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세간의 화제다. 예전에도 블랙리스트는 그 존재가 드러난 적이 있었다. 봉제공장 미싱사 블랙리스트, 편의점 알바생 블랙리스트, 중국집 배달원 블랙리스트, 학원강사 블랙리스트, 블랙컨슈머 리스트 등등. 여기에 열거하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또는 회사 업무와 관련된 블랙리스트도 있을 것이다. 블랙리스트가 시대와 사회, 개인과 집단 등의 필요에 따라 여러 종류의 형태로 각계 각층에 존재했고, 또 존재하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요즘 신문과 인터넷을 달구고 있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앞에 열거한 블랙리스트와 차원이 다르다. 지난해 10월10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처음 밝혀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반정부적 작품이나 공연에 대해 정부지원금을 끊기 위해 작성한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으로 국가 공권력이 만들어 공적 영역에서 시행한 것이다. 반면, 앞에 열거한 블랙리스트는 민간인이 자체적으로 만들어 민간 영역에서 공유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가 통치권을 행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면 제도화하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제를 만드는데 일가견이 있는 공무원들이 제도화하지 못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시행하는 것은 형법뿐만 아니라 헌법에도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이다. 이는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검찰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자들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기소하면서, 헌법상 표현·예술의 자유 침해를 명시한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누군가의 지위가 낮다는 이유로 그의 타당한 비판과 의견을 무시하는 것은 오만한 행위이다. 누군가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를 거부하는 것은 편견을 가진 행위이다. 오만과 편견을 우격다짐과 막무가내로 관철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게 하고 실행하게 한 책임자들이 밝혀졌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출범하자마자 그들을 고소·고발했고 현재 그들은 구속된 상태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검열 사찰 배제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또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실행한 행위는 결국 위헌심판대에도 오르게 됐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문화예술인들이 4월19일 헌법재판소에 표현의 자유와 예술의 자유,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평등권 등의 침해를 이유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가 박 전 대통령을 파면 선고하며 인정한 탄핵 사유에는 블랙리스트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헌법소원심판을 청구,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실행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점을 확실히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위헌임을 확인하는 것과 블랙리스트 관련자들이 법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됨을 보이는 것은 유사한 위헌·위법 행위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그런데 법원에도 블랙리스트라고 부를만한 것이 법관인사 등과 관련해 운용되었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드러났다. ‘판사들을 뒷조사한 파일’이 그것이다.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는 국제인권법연구회 행사에 대한 법원행정처의 대응방안 등 대책 문건이지, 판사들의 성향·동향을 분석해 법관인사 등에 불이익을 주기 위한 블랙리스트는 아니라고 발표했다고 한다. 진상조사위 발표의 진실 여부를 떠나서 이러한 의심스러운 정황이 법원에서까지 발생했다는 것 자체를 법조인뿐만 아니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당사자들이 슬기를 모아 지혜롭게 해결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