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용어 중 ‘관성의 법칙’이라는 용어가 있다. 관성의 법칙은 뉴턴의 운동법칙 중 제1법칙으로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모든 물체는 자기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는 것을 말한다.

통상 관성의 법칙이 사회현상에 빗대어 사용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으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의 일상에도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습관이 있고, 이러한 습관은 일단 한 번 몸에 배이면 무의식적으로 반복하게 된다. 이를 의식하더라도 한 번 몸에 배인 습관을 바꾸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것이 좋든 좋지 않던 말이다.

이와 관련해 역사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조선의 왕 중 1명으로 꼽히는 세종대왕의 이야기를 먼저 해 보고자 한다. 세종대왕이 행한 업적 중 현재까지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한글’ 창제가 아닌가 싶다.

당시 조선의 공식 언어는 중국의 ‘한자’였고, 외교정책은 사대주의였으며, 지배이념은 성리학이었다. 이로 인해 당시 조선의 지배계층 내에서는 한글 창제가 조선의 근본을 흔드는 행위로 인식되었고, 최만리를 비롯한 여러 사대부들이 한글 반대 상소를 제출하기에 이른다. 한글은 창제 이후 약 450년 동안 조선의 공식 언어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1894년에 이르러서야 공식 언어로 인정받게 된다.

다음으로 정조에 대해 이야기해 본다. 정조는 왕권강화를 위해 여러 가지 조치를 단행했는데, 규장각과 장용영의 설치, 화성의 신축, 서얼에 대한 차별의 철폐 등 당시 양반사대부들에 대항할 인적, 물적 토대를 마련하고자 노력했다. 이로 인해 조선은 마지막으로 회생할 기회를 가지게 되지만(이건 어디까지나 필자 개인의 생각이기는 하다), 1800년 정조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20여년에 걸쳐 이루어지던 여러 개혁 조치들이 정조 이전으로 회귀한다.

물론 위와 같은 한글창제나 정조의 개혁적 조치들을 여러 관점에서 볼 수 있으나, 여기서는 앞서 본 관성의 법칙과 연관지어 ‘변화의 어려움’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기로 한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과연 역사는 진보하는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필자는 아직 이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고, ‘진보’라는 개념이 너무 거창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가 어떠한 측면에서 ‘진보’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과거보다 조금은 더 나은 아니 조금은 덜 불합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관성의 법칙에 역행해 한걸음 더 내딛으려는 사람들의 노력을 가리키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세종대왕처럼 비록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노력의 결실이 빛을 발할 수도 있고, 정조처럼 자신의 평생을 바쳐 노력하였던 것들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그 흔적조차 대부분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이처럼 기존의 것을 조금은 더 나은 아니 조금은 덜 불합리한 방향으로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심지어 자신은 그에 따른 결과를 보지 못하고, 후대에서야 비로소 성취될 수도 있다), 원하는 결과가 아닌 원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래서 그 길이 힘들고 고통스러워 중간에서 그만두고 싶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내가 원하는 어떠한 것도 얻을 수 없다는 점이다.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 중의 하나는 변화일 것이다. 검찰과 법원 역시 변화의 바람이 불려고 하는 것 같다. 이러한 때에 변화에 따른 불확실성 또는 불이익을 우려하여 그저 이 바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기보다는 관성의 법칙에 역행해 한걸음 내딛어 보는 것은 어떨까?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를 위해서, 아니면 비록 나는 힘들고 고통스럽기만 할지라도 나의 후배들이나 자녀들이 살아갈 세상은 내가 사는 세상보다 조금은 더 나은 아니 조금은 덜 불합리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