도 납득시키는 재판을 한다면 모를까, 재판이 1심에서 끝나지 않고 항소와 상고까지 거치면서 지루한 고비용의 공방전이 되기도 한다. 소송의 이념이야 공정, 신속, 저비용이라지만 현실을 돌아다보면 꼭 그렇지 않다. 이러한 주범으로 우리나라에서 상고사건의 폭주를 꼽는다. 재판에서 당사자에게 3심을 보장한다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인 재판청구권의 보장이라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운영의 측면에서는 과도한 상고사건으로 말미암아 대법원이 원래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발생하였다.

즉, 2002년도에 대법원에 접수된 상고심 사건이 1만8600건이었는데 2012년도에 3만5776건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고, 상고율도 25%에서 36%로 증가했다. 쏟아지는 일반 사건들을 처리하느라 대법관들이 ‘정책 판단’과 ‘법률해석’이라는 본래 기능에 소홀할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법관 수는 대법원장을 포함하여 14명이다. 상고사건은 통상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2명 중에서 대법관 4명이 1부를 구성하여 3부가 사건을 처리한다. 산술적으로 대법관 1명이 1년에 처리해야 할 상고사건이 3000건에 육박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러한 현재의 시스템 하에서 상고사건의 대폭적인 증가는 상고심 개편 문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인식하게 하였고, 법조계에서 그 동안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다.

먼저 2013년도 상고사건 처리 내용을 보면 3만5115건이 처리되었는데, 그 중 심리불속행 결정이 54%이고 파기율이 6.5%이며 전원합의체 판결이 22건에 이르고 있다. 이 통계에서 파기율이 6.5%에 불과한 것만 보아도 현재 무분별한, 혹은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상고까지 이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상고심 개편의 문제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그 동안 상고심 개편과 관련해 대안으로 제시된 것은 ▲상고허가제 등 상고를 제한하는 방안 ▲대법원 외에 별도로 상고심을 담당하는 상고법원을 설치하는 방안 ▲대법원에 대법관 외에 상고심을 처리하는 법관을 두는 방안 ▲대법관 수를 증원해 1인당 처리사건 수를 줄이는 방안 등이었다. 현재 유력한 의견으로는 대법관 증원 방안과 상고법원의 설치 방안이다. 양자의 주장 모두 상고심 개편방향에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하지만 접근방법에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의 실정에서 어떠한 개편방안이 합리적일까. 대법관 증원 주장은 국민의 재판청구권으로서 3심제가 헌법상 보장된 제도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 헌법은 대법원에 의한 3심제를 규정하고 있지 않다. 만약 대법관 수를 대폭 증원한다면 모든 법관이 사건 심리에 참여하는 ‘원벤치(one-bench)’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된다.

23명으로 구성된 독일 연방일반법원의 ‘통합 대재판부’나 19명으로 구성된 프랑스의 ‘충원합의부’가 심리를 활성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과 캐나다가 9명, 영국이 12명, 호주가 7명의 대법관을 두고 있는 점 등을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14명은 전원합의가 가능하다고 하는 15명의 근사치이다. 상고심 개편안은 우리 사법제도의 방향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주제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사실판단의 경계까지 넘다드는 현재의 상고심보다는 일반 상고사건은 상고법원에서 어느 정도 경륜 있는 법관에 의하여 처리하게 하고, 대법원의 원래 기능인 통일된 법령해석의 제시와 국가의 최종적 법적 가치판단을 제공하는 법률심으로서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적절하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