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기 너무 힘듭니다. 벌금을 좀 깎아주세요.”

형사재판을 하다보면 피고인들로부터 자주 듣게 되는 말입니다. 법원에서는 보통 100만원에서 1000만원 사이의 벌금형을 선고하는데, 돈이 아주 많은 경우가 아니라면 이 정도 규모의 갑작스런 지출은 경제적으로 부담이 될 겁니다. 비록 자기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대가라고 해도 말입니다.

그런데 먹고살기 힘들다고 말하는 피고인에게 벌금을 깎아줘야 할까요? 사실 판사도 사람인지라 누군가가 직접 눈앞에서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구구절절 하소연하면 마음이 쓰입니다. 대개 벌금을 선고할 사건의 경우 피고인이 흉악범이나 파렴치범이라기보다는 주변에서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인 탓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벌금형은 ‘범죄인에게 일정한 금액의 지급의무를 강제적으로 부담시켜서 고통을 가하는 형벌’입니다. 때문에 벌금이 피고인에게 경제적으로 부담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쉽사리 깎아주기도 어렵습니다. 게다가 벌금액이 300만원 이하인 경우에는 정해진 절차를 거친 다음 사회봉사로 대체할 수도 있습니다. 피고인의 말처럼 피고인의 사정이 정말로 어렵다면 말이지요.

보다 현실적인 문제는 재판부에서 피고인의 재산 상태를 면밀하게 조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결국 판사 입장에서는 형편이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피고인의 형편이 정말로 어려운지를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대개의 경우 형편이 어렵다는 피고인의 말만을 믿고 벌금을 깎아주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연민은 가슴 한편에 묻어두고 말이지요.

피고인의 개인적인 사정을 일일이 고려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피고인이 속한 집단에 따라 구별하는 건 어떨까요? 작년부터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원은 장흥과 강진이라는 농어촌지역을 관할합니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서울이나 광주와 같은 도시 지역에 비해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피고인들이 많습니다. 그런 피고인들에 대해서 도시 지역의 경우와 같은 기준으로 벌금형을 부과하는 것이 형평에 맞는가하는 의문이 계속 머리를 맴돌았습니다.

실제로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4년 기준 각 지역별 1인당 개인소득은 울산이 1965만원으로 1위, 서울이 1945만원으로 2위 그리고 부산이 1688만원으로 3위인데 반해, 전남은 1415만원입니다. 결국 같은 액수의 벌금이라도 울산이나 서울에 사는 사람보다 전남에 사는 사람에게 더 가혹한 형벌로 느껴질 확률이 높다는 뜻이겠지요.

그렇다면 실제 재판에서는 지역에 따라 벌금액이 달라지고 있을까요? 다소 기계적으로 벌금액이 정해지는 음주운전의 경우를 보면, 실제 재판에서 피고인이 서울과 지방, 도시와 시골 중 어느 곳에 사는지에 따라 벌금액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대중교통이 발달하고 평균 소득이 높은 대도시 거주자가 실제로는 덜 고통스러운 형벌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지요. 보기에 따라서는 다소 부당한 결론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역별 소득이라는 수치는 어디까지나 평균일 뿐, 피고인 개개인의 사정을 나타내 주지 않습니다. 어쩌면 주거비를 비롯한 여타 물가를 감안했을 때 서울에 사는 저소득층의 생활이 전남에 사는 저소득층보다 더 어려울 가능성도 높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피고인이 사는 지역에 따라 벌금액이 달라지는 것이 오히려 부당할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1년6개월 남짓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원에 근무하면서 어느 쪽이 옳은지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 여기에도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하고 있는 고민으로 인해 정답을 찾지는 못하더라도 오답을 피할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