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섬진강∼히말라야 - 한희원
2015년 08월 24일(월) 00:00 가가
청빛의 고독한 길, 미움도 사랑도 덧 없어라
60년대에 활동했던 가수 중에 최희준이라는 사람이 있다. 서울의 명문 S대 출신으로 저음과 허스키한 목소리가 매력이 있었는데 그 시절 가장 인기가 높았던 가수였다. 초등학생인 나로서는 어른들이 흥얼거리는 대중가요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최희준이 부르는 노래를 좋아했다. ‘너를 사랑할 땐 목숨을 걸었었고 버림을 받았을 땐 죽음을 생각했다’로 시작된 ‘종점’(2절)이나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라는 가사의 ‘하숙생’을 좋아했다. 인생은 나그네 길이며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라는 유행가 가사 같지 않는 철학적 내용을 알지도 못한 채로 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 노래방에 가서 술 한잔에 취하면 ‘종점’이나 ‘하숙생’을 곧잘 불렀는데 요즘은 부르지 않은지 오래된 것 같다.
사랑할 땐 목숨을 걸고 버림을 받았을 땐 죽음을 생각하는 사랑은 요즘은 찾기가 어려운 것 같고 인생은 나그네 길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라는 생의 철학이 묻어있는 유행가 가사도 쉽게 찾을 수 없는 시절이다.
이제 나이가 들어가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생이 고통이나 기쁨의 연결로 이어진 길이라는 것을 알 즈음에는 머리위에 서리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생의 길을 걸어가면서 잊을 수 없는 여행의 길이 몇 번 있었다. 어떤 때는 즐거운 여행길이었고 어떤 때에는 절망적이기도 하였고 고독, 그리고 신과의 만남이기도 한 여행의 길이었다.
어렴풋이 첫 여행길이 생각난다. 어렸을 때 어머니 곁에 앉아 밤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여행길이었다. 밤 기차는 덜커덩거리며 검은 산과 산 사이로 끝없이 달리고 있었다. 기차가 달리는 어두운 창밖으로 논두렁이 구불구불한 뱀처럼 기어 나에게 달려왔다. 어린 나는 너무 무서워 어머니 가슴에 파고들었다. 그때 언듯 바라본 청색 하늘에는 노란 별들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 가족들을 여수에 남겨두고 혼자서 고향인 광주로 전근을 와 자취생활을 하며 교사 생활을 할 때 주말이면 가족을 만나러 저녁 기차나 버스를 타고 여수로 갔다. 그때도 그리움에 기대어 바라본 창가에 어렸을 때 어머니 가슴에 파고들며 보았던 별들이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이 두 개의 가슴속에 장면이 오버랩 되어 그려진 그림이 ‘여수로 가는 막차’이다.
1997년 광주상고 교사로 있다 화가 생활에만 전념하기 위하여 사표를 쓰고 동네에서 서점을 하는 아내를 도와주다 ‘이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해 7월 가슴까지 태우는 무더운 날에 섬진강의 발원지 전라북도 진안의 데미샘에서 강이 바다로 만나는 광양 망덕까지 혼자 걸은 적이 있었다. 그 걸음의 길은 여행이 아니고 혼자만의 끝없는 독백이었고 화가의 길을 가기 위한 발걸음 이었다. 강과 길은 만났다 헤어지고 어느 날 밤에는 별들이 섬진강에 떨어져 산산이 부서졌다. ‘상처 난 별들은 강에 뜬다’, ‘내 영혼의 빈터’ 같은 작품들이 섬진강을 걷는 혼자만의 길에서 나왔다. 상류의 섬진강은 바위가 많아 굽이쳐 흐르고 임실의 진메마을과 순창의 장구목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곡성과 구례의 큰 폭으로 흐르는 강은 유연했고 하동의 은빛 모래밭을 지나 만난 황혼에 물든 그리운 망덕 포구는 눈물을 왈콱 쏟게 했다.
오십이 넘어 떠난 오지여행도 작품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곽재구 시인과 올랐던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도 잊을 수 없다. 신들이 거닐던 하얀 산맥의 정원이 그리 눈부실 수 없었다. 인도북부 라다크에서부터 카시미르 그리고 달의 호수가 있는 스기나가리 티벳 서부의 끝에 있는 신의 산 카일라이스의 순례길은 영원한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영혼을 그리고 싶은 청빛의 화면들은 가장 고독한 길을 걸었던 오지 여행의 산물이다.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 하지만 우리가 걷는 길은 나를 찾는 혼자만의 고독한 길이다. 우리는 자기만의 촛불 하나를 가슴에 안고 한 치도 알 수 없는 생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길을 걷다 보면 미워하는 것을 버리고 모든 것을 사랑하고 싶다. 지나온 세월이 어느 날은 미치도록 그립다.
*한희원
-조선대 미술학과 졸업
-개인전 33회, 뉴욕 아트 엑스포, 이스탄불 이르크 미술관 기획전, 파리 유네스코 세계본부 기획전 등 단체전 참여
-대동 미술상, 전남연극제 무대미술상, 원진미술상 등 수상
-신경림 시인(처음처럼), 곽재구 시인(낙타풀의 사랑), 임의진 목사(참꽃피는마을) 등에 그림삽화 및 영화 ‘친정엄마’ 테마그림
-남구 굿모닝 양림축제 조직위원장
이제 나이가 들어가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생이 고통이나 기쁨의 연결로 이어진 길이라는 것을 알 즈음에는 머리위에 서리가 내리고 있었다.
어렴풋이 첫 여행길이 생각난다. 어렸을 때 어머니 곁에 앉아 밤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여행길이었다. 밤 기차는 덜커덩거리며 검은 산과 산 사이로 끝없이 달리고 있었다. 기차가 달리는 어두운 창밖으로 논두렁이 구불구불한 뱀처럼 기어 나에게 달려왔다. 어린 나는 너무 무서워 어머니 가슴에 파고들었다. 그때 언듯 바라본 청색 하늘에는 노란 별들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 가족들을 여수에 남겨두고 혼자서 고향인 광주로 전근을 와 자취생활을 하며 교사 생활을 할 때 주말이면 가족을 만나러 저녁 기차나 버스를 타고 여수로 갔다. 그때도 그리움에 기대어 바라본 창가에 어렸을 때 어머니 가슴에 파고들며 보았던 별들이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이 두 개의 가슴속에 장면이 오버랩 되어 그려진 그림이 ‘여수로 가는 막차’이다.
오십이 넘어 떠난 오지여행도 작품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곽재구 시인과 올랐던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도 잊을 수 없다. 신들이 거닐던 하얀 산맥의 정원이 그리 눈부실 수 없었다. 인도북부 라다크에서부터 카시미르 그리고 달의 호수가 있는 스기나가리 티벳 서부의 끝에 있는 신의 산 카일라이스의 순례길은 영원한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영혼을 그리고 싶은 청빛의 화면들은 가장 고독한 길을 걸었던 오지 여행의 산물이다.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 하지만 우리가 걷는 길은 나를 찾는 혼자만의 고독한 길이다. 우리는 자기만의 촛불 하나를 가슴에 안고 한 치도 알 수 없는 생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길을 걷다 보면 미워하는 것을 버리고 모든 것을 사랑하고 싶다. 지나온 세월이 어느 날은 미치도록 그립다.
*한희원
-조선대 미술학과 졸업
-개인전 33회, 뉴욕 아트 엑스포, 이스탄불 이르크 미술관 기획전, 파리 유네스코 세계본부 기획전 등 단체전 참여
-대동 미술상, 전남연극제 무대미술상, 원진미술상 등 수상
-신경림 시인(처음처럼), 곽재구 시인(낙타풀의 사랑), 임의진 목사(참꽃피는마을) 등에 그림삽화 및 영화 ‘친정엄마’ 테마그림
-남구 굿모닝 양림축제 조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