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라는 영화를 보았다. 서서평은 독일인 선교사 엘리자베스 요한나 쉐핑(1880∼1934년)의 한국식 이름으로, 천천히 평온하게 살고자 하는 뜻으로 이름을 ‘서서평’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그녀는 어떠한 연고도 없는 일제치하의 조선을 찾아와 22년간 살면서 한센병 환자들과 고아들을 돌보고, 어렵고 힘든 처지에 있는 여성들을 교육하는 일을 하였다. 그녀의 삶이 어떠하였는지는 그녀 사후의 모습으로 단적으로 알 수 있는데, 그녀 사후에 남겨진 것은 남에게 나눠주고 반쪽만 남은 담요, 동전 일곱 전, 강냉이 두 홉이었고, 그녀의 장례행렬에는 생전에 그녀가 돌보았던 한센병 환자와 같은 가난한 사람들이 “어머니, 어머니”를 외치며 뒤따랐다고 한다.

서서평이 보여주었던 헌신과 사랑은 다른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어 수많은 제2, 제3의 서서평이 생겨났고, 더 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밀알이 되었다.

그녀가 한국에 와서 정착하여 주로 활동하고 마침내 생을 마감한 후 묻힌 곳이 광주 양림동이다.

호남은 예로부터 국가와 공동체의 위기상황에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의인들이 많이 배출된 고장인 만큼 이웃의 어려움을 지나치지 못하는 정이 넘치는 고장이기도 한데, 서서평이 이룬 결실은 서서평 혼자만의 노력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녀의 삶에 공감하고 이를 따라 배우려는 마음을 가진 호남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할 것이다.

서서평의 사후에 우리나라는 해방이 되었고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루었지만, 아직도 우리사회에는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이웃들이 많이 있다.

특히 범죄로 인한 피해를 입은 범죄피해자들이 대표적인데, 가해자가 처벌을 받더라도 피해자는 일상의 삶을 계속 살아내야 하기 때문에 피해를 입기 전의 상태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도움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주변의 도움은 경제적 취약계층·여성·아동·외국인 등 사회적 약자가 범죄피해를 입은 경우 그 필요성이 더욱 절박하게 된다. 범죄피해자들을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하여 법무부와 검찰에서는 여러 가지 제도를 운영 중인데 2005년 1월 ‘광주전남 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설치해 전문적인 범죄피해자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였고, 2016년 1월 광주지검에 ‘여성아동범죄조사부’를 신설해 여성·아동·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를 전담하도록 하였다.

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전국 58개 지역에 설치되어 있는데, 범죄피해자들에게 생계비나 학자금 등을 지원하는 경제적 지원, 심리치료 지원, 법률적 지원 등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금전적·심리적인 것 외에도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지역사회 각종 기관들과 연계하여 다양한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가해자의 접근을 막아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주거지를 제공하거나 신변보호 조치를 하는 지원, 김장김치 등 필요한 물품을 적시에 제공하는 현물 지원, 다문화 가정의 피해자가 우리말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연계해 주는 지원, 미성년인 피해자의 치료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외국국적 친권자의 체류자격을 전환하는 지원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범죄피해자지원센터와 같은 각종 지원기관들이 있지만, 범죄피해를 당하고도 범죄피해 신고를 하지 못하거나 지원기관을 잘 알지 못해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아동이나 장애인, 경제적 취약계층인 피해자들의 경우 그러한 처지에 놓인 경우가 많다.

어느 특정 기관의 노력만으로는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자들을 돕기 어렵고, 공공부분과 민간부분의 기관은 물론 지역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웃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가질 때 피해자들이 양지로 나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 모두가 이웃의 어려움에 관심과 애정을 기울일 때 서서평이 꿈꾸었듯이 모두가 평온함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