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소송에서 ‘자백은 증거의 왕’이라는 말이 있다. 과거 범죄자의 자백만 있으면 유죄의 입증은 끝났다는 생각에서 자백이 최고의 증거라는 의미로 생겨난 말이다. 그렇다면 민사소송에서 증거의 왕이라고 불릴 만한 것은 무엇일까? 필자는 단연 문서라고 생각한다. 문서는 과거에 당사자 사이에 있었던 일을 제3자가 보아 알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증거이고 기억의 불분명 또는 약화나 의도적인 거짓에 의하여 왜곡될 수 있는 증언과는 달리 여간해서는 위·변조가 일어나기 어렵다는 점에서 신빙성도 높은 증거이다. 당사자들이 다투는 사실에 관하여 문서가 잘 작성되어 있으면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것이 용이하기 때문에 재판이 쉽다. 아니 그렇게 돼 있는 사건은 재판까지 오지 않는다. 자기들끼리도 명확하니까 송사를 벌일 건덕지가 없기 때문이다. 재판을 하다 보면 문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어려움을 겪는다.

첫째, 문서가 전혀 없는 경우다. 동업으로 사업을 했다는데 동업계약서가 없거나 돈을 빌려줬다는데 차용증이 없는 식이다. 이런 것은 친구나 친족같이 친한 관계에서 빈번한데, 차용증을 작성하지 못하는 이유를 짐작하자면, 차용증을 달라고 하면 대번에 “뭐, 차용증? 네가 나를 믿지 못해”라는 반응이 나올 것이기 때문에 의가 상하기 싫은 빌려주는 쪽에서 말도 못 꺼내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빌린 쪽에서 갚을 생각을 안 하니까 소송을 걸고 “빌려 줬네, 안 빌렸네”하면서 서로 원수가 되어 이제는 친한 사이가 아니라 차라리 이 세상에서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사이가 되어 버린다.

대여금의 본질은 언젠가는 갚기로 약속한 돈이라는 데 있기 때문에 돈이 갔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갚기로 하였다는 것까지 증명해야 한다. 차용증이 없고 더구나 친구나 친족같은 관계라면 그 돈은 굳이 돌려받을 생각 없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상대방을 도와주기 위하여 준 돈이라고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나중에 꼭 돌려받을 돈이라면 차용증을 받도록 하자. 친구든 친족이든 안면몰수하고 차용증을 요구해야 한다. 그러다가 사이가 틀어지는 것이 나중에 돈도 못 받고 원수지고 하는 것보다 낫다. 지금은 친구, 형제자매는 물론이고 부모자식간에도 부끄러움 없이 소송을 거는 세상이다.

둘째, 허위문서를 작성하는 경우다. 부동산 거래의 업·다운 계약서, 금융기관 대출이나 국가·지자체 보조금을 받을 목적으로 공사대금을 부풀린 도급계약서 같은 것들이 많이 있고 부동산 명의신탁이나 가장이혼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 이는 세무당국·금융기관·채권자 등 제3자를 속일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인데, 당사자들끼리 사이가 틀어져서 소송이 걸리면 어느 한 쪽이 허위문서를 진정한 문서로 주장하게 된다.

처분문서에 기재되어 있는 내용은 그대로 당사자 사이에 법률효과를 발생하게 되므로 그 문서의 내용이 당사자가 통모하여 허위로 기재한 것이라는 사실은 주장하는 자가 입증하여야 하는데 그 입증은 참으로 어렵다. 법정에서 이런 광경을 볼 때마다 자업자득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그러므로 문서를 작성할 때는 사실대로 정정당당하게 하자. 이득을 얻기 위하여 스스로 불법을 저질로 놓고 나중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느니 뒤통수를 맞았느니 하면서 억울해 하지 말고.

셋째, 문서가 있기는 한데 너무 애매하거나 서로 상충되는 문구로 인하여 해석을 할 수 없는 경우다. 문서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웬만한 거래에는 계약서를 작성하게 되었지만 국어실력과 같은 소양 부족이나 뭔가 세밀하게 따지고 들면 좀스럽다는 인상을 줄까봐 대범하게 대충대충 넘어가는 기질 같은 것에서 연유한다고 볼 만한 엉망인 계약서도 많은데, 결국 소송에 와서 같은 문구를 놓고 서로 다른 주장을 하면서 다투게 된다.

실례로 청구금액이 몇 백억 원이고 당사자 중에는 공공단체도 끼어있는데 계약 당시에 충분히 확정할 수 있는 핵심적인 사항을 불분명하게 기재하여 결국 소송으로 비화된 사건이 있다. 이 사건의 계약서를 어느 변호사가 한 번이라도 보았더라면 그대로 놔두지 않았을 텐데, 어찌하여 이렇게 중대한 계약을 변호사의 조력 없이 아마추어들끼리 되는대로 해치웠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계약서를 작성할 때는 발생 가능한 경우의 수를 세밀하고 꼼꼼하게 따져보고, 당사자들끼리 문구 하나하나를 검토하고 확인할 것이며, 자신이 없거나 계약의 규모나 내용이 중대한 것이라면 변호사에게 의뢰하도록 하자. 로스쿨을 만들고 변호사 수를 늘리고 한 것이 모두 변호사 문턱을 낮추어 법률서비스를 쉽게 이용하도록 하기 위함이었건만, 아직도 법률비용 지출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인색하기만 한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법원이니 소송이니 하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는데 소송이 걸려 법원에 왔다갔다하는 것은 절대 유쾌한 경험이 아닐 것이다. “서로 원한을 품어 미워하거나 대립하게 되다”라는 뜻인 “척지다”라는 말의 ‘척’은 조선시대에 소송사건의 피고로 지목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송사를 벌이는 것은 원수를 많이 만들게 된다는 뜻이고 사랑하면서 살기에도 모자란 인생에서 원수를 만들어 나간다는 것은 결국 인생을 낭비하게 되는 일이니 사전에 문서를 명확하게 작성하여 거래함으로써 송사를 미리 방지한다면 인생의 낭비를 막는 유익함이 있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