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2월의 시작입니다. 해마다 연말이면 다사다난했다는 말이 습관처럼 얘기되지만 올 한해는 세월호 참사, 장성요양병원 화재 등 비극적인 일이 우리 지역에서도 너무 많이 일어났습니다. 두 사건 모두 1심 판결은 끝났지만 결과에 대해서 말도 많고, 아직 항소심이 남아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개인 의견을 피력하면 두 사건은 재판을 받은 사건의 관련자 개인에 대한 처벌로 충분하지 않으며 이것으로 끝난다면 이러한 비극이 또 다시 반복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건으로 인해 발생한 무고한 많은 생명의 희생은 승객을 저버리고 탈출한 선장이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여러 가지 안전수칙이나 기준을 어긴 요양병원 운영자의 비양심에만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이 타당한지 우리들에게 묻고 있습니다.

사기 장석지 열전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한나라 문제가 다리를 건너가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갑자기 다리 밑에서 뛰어나와 왕의 수레를 끌던 말을 놀라게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죄인을 심문하고 벌을 정하는 직책인 정위를 맡고 있었던 장석지는 왕의 말을 놀라게 한 자를 심문한 후 임금이 행차하는 길을 범하는 죄에 해당하는 벌금형 판결을 내렸는데, 이를 들은 문제가 화를 내며 ‘왕의 말을 놀라게 한 자에 대한 처벌이 너무 가볍다’고 하자 장석지는 ‘법이란 황제와 천하 사람들이 다 같이 지켜야 하는 것이고 지금 법에 의하면 벌금형이 충분한데 사정에 따라 달리 처벌하면 사람들이 법을 믿지 못하게 되고 법을 공정하게 집행해야 하는 자신이 그렇게 하면 천하의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다 제각기 법을 무겁게도 하고 가볍게도 할 것’ 이라고 하자 문제도 장석지의 말을 수긍하였다고 합니다.

장석지의 이야기는 정해진 법이 어떤 상황이나 또는 특별한 사람에 따라 달리 적용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왕은 장석지에게 잘못하면 자신이 크게 다칠 수도 있었음에도 처벌이 너무 약하다고 했는데 장석지는 왕이 다치지도 않았고 정히 그러하였으면 왕이 그 자리에서 참수하였으면 되었으나 자신에게 맡긴 순간에는 정해진 처벌보다 더 중한 벌을 내릴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미 많은 희생을 낸 후 사후약방문식으로 엄한 처벌을 큰 소리로 애기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리곤 시간이 지나면 그 일은 일을 저지른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되어 버리고 그렇게 끝나기 일쑤입니다.

이번 일의 직접적인 원인은 이미 밝혀졌지만 그 일이 벌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소소한 잘못이 누적되어 있었던 것인지, 또 그러한 잘못의 누적에는 엄정하지 못하고 사정에 따라 일관되지 못한 법집행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은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분명합니다. 큰 일이 난 후 난리법석을 칠 것이 아니라 기본을 지키는 것만으로 모든 게 충분할텐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얼마 전 일본 아이치현 변호사협회와의 정기적인 교류세미나를 위해 나고야에 다녀왔습니다. 불법 주차된 차로 매일같이 난리법석인 우리 법원 앞 광장과 사뭇 다른 모습에 놀랍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시내를 다니는 한참동안 이유 없이 길을 막고 서있는 불법주정차 차량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법을 지키고 집행한다는 것은 이렇게 사소한 것 같지만 당연한 기본을 준수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옛날 말에 창고가 가득차야 예절을 알고 먹고 입을 것이 넉넉해야 영욕을 안다고 했는데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이라는 우리의 창고가 가득할 날은 언제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