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지난 달 31일 창립 28주년을 맞아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6552명의 81%(5306명)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조항(11조)이 현실에선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아마도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이른바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비위 사실과 이를 두고 내려진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기억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이에 더해 며칠 전에는 끝 간 데 모르고 가지를 뻗어나가던 정운호 게이트가 현직 부장판사의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태로까지 이어지면서,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의 정도가 이제는 의심에서 확신으로 바뀌는 모양새이다.

학부에서 법학이 아닌 동양사학을 전공하였고, 졸업 이후 4년여 간의 직장생활 끝에 법조인의 길에 들어선 것 또한 사법시험이 아닌 로스쿨이라는 제도를 통해서였다. 지난 3년 반 동안의 법조 경력 전부를 오로지 변호사로서만 활동해 온 필자에게는, 남들에게 친분을 과시할 만한 검사나 판사 친구 혹은 선후배가 아직 없다. 만약 검사의 처분이나 판사의 판결이 담당 변호사와의 관계에 의해 좌우된다면 결코 득을 볼 만한 위치에 있지는 않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필자로서는 지난 3년 반 동안 약 240건의 사건을 맡아 처리하는 과정에서 내가 로스쿨 출신으로 담당 검사, 또는 판사와 아무런 친분이 없는 변호사였기 때문에 내 의뢰인이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아직까지는 없다. 필자가 그 동안 변론한 사건의 승소율과 같은 구체적인 수치를 공개하는 것은 곤란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지 필자가 변론한 사건에서 판결이 선고된 이후 의뢰인으로부터 항의를 받거나 의뢰인이 먼저 항소심을 다른 변호사에게 맡기고 싶다고 한 경우 역시 한 손에 꼽는다.

필자가 뛰어난 변호사여서가 아니다. 필자가 맡아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낸 사건들의 경우, 우선 사실관계 자체가 그러한 결과를 내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되는 사건들이었고, 그에 더해 필자가 파악하고 있는 사실관계를 판단자인 판사 또한 마찬가지로 인식할 수 있도록 최대한 꼼꼼하고 성실하게 변론했던 것뿐이다.

흔히 변호사 윤리와 관련해 “악인도 변호받을 권리가 있다”는 말을 하곤 한다. 맞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든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라는 것은, 문맥 그대로 자신이 행하지 않은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거나, 혹은 자신이 행한 행위의 범위를 넘어서까지 책임을 지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력받을 권리를 말하는 것이다. 본인이 행한 잘못에 대해서까지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법망을 빠져나갈 권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독자께서 만약 올 한해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정운호의 사례와 같이 본인이 행한 잘못에 대해서까지 법망을 유유히 빠져나갈 수 있게 해 줄 수 있는 변호사를 기대하고 있다면, 그에 대한 대가로 정운호가 어떤 변호사에게 얼마를 지급했는지를 참고하시라는 말씀 외엔 달리 드릴 조언이 없다.

하지만 독자께서 필자가 기대하는 바와 같이 정당한 범위 내에서 변호사의 조력을 받고자 한다면, 처음으로 사건을 맡겼던 의뢰인이 “저 말고도 아시는 변호사님들 많이 있으실텐데 왜 저한테 맡기셨어요?”라고 묻던 필자에게 해주었던 이야기, “이제 시작하는 분이니까 정말로 열심히 해 주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경험이 부족해서 모르시는 게 있으면 선배 변호사님들께 물어봐서라도 처리하실 테니까, 그런 건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요”를 참고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