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1982년 음악감상실 베토벤] 베토벤! 당신도 반했을 곳이라오
2016년 02월 17일(수) 00:00 가가
영화 ‘포미니츠’를 보고 난 후 ‘베토벤’으로 달려갔다. 영화에 흐르던 슈베르트 즉흥곡 ‘D935 op142 NO.2’를 듣고 싶어서였다. LP판의 지지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잔잔한 피아노 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다시 들려주세요.” 수차례 반복해 듣는다. 언제나 베토벤에 갈 때면 청해서 듣는 곡이 됐다.
‘광주, 시간 속을 걷다’ 시리즈에 등장한 장소들은 나부터도 ‘처음’인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에 반해 대학생 때부터 드나들었던 ‘베토벤’은 익숙해서, 꼭 소개하고 싶었던 곳이다.
조용히 흰눈이 쏟아지는 해질 무렵의 베토벤. 낮게 흐르는 음악과 난로의 온기. 창밖으로 보이는 무등산과 소담한 눈,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노란 불빛이 어우러져 안에서 내어다본 풍경은 한겨울이지만 따뜻하다.
1970∼80년대만 해도 충장로에는 클래식음악감상실이 많았다. 최갑진씨가 운영하던 ‘비엔나 음악감상실’, 불로동 메가박스 인근 ‘필하모니’, 신세계 아케이드 자리에 있던 ‘고전’ 등. 지금은 모두 사라진 공간들이다.
‘베토벤’의 출발은 1982년이다. 뉴욕으로 이민 간 김종성씨가 YMCA 뒷골목 현 등촌 샤브샤브 건물 4층에 문을 연 게 시작이었다. 지금 자리(광주시 동구 금남로 금향빌딩 6층)로 이사한 건 1987년. 제재소 집 아들이었던 김씨는 아버지에게서 나무를 가져다 직접 인테리어를 했다. 현재 사장 이정옥(61)씨는 초창기 단골 손님이었다.
“음악을 들을 때도, 사람을 만날 때도, 책을 읽을 때도 언제나 베토벤이었습니다. 주인 아저씨가 참 맑으신 분이셨어요. 법정 스님은 사슴 눈빛이라고 하셨죠. 아저씨가 베토벤을 누군가에게 넘기셔야 했을 때 돈을 훨씬 많이 줄 수 있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오래 할 사람을 찾으셨다고 해요.”
김종성씨의 선택은 옳았다. 이씨는 1987년부터 지금까지 ‘그자리’를 조용히 지키고 있다. 자주 들르는 이들에게는 ‘누님’이고, ‘언니’다. 누구는 베토벤을 지키는 잔다르크라고도 했다. 30여년이 지났지만 베토벤은 예전 모습 그대로다.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기분좋은 나무바닥, 누군가의 추억이 담겨 있을 탁자, 살며시 미소 짓게하는 붉은 벽돌 위 낙서까지. 바뀐 거라면 단골이 해준 블라인드와 철 따라 탁자에 놓이곤 하는 꽃 정도일까.
‘베에토벤 小史’라 적힌 검은색 낡은 파일을 살펴본다. “아주 많이 나이가 들면 혼자 두고두고 읽고 싶어” 모아둔 편지와 엽서, 기사들이다. 찬찬히 읽는데, 괜히 눈시울이 시큰하고, 입가에 웃음도 번진다.
1995년 베토벤을 찾았던 대성여고 3학년 혜미와 미성이. ‘세상의 얇은 지식보다는 마음에 깊이 남는 아름다운 삶을 살자’ 다짐한 두 소녀는 ‘베토벤을 만난 걸 길지 않은 제 생에 있어 손꼽을 만한 행운’이라 믿었고 ‘나이가 들면 둘이서 베토벤같은 멋진 음악감상실을 하고싶다’ 했는데 지금은 어떤 모습이려나 궁금하다. ‘꿈같은 나의 동반 베토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석문사로 출가한 천도 스님은 ‘무등이 살포시 안기는 자리에서 꽃병 놓인 자리, 벽에 걸린 사진 한장까지 왠지 눈물이 난다’는 엽서를 남겼다.
이런 글도 보인다. ‘진짜가 진짜 있다. 진짜인 공간, 진짜인 빛, 진짜인 녹색, 진짜인 추억, 진짜인 음악, 진짜 인생의 중간, 진짜는 광주 6층 베토벤에 있다.’
사람들과 함께 한 시간이 많다 보니 그만큼 사연도, 추억도 많다. 2007년 어느 날 해질 무렵, 60대 후반의 일본인이 베토벤을 찾아왔다. 그는 ‘비창’과 ‘열정’을 들으며 창가에 앉아 밖을 한참 내다봤다. 며칠 후 두 편의 시가 담긴 항공우편이 날아왔다. 그는 일본의 시인 나스 마사노부였다.
‘도시의 길모퉁이에 문득 발을 멈추면/ 베토벤의 이름을 붙인 뮤직카페가 있었다/문을 열고 들어서면 희부연 등불 아래/ 소나타가 흘러나오고/창가에 기대 앉으면/다만, 거리에 떨어지는 불빛보다/더한 우수가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여기가 진혼의 증거다’ 중)
2013년엔 다큐 영화 ‘법정 스님의 의자’를 본 사람들이 베토벤을 많이 찾았다. ‘옛 기억’을 더듬어 오랜만에 찾아오고 대전의 부부처럼 ‘일부러’ 찾아와 머물다 가는 이들도 있었다. “입안에 말이 적고, 마음에 일이 적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한다. 이 세 가지 적은 것이 있으면 신선도 될 수 있다.” 벽에 붙은 스님의 친필 글귀를 한참 바라보던 이들은 차 한잔 앞에 두고, 조용히 음악을 듣다 떠났다.
30년 넘게 인연을 맺어온 이해인 수녀가 ‘낯선 사람까지도 금방 벗이 되는... 음악으로 가득한 집’이라 쓴 ‘베토벤에서’도 출입문 옆에 붙어 있다. 해인 수녀는 지난해 베토벤에서 전교생이 30명 뿐인 강진 성전중학생들과 행복한 추억을 만들기도 했다.
광주 출장길, 16년만에 이곳을 찾은 누군가는 “이곳을 지켜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늘 조마조마하던 운영은 진짜 문을 닫을 뻔한 위기로까지 번졌다. 2007년이었다. 19년 6개월 동안 잘 버텨왔지만 집세를 감당하지 못해 심각하게 폐업을 고민하는 그녀를 일으켜 세운 건 고객이었다. 베토벤에서 추억을 만들었던 이들이 ‘음악감상실 베토벤을 살리기 위한 모임’을 만들었고 다시 숨을 쉬게 됐다. 지난 2012년 주인장과 함께 ‘30년 기념연주회’를 준비한 이들도 고객들이었다.
베토벤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가 있다. 다양한 음악강좌를 진행하고 있는 클래식 애호가 안철씨다. 이사장은 “베토벤은 안 선생님의 후광으로 살고 있다. 그는 베토벤의 구심점이자 멘토”라고 말했다.
베토벤에서는 매주 화요 음악감상, 발레·오페라(수), 명화 감상(목), 한시 공부(금)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다. 오는 3월 11일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임재홍씨의 연주회도 예정돼 있다.
‘누님, 나는 오늘도 여행을 떠납니다. 광주에 다시 가서 베에토벤의 오래된 의자에 앉아 있고 싶습니다. 나는 늘 돌아다니지만 누님은 그곳에 오래 머물고 계시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한 장소나 사람에게 변함없는 애정을 갖는 일이 갈수록 드물어 지는 시대입니다.” 류시화 시인이 보낸 엽서가 마음에 와 닿는다.
“30년을 했으면 물릴 때도 됐는데 그게 참 신기해요. 영화 ‘카네기 홀’(1947)에 ‘벽에서도 천정에서도 음악이 나온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딱 제 마음이에요. 이 공간이 저의 일부가 됐어요. 마음이 평안해지고, 안정이 됩니다. 여기에 오시는 분들도 그런 마음이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한 신부님이 천정, 바닥 모두 나무로 된 낡은 공간이 헤밍웨이가 즐겨 가던 100년 넘은 이탈리아 술집 분위기가 난다하시더라구요. 절대 바꾸지 말라고 하셨어요. 제 마음도 그래요. 요즘 가게들에 비하면 볼품 없을 지도 모르지만 세월이 켜켜이 묻어 있는 이곳을 오랫동안 지켜가고 싶습니다.”
주인장이 가장 좋아하는 곡은 바흐의 ‘무반주첼로모음곡’과 베토벤의 교향곡 9번 3악장이다. 오랜만에 슈베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이 글을 쓴다.
/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
‘광주, 시간 속을 걷다’ 시리즈에 등장한 장소들은 나부터도 ‘처음’인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에 반해 대학생 때부터 드나들었던 ‘베토벤’은 익숙해서, 꼭 소개하고 싶었던 곳이다.
1970∼80년대만 해도 충장로에는 클래식음악감상실이 많았다. 최갑진씨가 운영하던 ‘비엔나 음악감상실’, 불로동 메가박스 인근 ‘필하모니’, 신세계 아케이드 자리에 있던 ‘고전’ 등. 지금은 모두 사라진 공간들이다.
‘베토벤’의 출발은 1982년이다. 뉴욕으로 이민 간 김종성씨가 YMCA 뒷골목 현 등촌 샤브샤브 건물 4층에 문을 연 게 시작이었다. 지금 자리(광주시 동구 금남로 금향빌딩 6층)로 이사한 건 1987년. 제재소 집 아들이었던 김씨는 아버지에게서 나무를 가져다 직접 인테리어를 했다. 현재 사장 이정옥(61)씨는 초창기 단골 손님이었다.
‘베에토벤 小史’라 적힌 검은색 낡은 파일을 살펴본다. “아주 많이 나이가 들면 혼자 두고두고 읽고 싶어” 모아둔 편지와 엽서, 기사들이다. 찬찬히 읽는데, 괜히 눈시울이 시큰하고, 입가에 웃음도 번진다.
1995년 베토벤을 찾았던 대성여고 3학년 혜미와 미성이. ‘세상의 얇은 지식보다는 마음에 깊이 남는 아름다운 삶을 살자’ 다짐한 두 소녀는 ‘베토벤을 만난 걸 길지 않은 제 생에 있어 손꼽을 만한 행운’이라 믿었고 ‘나이가 들면 둘이서 베토벤같은 멋진 음악감상실을 하고싶다’ 했는데 지금은 어떤 모습이려나 궁금하다. ‘꿈같은 나의 동반 베토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석문사로 출가한 천도 스님은 ‘무등이 살포시 안기는 자리에서 꽃병 놓인 자리, 벽에 걸린 사진 한장까지 왠지 눈물이 난다’는 엽서를 남겼다.
이런 글도 보인다. ‘진짜가 진짜 있다. 진짜인 공간, 진짜인 빛, 진짜인 녹색, 진짜인 추억, 진짜인 음악, 진짜 인생의 중간, 진짜는 광주 6층 베토벤에 있다.’
사람들과 함께 한 시간이 많다 보니 그만큼 사연도, 추억도 많다. 2007년 어느 날 해질 무렵, 60대 후반의 일본인이 베토벤을 찾아왔다. 그는 ‘비창’과 ‘열정’을 들으며 창가에 앉아 밖을 한참 내다봤다. 며칠 후 두 편의 시가 담긴 항공우편이 날아왔다. 그는 일본의 시인 나스 마사노부였다.
‘도시의 길모퉁이에 문득 발을 멈추면/ 베토벤의 이름을 붙인 뮤직카페가 있었다/문을 열고 들어서면 희부연 등불 아래/ 소나타가 흘러나오고/창가에 기대 앉으면/다만, 거리에 떨어지는 불빛보다/더한 우수가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여기가 진혼의 증거다’ 중)
2013년엔 다큐 영화 ‘법정 스님의 의자’를 본 사람들이 베토벤을 많이 찾았다. ‘옛 기억’을 더듬어 오랜만에 찾아오고 대전의 부부처럼 ‘일부러’ 찾아와 머물다 가는 이들도 있었다. “입안에 말이 적고, 마음에 일이 적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한다. 이 세 가지 적은 것이 있으면 신선도 될 수 있다.” 벽에 붙은 스님의 친필 글귀를 한참 바라보던 이들은 차 한잔 앞에 두고, 조용히 음악을 듣다 떠났다.
30년 넘게 인연을 맺어온 이해인 수녀가 ‘낯선 사람까지도 금방 벗이 되는... 음악으로 가득한 집’이라 쓴 ‘베토벤에서’도 출입문 옆에 붙어 있다. 해인 수녀는 지난해 베토벤에서 전교생이 30명 뿐인 강진 성전중학생들과 행복한 추억을 만들기도 했다.
광주 출장길, 16년만에 이곳을 찾은 누군가는 “이곳을 지켜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늘 조마조마하던 운영은 진짜 문을 닫을 뻔한 위기로까지 번졌다. 2007년이었다. 19년 6개월 동안 잘 버텨왔지만 집세를 감당하지 못해 심각하게 폐업을 고민하는 그녀를 일으켜 세운 건 고객이었다. 베토벤에서 추억을 만들었던 이들이 ‘음악감상실 베토벤을 살리기 위한 모임’을 만들었고 다시 숨을 쉬게 됐다. 지난 2012년 주인장과 함께 ‘30년 기념연주회’를 준비한 이들도 고객들이었다.
베토벤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가 있다. 다양한 음악강좌를 진행하고 있는 클래식 애호가 안철씨다. 이사장은 “베토벤은 안 선생님의 후광으로 살고 있다. 그는 베토벤의 구심점이자 멘토”라고 말했다.
베토벤에서는 매주 화요 음악감상, 발레·오페라(수), 명화 감상(목), 한시 공부(금)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다. 오는 3월 11일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임재홍씨의 연주회도 예정돼 있다.
‘누님, 나는 오늘도 여행을 떠납니다. 광주에 다시 가서 베에토벤의 오래된 의자에 앉아 있고 싶습니다. 나는 늘 돌아다니지만 누님은 그곳에 오래 머물고 계시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한 장소나 사람에게 변함없는 애정을 갖는 일이 갈수록 드물어 지는 시대입니다.” 류시화 시인이 보낸 엽서가 마음에 와 닿는다.
“30년을 했으면 물릴 때도 됐는데 그게 참 신기해요. 영화 ‘카네기 홀’(1947)에 ‘벽에서도 천정에서도 음악이 나온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딱 제 마음이에요. 이 공간이 저의 일부가 됐어요. 마음이 평안해지고, 안정이 됩니다. 여기에 오시는 분들도 그런 마음이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한 신부님이 천정, 바닥 모두 나무로 된 낡은 공간이 헤밍웨이가 즐겨 가던 100년 넘은 이탈리아 술집 분위기가 난다하시더라구요. 절대 바꾸지 말라고 하셨어요. 제 마음도 그래요. 요즘 가게들에 비하면 볼품 없을 지도 모르지만 세월이 켜켜이 묻어 있는 이곳을 오랫동안 지켜가고 싶습니다.”
주인장이 가장 좋아하는 곡은 바흐의 ‘무반주첼로모음곡’과 베토벤의 교향곡 9번 3악장이다. 오랜만에 슈베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이 글을 쓴다.
/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