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이른 더위가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하던 6월에 새로운 활력을 찾고자 갑자기 강원도 행을 택했다.

예전에 아무런 생각 없이 보았던 강원도의 아름다운 산세가 이른 더위에 지친 정신에 활력소가 되어주길 바라며 3박4일의 여정을 홀로 떠나본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이 유난히 상쾌하기만 하다. 기대심에 마음은 무척이나 설렌다.

이번 여행길에서 나는 도심 속 삶에 지친 나 자신을 한번 돌이켜보고 주름진 마음에 잔잔한 여운을 남겨올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목적지는 강원도 동강이다.

한강의 발원지 태백의 검룡소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거쳐가는 동강은 나에게 큰 의미를 안겨 준다.

시작은 있되 끝이 어디인지 모르는 물줄기는 내가 그림을 시작했으나 내 그림의 끝이 어디인지 모르는 것과 같다.

이번 여정은 내 그림의 끝을 찾는 여행이 아니었다. 내 그림의 일부이자 시작이었던 곳을 찾는 느낌으로 순수했던 나의 예술혼을 찾아가 보련다.

동강은 강원도 정선군과 영월군 영월읍 일대를 흐르는 강이다.

길이는 약 65㎞이다.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에서 발원하는 오대천과 정선군 북부를 흐르는 조양강이 합류하여 흐르는 동강은 완택산과 곰봉 사이의 산간지대를 감입곡류하며 남서쪽으로 흐르다가 영월군 영월읍 하송리에서 서강을 만나 남한강 상류로 흘러든다.

조양강 물줄기를 따라 들어가면 이내 산과 물이 돌고 도는 강변길이 시작되고 강변 양쪽에 띄엄띄엄 자리한 아담한 마을들이 눈에 들어온다. 강마을 중 가장 큰 마을인 가수리를 뒤로하고 가탄마을, 하미마을을 지나 운치리 점재에 이르면 작은 나루터가 있다. 예전에는 동강변 어디에서나 강 건너편 마을을 가기 위해서는 줄배를 타고 건너가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잠수교가 놓여 있어 배를 타는 정겨운 모습은 볼 수 없다.

줄배를 타고 강을 건너 간 점재마을에서는 동강의 기수라 할 수 있는 백운산에 오를 수 있다. 숨이 턱밑에까지 차 오는 급경사 길을 올라야 하지만 오름길 도중 보이는 뱀처럼 구불구불 돌아 흐르는 정선 동강의 모습은 잊을 수 없다. 아직도 기억 속에 그리고 가슴 안에 설레임으로 남아 있다. 정선 동강의 모습을 한눈에 보기에는 백운산만큼 좋은 곳이 없다.

동강의 백미인 어라연은 물길이 산을 따라 굽어 흐르다 연못처럼 만들어진 계곡이다. 뛰어난 경치만큼 신비로운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어린 나이에 죽은 단종의 혼령이 영월에서 경치가 가장 뛰어난 이곳의 경치를 보고 여기서 신선처럼 살고자 하였는데 이때 물고기들이 줄을 지어 반겼다고 한다. 그때 그 일대가 마치 고기 비늘로 덮인 연못과 같았다고 해서 ‘어라연’이란 지명을 갖게 됐다고 한다.

어라연의 중심에는 ‘삼선암’이라 불리는 암반이 솟아있다. 삼선암의 기암절벽 사이로 솟아난 소나무들은 계곡의 맑은 물소리와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수묵화 같은 느낌을 준다.

어라연의 융기로 인한 협곡, 침식 작용으로 생긴 수직절벽과 곡류천 등이 어우러져 이루는 풍광은 동강 제일의 절경이다.

동강로를 차로 달리다 보면 창문 너머 풍경에 동화된다. 동강에 나룻배를 띄우고 시간과 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하는 뱃사공이라도 된 것처럼 나 자신을 잊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 그림은 자연을 화폭에 담으려고 했고, 나는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그림에 자연을 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를 내가 화폭에 얻어 간다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 배우게 되었다.

그래서 내 그림의 끝은 일부를 빌려준 자연에 감사하고 이 자연을 많은 사람들과 화폭에서 공유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광주에서는 볼 수 없었던 비경을 이곳을 찾지 못한 지인들과 나눠본다.

돌아오는 길, 잔잔히 내리는 빗줄기가 유난히 상쾌하다.

*문정호

-개인전 5회, 구상대제전(한가람미술관)·한중 정예작가 대작전(세종문화회관)·뉴질랜드 국회의장 초대전(뉴질랜드) 등 단체전 다수

-대한민국 미술대전·무등미술대전·전남도전 심사위원

-신작전, KAMA, 전업작가회, 한국미술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