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갈수록 각박해지고 사람들의 마음이 메말라가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런 말을 많이 들어봅니다. ‘법대로 하자’, ‘규정이 그렇다’라는 말들입니다. 이는 개인 간의 다툼에서도 나오는 말들이고, 국가기관과 사인 간의 다툼에서도 나올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말들처럼 애매한 것도 없습니다. 그 ‘법’이나 ‘규정’이 가지고 있는 내용과 성격이 너무나 여러 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사람들은 앞에서 나오는 ‘법’이나 ‘규정’을 어떤 성문화된 내용으로서 국가와 시민사회를 일사불란하고 공평하게 규율하기 위한 제도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회에 다툼이 있거나 처리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기존의 ‘법과 규정’이라는 말이 나오고 그 ‘법과 규정’대로 일이 처리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세상사가 모두 ‘법과 규정’대로 해결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텐데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법과 규정’이 완벽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법과 규정은 세상에 존재하는 일종의 잣대인데 그 잣대가 온전히 제 역할을 다하기에는 다소 미약한 점이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모든 ‘법과 규정’이 정당하고 또 국가와 시민사회를 바로 구속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성문화된 법과 규정은 사회가 존속해오면서 계속 있어왔고 또 수시로 개정되고 새로 제정되는 것들입니다. 이는 사람들의 오랜 경험과 지혜가 반영되고 그 안에는 우리 사회가 가져온 철학적 고민, 도덕적 가치, 그리고 넓게 보면 일반적인 법감정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다만, 그 안에는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문제들이 적지 않게 들어 있기도 합니다. 필자는 그 문제들을 전부 다루기는 능력도 없고 지면상 부족하기에 독자들이 알아두면 좋은 두어 가지 문제만 다루고자 합니다.

먼저, 행정기관에 가면 자주 듣는 ‘규정’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행정기관은 어떤 일이 발생하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규정에 따라 일을 처리합니다. 다만, 행정기관이 자신들의 일처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여러 규정들이 모두 구속력이 있는 법규는 아닙니다. 단순히 행정기관의 일처리의 기준이 되는 것에 불과한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행정기관이 ‘규정대로 했으니 그렇게 아시오’할 때 우리는 한 번 쯤 그 규정의 성격이 무엇인지 법률전문가와 상의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국민과 행정기관에 직접적인 구속력이 있는 법률이나 법규라 하더라도 그것의 정당성이 모두 확보된 것은 아닙니다. 국회에서 제정되고 통과된 실정법에 ‘이러하고 저러한 경우 어떻게 한다’고 규정되어 있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따르고 그에 대한 조치를 정당성에 대한 고민 없이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간통죄가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통해 그 유명을 달리한 것도 그 법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에 대한 누군가의 고민과 투쟁이 계속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필자도 부당한 법률조항에 대하여 위헌소원을 통해 그 법 조항을 무효화시킨 경험이 있는데, 그 과정에서 당사자는 부당한 법률 때문에 얼마나 고통받고 괴로웠겠습니까?

‘법대로 하자’, ‘규정대로 하자’는 말은 그 ‘법과 규정’이 구속력 있는 법규이고 또 정당한 경우에만 국가와 시민사회를 통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정당성을 부여받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여러 과정이 필요하고 수많은 사람의 고민과 투쟁이 반영되는 것입니다. 독자들은 오늘부터 누가 또는 어떤 기관이 ‘법’대로 하면 그 법의 성격이 무엇이고 또 정당한 것인 지에 대한 고민을 한 번 씩 해보시기 바랍니다. ‘법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권리’에는 ‘법 자체에 대한 고민과 투쟁’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