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속칭 ‘도가니 사건’에 이어 그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발생한 2012년 나주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 필자가 광주지검에 재직하는 동안 우리 고장에서 발생한 이들 두 사건은 전 국민에게 말할 수 없는 충격과 분노를 안겨주었다.

위 사건들을 비롯한 잔혹한 성폭행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하면서 성폭력 처벌법은 지속적으로 강화되었고, 성폭행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수사와 재판절차에 많은 개선이 있었다. 2013년 6월 이후에는 피해자가 성범죄자를 고소하지 않더라도 처벌하게 되었고, 성범죄자의 신상을 등록하고 인터넷 등을 통하여 공개하는 등 성폭력 범죄의 재범방지를 위한 여러 가지 제재가 추가되었다.

필자가 최근 광주지검에서 성폭력전담 검사로 재직하게 되면서 느낀 소감은 한마디로 ‘놀라움’이었다. 먼저, 매일 시간을 가리지 않고 걸려오는 경찰청 성폭력 전담 수사팀의 전화를 받으며 우리 고장에서 이렇게 많은 성폭력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또한 검찰청에 접수되어 배당되는 성폭력 사건들을 접하며 범죄 유형의 다양함에 또 한 번 놀라게 되었다.

그러나 필자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범인들의 한결같은 태도이다. 성폭력 사건에서는 범행을 자백하며 선처를 호소하는 피의자는 찾아보기 매우 힘들다. 성폭력 사건의 범인들이 하는 많은 변명 중의 하나는 ‘피해자도 원했다.’는 것이다. 사건의 정황이나 증거로 보아 ‘내가 안 그랬다.’고 오리발을 내밀 수 없을 때 등장하는 변명으로, 주변사람들이 피해자를 사건 발생의 책임자로 생각하게 만들어 피해자에게는 성폭행 보다 더 큰 상처를 주게 된다. ‘같이 술을 마셨으니까 만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가 만나자고 했는데 거부를 안했다.’, ‘때리거나 협박하거나 강압적인 행위를 한 적이 없다.’ 등. 심지어는 자신보다 20살 이상이나 어린 종업원을 추행하고도 피해자와 사귀기 시작했다고 변명하는 피의자도 있었다.

성폭력 사건은 시간과 장소, 피해자와 범인의 나이, 직업 등을 가리지 않고 발생한다. 피해자의 나이는 5살 아동부터 80대 노인까지, 피의자도 중·고등학생들부터 80대 노인까지 다양하다. 전 국민이 이용하는 스마트폰을 통해, 혼잡한 버스와 지하철에서, 가정이나 직장과 같은 평범한 공간 속에서 다양한 종류의 성적 침해행위가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성폭력 범죄는 더 이상 피해자가 위험한 장소에 가지 않고 일찍 귀가하는 등의 방법으로 스스로 피해갈 수 있는 범죄가 아니다. 점점 강화된 성폭력 처벌법 등 제도적으로만 예방할 수 있는 범죄도 아니다. 법과 제도는 급격히 변화하고 있으나, 성폭력 사건의 주인공들은 아직도 뉴스에 나오는 잔혹한 강력 범죄만이 성폭력 범죄라는 인식에 머물러 있다. 성폭력 범죄의 예방을 위한 지속적인 교육과 사회의 인식 변화가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광주지검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성폭행 범죄 현황과 피해자 보호대책 및 개선방안 등을 중심으로 학계와 유관기관, 사회단체의 전문가와 함께 ‘아동?장애인 성폭행 대책 심포지엄’을 조만간 개최할 예정이다. 성폭행 범죄의 근본적인 예방을 위한 논의의 장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