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지방변호사회 노강규 회장을 비롯한 광주·전남지역 변호사 220명이 지난 9일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대한민국 헌법을 지키고자 하는 법조인으로서, 박근혜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한다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현 시국을 대통령의 지인이 타인 앞에 호가호위한 권력형 비리 차원을 넘어서 결국 대통령이 국가권력을 사유화함으로써 헌정질서 파괴에 이른 문제로 보았기 때문이다. 변호사들은 대한변협에서 지난달 28일 대통령 스스로 진상규명을 위한 양심적 노력을 다할 것을 촉구한 성명을 발표한 이래, 특검을 통한 사태규명, 중립내각의 구성 등 정치권의 진지한 반성과 수습과정을 지켜보아 왔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대통령은 피상적이고 형식적인 사과에 그쳤고, 여야는 특검시행과 행정부 구성에 이견을 보이며, 검찰은 국정농단의 본질보다 개인적 비리 추적에 힘을 쏟고 있어 국민이 분노한 근본적 원인을 외면하고 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권력 사유화와 최순실의 국정 농단에 대해서 국민은 깊은 자괴감과 절망감을 느끼면서 거리로 나서고 있다.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다. 과거 독재에 맞서고 민주주의를 스스로 지켜온 우리 국민의 4·19와 5·18정신, 6월 항쟁의 민심 흐름이 또다시 이번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변호사들이 그냥 지켜보지 들고 일어난 이유는 국민주권의 실현에 밑거름이 되고 우리의 목소리가 더해져 좀 더 나은 세상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기를 바라는 자그마한 소망에서다.

지난주 화요일 광주전남변호사회에서 10시간 남짓 실시한 설문조사에 100여명의 변호사들이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하면서 70%가 넘게 대통령의 사임에 대한 의견을 주어 결국 서명운동에 나서기로 했다. 서명운동 시간을 20시간으로 제한했는데도 220명이 참여하였다. 하루도 안 돼 마감한 서명운동에 출장 등으로 참여하지 못해 못내 아쉬워한 변호사도 있다.

이처럼 전국의 변호사들이 비슷한 내용으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거나 집회를 갖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는 비상시국회의를 상설화하였다.

물론 변호사들의 이런 집단행동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오히려 정국에 혼란을 가중하니 자중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며, 박근혜 대통령의 헌정질서 파괴행위 여부도 조사되지 아니하여 헌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고, 국회의 탄핵절차 등도 있으므로 이를 지켜볼 일이지 행동으로 나설 급박성이 있느냐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언론보도를 통해 이미 대통령의 국가정보 사적 유출, 특정인의 대통령 연설문 수정, 인사 개입, 기업을 통한 강제모금, 국무회의의 개입, 국가 주요정책에 대한 개입, 예산 전용 등이 사실로 드러났고, 게다가 일부 법조인이 국정논단에 참여한 사실은 직업인의 양심상 부끄럽고 반성하게 만든다.

이제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적법절차를 무시한 통치권 행사에 국민이 주권자로서 헌법의 수호자 겸 수임권자인 대통령에 대해 직접 책임을 묻는 행동을 막을 수 없다.

수능을 며칠 앞둔 딸은 학생들 사이에 박근혜 대통령이 과거 정치인 중 어떤 길을 갈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고 민심을 전했다. 전직 대통령 누구처럼 스스로 물러설지, 누군가와 같이 자살할지, 아버지처럼 측근으로부터 배신당할지 자못 궁금하다는 표정이다.

왜 우리 대통령들은 말로가 다 안 좋았을까. 한숨을 쉬면서 필자는 앞의 결론 말고도 몇몇 누군가처럼 남은 임기 내내 일도 못한 채 청와대에서 숨만 쉬다가 나올지, 아니면 퇴진 후 수사와 처벌이 무서워 성공적 권력이양을 꿈꾸며 정치적 승부수를 띄울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백담사는 안가겠지’라는 아내의 물음에 헛웃음마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