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차려진 한 상 받아보고 싶을 때가 있다. 블로그와 SNS에 무수히 많은 맛집이 있지만 원산지 따질 걱정 없이 안전한 먹거리를 이용하는 곳을 선별하긴 어렵다. 거금도 적대봉을 찾는 이라면 청정 남해안에서 나온 신선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신평백반’을 권한다.

소록도를 지나 거금대교를 따라가다 보면 신평마을 앞바다를 배경으로 고즈넉한 식당 ‘동서횟집’이 보인다. 특별할 것 없는 식당이름에 화려하지 않은 외형임에도 ‘20년 솜씨’의 내공이 느껴진다. 마을 사람들도 많이 찾는 음식점이라면 ‘맛집’으로 검증된 곳이 분명할 터다. 사장이자 마을이장인 진평화(72)씨가 먼길 왔다며 반갑게 일행을 맞는다. 주방에 들어가 보니 진 대표의 아내 정덕자(64)씨가 정성들여 장어 굽는 냄새가 구수하게 풍긴다.

신평백반은 ‘백반’으로 부르기 어색하다. ‘정식’이라 해야 맞을 것 같다. 처음엔 반찬 가짓수에 놀라고 뒤이어 재료의 질에 놀란다. 신평 앞바다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해산물이 상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찬 수만 17개다. 상에는 갖가지 반찬과 한가운데에 커다란 감성 돔 구이와 도톰한 바닷장어 구이가 함께 놓인다. 신평백반에서 주인공을 맡은 음식을 고르기는 힘들다. 게장과 꼬막찜은 물론이고 낙지호박무침, 문어숙회무침 등 쉽게 접할 수 없는 요리들이 ‘밑반찬’처럼 취급되기 때문이다.

‘두릅바지락된장국’을 한 술 뜨는 것으로 식사를 시작한다. 된장국엔 ‘물 반 바지락 반’일 정도로 살이 차오른 바지락이 가득 들었다. ‘산채의 제왕’ 두릅은 특유의 아삭아삭함을 잃지 않고 된장국의 향을 더한다. 두릎은 지난봄에 뜯어 냉장보관했다. 화학조미료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입맛을 개운하게 씻어낸다. 실제 신평백반은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백반집에서 직접 키워내는 장어는 사시사철이 제철이다. 하루 햇빛과 바닷바람에 잘 말렸다. 장어에 간장, 참기름, 마늘 등이 들어간 양념장을 바르고 석쇠에 천천히 구우면 된다. 달짝지근하면서 매콤한 양념장이 장어에 밴다. 비린 맛을 없앤 비결을 물었더니 양념장에 매실을 섞었다고 한다. 먹기 좋게 썬 장어 한 토막을 입에 넣자 일행들이 동시에 활짝 웃으며 감탄사를 내뱉는다. 생각지 못했던 맛이라는 의미다. 생긴 건 황태구이 같지만 껍질은 쫄깃하고 속살은 고소하고 담백한 새로운 맛이 나온다.

감성 돔 구이는 4인을 기준으로 2마리가 나온다. 돔이 워낙 통통하고 커서 아껴먹지 않아도 된다. 호박에 무친 낙지는 씹을 새도 없이 넘어가는 야들야들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간장 양념에 무친 갑오징어는 사흘 동안 해풍에 말려 쫄깃한 식감이 더해졌다.

삶은 고동은 또 다른 별미다. 일일이 손질한 고동을 고소한 참기름과 간장에 무쳐냈다. 고동은 전날 새벽 정씨가 직접 갯벌에 나가 따온 것이란다. 해질녘 썰물 때 정씨가 따온 굴로는 전을 부쳤다. 텁텁하지 않은 매콤한 맛은 마치 카레 소스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조개류를 잘 먹지 않은 아이들에게 안성맞춤이다.

‘생선을 구이 말고 회로도 먹어봤으면’ 할 때는 전어 무침으로 젓가락을 돌리면 된다. 담백한 전어살이 새콤매콤한 양념장에 잘 버무려지고, 여기에 상추, 무, 양파 등 야채로 아삭한 식감을 더했다.

얼음을 동동 띄운 미역냉국은 입맛을 돋운다. 신평마을의 특산물인 미역 얘기가 나오자 밥상을 마주한 주민들은 침이 마르게 자랑을 한다. 신평마을 주민들에게 미역은 자부심이다. 다른 지역미역과 달리 마을 앞 어장에서 자라는 신평 미역은 탄력이 살아있다. 잎이 얇으면서도 넓어 산후 조리할 때 신평 미역이 자주 추천된다.

직접 기른 수박을 썰어 내오는 ‘이모’의 인심은 덤이다. 요리하는 당일 잡아 올리는 찬거리가 많아서 예약은 필수다. 냉난방이 되는 안방에 자리를 잡거나, 마당에 놓인 평상도 좋다. 카드 결제도 된다. 마을버스가 식당 앞까지 오기 때문에 대중교통 이용에도 불편함이 없다.

문의 061-842-5300, 843-6868(진평화 이장 010-4621-6161)

/백희준기자 bhj@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