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진 변호사·P&J partners 법률사무소] 피고인의 자존심
2017년 03월 06일(월) 00:00 가가
60대의 피고인은 영구임대아파트에서 보증금 200만원에 5만원의 월세를 내고 살았다. 직업은 고물수집이었다. 고물수집으로 벌어들이는 30만원과 기초생활수급비가 한 달 수입의 전부였다. 한때 피고인과 그의 아내는 탄광촌에서 열심히 일해 저축상까지 받은 적도 있었지만, 큰아들이 뺑소니를 당해 7년간의 소송비용과 수술비로 다 들어갔다.
피고인은 당뇨와 고지혈증, 혈액순환 장애로 손발이 저리고 밤에 자면서 쥐가 나 이제는 고물수집도 어려웠다. 피고인이 혼자는 아니었다. 암 수술과 척추골절 수술 그리고 꼬리뼈 제거수술을 받은 후 대부분을 누워서 지내야만 하는 처와 10살에 뺑소니 사고를 당해 6번의 머리수술을 한 큰아들을 부양해야 했다. 이제는 30대가 된 큰아들은 간질이 있었고, 6개월을 훈련시켜서야 겨우 집에서 병원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자신의 간질약을 받아올 수 있는 정도의 지능이었다.
하루는 폐품을 주우러 가다 간혹 길에서 눈인사 정도 나누었던 70대의 노인과 마주쳤다. 노인은 “쩌어기 논갓에 플라스틱이 두어 달 전부터 버려져 있던디, 플라스틱도 취급하면 가져다 팔아보소”라고 말했다. 그 곳이 어딘지 아무리 설명해도 못 알아듣자 노인은 친절하게도 같이 가 주겠다고 했다. 피고인과 노인은 피고인의 오래된 트럭을 타고 현장에 도착했다. 차디찬 겨울날 오후 4시경이었다.
노인의 말처럼, 커다란 마대자루에 톱으로 절단되거나 깨진 PVC관이 잔뜩 쌓여 있었다. 종이컵이나 과자봉지, 버려진 헌 운동화와 함께. 둘은 피고인의 고물트럭에 조각난 플라스틱을 실었다. 어느 정도 싣다보니 자루 아래쪽에는 아직 쓸만한 것들이 있어 그만 일을 멈추고 고물상으로 향했다. 고물 플라스틱은 ㎏당 250원. 50㎏ 잡고 고물상 주인은 1만2500원을 피고인의 손에 쥐어 주었다. 1만2500원. 하루벌이는 한 것이다.
피해자의 신고로 수사기관의 조사가 시작되었다. 올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내년 농사가 시작되면 쓸려고 놔둔 플라스틱 배관을 누군가 훔쳐갔다는 것이다. 근처의 CCTV 덕분에 수사는 어렵지 않게 마무리 되었다.
피고인에 대한 죄명은 ‘특수절도’. 2인 이상이 합동하여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 경우에 법은 위험성이 가중된다 하여 일반절도에 비해 무겁게 처벌한다.
필자는 피고인이 1심에서 이미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다가 항소한 사건에서, 국선변호인으로 선정되었다. 세상에 이런 일로 수사해서 기소한 수사기관과 더군다나 징역 6개월을 선고하고 구속한 법원에 화가 났다. ‘수사기관의 탓이 아니지’, 무엇보다도 사건이 이 지경이 되기까지 합의하지 못하고 부양가족은 어떡하라고 구속까지 되어버린 피고인에게 더 화가 났다.
피고인은 작지만 다부진 체격이었다. 자존심으로 똘똘 뭉쳤다는 인상을 주었다. 표정은 어두웠으나, 공손한 태도였다. 말수는 거의 없었다. 재소자들 가운데 소위 ‘판사’가 알려줬는지, 사진에 자신의 트럭만 보이지 피고인은 보이지 않으므로 1심 재판은 채증법칙 위반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내용의 항소이유서를 내밀었다.
불쌍한 피고인의 아내와 큰아들이 떠올라 감정이 격해져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피해자한테 백번이라도 찾아가 잘못했다고, 몰라서 한 일이라고 무릎을 꿇는 한이 있더라도 용서를 구했어야지, 아무 일도 아니게 끝날 사건을 이 지경까지 몰고 왔느냐고 다그쳤다. 담담한 피고인과 달리 내 목소리에는 눈물이 섞여 있었다.
얼마 후 피고인이 20만원을 보내왔다. 피해자와 대신 합의를 부탁한다고 했다. 피해자는 자신을 부농(富農)이라 하였다. 주위 사람들의 얘기로는 일대 토지의 절반 이상이 피해자의 소유라고도 했다. 피해자도 고집이 보통은 아니었다. 왜 합의를 해 주지, 그만한 일로 사람을 교도소에 들어가게 했느냐고 물었다. 구속되기 전, 한 번은 피고인이 찾아왔다고 한다. 추수 막바지로 바쁘게 일하고 있는데, 저만치 떨어져 앉아서 얼굴도 안 마주치고 한다는 말이, ‘쓰도 못할 것 가지고 신고했냐’고 하길래 무슨 합의 보러 온 사람의 태도가 아니라 괘씸해서 안 해 줬단다.
필자는 몰랐다. 피고인에게 있어서, 크게 잘못한 것 같지도 않은데 용서를 구한다거나 남한테 꿀린다는 것은 정말 죽기보다 비참한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세상에서 밀리고 밀려 이제 고물수집에 나서기까지, 떳떳한 자존심으로 역경을 견딜지언정 남한테 물질적으로 손을 벌리거나, 아쉬운 소리를 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다. 항소는 기각되었다.
하루는 폐품을 주우러 가다 간혹 길에서 눈인사 정도 나누었던 70대의 노인과 마주쳤다. 노인은 “쩌어기 논갓에 플라스틱이 두어 달 전부터 버려져 있던디, 플라스틱도 취급하면 가져다 팔아보소”라고 말했다. 그 곳이 어딘지 아무리 설명해도 못 알아듣자 노인은 친절하게도 같이 가 주겠다고 했다. 피고인과 노인은 피고인의 오래된 트럭을 타고 현장에 도착했다. 차디찬 겨울날 오후 4시경이었다.
피고인에 대한 죄명은 ‘특수절도’. 2인 이상이 합동하여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 경우에 법은 위험성이 가중된다 하여 일반절도에 비해 무겁게 처벌한다.
필자는 피고인이 1심에서 이미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다가 항소한 사건에서, 국선변호인으로 선정되었다. 세상에 이런 일로 수사해서 기소한 수사기관과 더군다나 징역 6개월을 선고하고 구속한 법원에 화가 났다. ‘수사기관의 탓이 아니지’, 무엇보다도 사건이 이 지경이 되기까지 합의하지 못하고 부양가족은 어떡하라고 구속까지 되어버린 피고인에게 더 화가 났다.
피고인은 작지만 다부진 체격이었다. 자존심으로 똘똘 뭉쳤다는 인상을 주었다. 표정은 어두웠으나, 공손한 태도였다. 말수는 거의 없었다. 재소자들 가운데 소위 ‘판사’가 알려줬는지, 사진에 자신의 트럭만 보이지 피고인은 보이지 않으므로 1심 재판은 채증법칙 위반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내용의 항소이유서를 내밀었다.
불쌍한 피고인의 아내와 큰아들이 떠올라 감정이 격해져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피해자한테 백번이라도 찾아가 잘못했다고, 몰라서 한 일이라고 무릎을 꿇는 한이 있더라도 용서를 구했어야지, 아무 일도 아니게 끝날 사건을 이 지경까지 몰고 왔느냐고 다그쳤다. 담담한 피고인과 달리 내 목소리에는 눈물이 섞여 있었다.
얼마 후 피고인이 20만원을 보내왔다. 피해자와 대신 합의를 부탁한다고 했다. 피해자는 자신을 부농(富農)이라 하였다. 주위 사람들의 얘기로는 일대 토지의 절반 이상이 피해자의 소유라고도 했다. 피해자도 고집이 보통은 아니었다. 왜 합의를 해 주지, 그만한 일로 사람을 교도소에 들어가게 했느냐고 물었다. 구속되기 전, 한 번은 피고인이 찾아왔다고 한다. 추수 막바지로 바쁘게 일하고 있는데, 저만치 떨어져 앉아서 얼굴도 안 마주치고 한다는 말이, ‘쓰도 못할 것 가지고 신고했냐’고 하길래 무슨 합의 보러 온 사람의 태도가 아니라 괘씸해서 안 해 줬단다.
필자는 몰랐다. 피고인에게 있어서, 크게 잘못한 것 같지도 않은데 용서를 구한다거나 남한테 꿀린다는 것은 정말 죽기보다 비참한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세상에서 밀리고 밀려 이제 고물수집에 나서기까지, 떳떳한 자존심으로 역경을 견딜지언정 남한테 물질적으로 손을 벌리거나, 아쉬운 소리를 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다. 항소는 기각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