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 개봉된 영화 ‘재심’은 시작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배우들의 연기력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울림 또한 매우 인상적이었다는 평가다.

영화는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이 이야기가 세상에 처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한 방송국의 사건추적 프로그램에 의해서다.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당시 사건을 수사한 경찰과 검찰, 판결을 내린 판사에 대한 분노의 글들을 인터넷 여기저기에 쏟아냈다.

이와 함께 재심청구 사건을 맡은 변호사에게는 정의로운 변호사라는 칭송이 이어졌고 각계각층으로부터 후원금도 쇄도했다. 그러한 가운데 법원은 결국 재심개시를 결정했다.

법원은 지난해 범인으로 몰려 10년 간 옥살이를 한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무면허 운전에 대하여는 벌금 50만원 선고) 진범에 대하여는 지난달 15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이 영화가 나오기 전 법조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재심’은 낯선 용어였을 것이다. 흔히들 재판은 3심제이고 판결이 확정되면 그것으로 누명을 벗을 길은 없을 것이라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재심은 국가가 잘못 판단하여 무고한 국민을 억울하게 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성격의 재판이어서 기존의 판결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의 경우에 한하여 매우 제한적으로 개시된다. 형사소송법은 본래의 판결에서 증거가 된 서류가 위조된 것이거나 수사기관의 고문 등 가혹행위가 있었을 경우 등에 한하여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재심재판부는 범인으로 몰린 최씨가 수사기관의 강압수사 때문에 허위자백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국가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국민들로 하여금 국가권력에 대한 불신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이는 더욱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심과 같은 제도를 둔 까닭은, 억울한 한 사람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국가도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다시는 그러한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대통령은 새 정부의 출범과 함께 5·18과 세월호에 대한 재조사, 4대강 등의 각종 국책사업에 대한 전면적 감사에 착수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대통령의 의지만큼 조사와 감사가 진행된다면 그동안 감춰지고 왜곡됐던 진실들이 하나둘 그 민낯을 드러낼 것이다. 이와 함께 공권력이 얼마나 잘못 행사되었는지도 밝혀질 것이다.

국가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일 것이지만 인색해서는 안 된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확인하지 않는다면 그와 같은 과오는 반복될 것이다. 또한 국민통합이라는 큰 숙제를 이유로 어느 한 쪽의 눈치를 보며 머뭇거려서도 안 된다.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제대로 밝히는 것이 오히려 국민을 올바른 방향으로 모을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다.

누군가의 사적 이익을 위해 참이 되었던 거짓들과 귀찮아서, 혹은 불편해서 한 쪽 귀퉁이에 처박아둔 진실들에 대한 ‘재심’이 새 정부의 출범과 함께 개시되었다.

재심의 개시는 말 그대로 이제 재판이 시작되었다는 것일 뿐이다. 그 역사의 판결이 어떠할 것인지 눈 크게 뜨고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