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논밭을 지나 한참을 달리다 보니 어느새 눈앞에 바다가 펼쳐진다. 바다를 끼고 언덕위로 듬성듬성 마을이 형성돼 있고 마을과 바다 사이 논밭에 갖가지 농작물이 자라고 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아스팔트 아지랑이도 어촌마을의 고즈넉한 풍경을 감추지는 못했다. 보성군 회천면 군농리 석간마을의 첫 인상이다.

군농리는 9개의 자연마을로 이뤄져 있다. 4개 마을은 군농리 1구, 5개 마을은 군농리 2구로 각각 나뉜다. 군농리 2구에는 당산마을, 농소마을, 화동마을, 분매마을, 석간마을까지 92 가구에 170여명이 살고 있다. 이 중 23가구가 모여 어촌계를 이루고 있는데 바닷가에서 가장 인접한 석간마을 이름을 따 ‘석간어촌계’라 불린다.

이곳은 바다를 끼고 있지만 마을 주민 대다수가 농사를 짓는 전형적인 농어촌마을이다. 봄에는 회천감자, 여름에는 옥수수나 콩·깨, 가을에는 쪽파를 수확한다. 기후가 좋아 삼모작이 가능한 지역이다. 특히 감자의 경우 음력 설 전에 심어서 5월에 출하를 하는데 제주도 다음으로 노지감자가 빨리 나오는 곳이기도 하다.

석간어촌계의 주 수입원은 바지락과 손낙지, 그리고 보성의 대표 특산물인 꼬막이다. 이곳에서 나는 꼬막은 ‘똥꼬막(새꼬막)’으로, 참꼬막과는 달리 골이 가늘고 털이 많이 나 있다. 새꼬막은 배를 타고 다니면서 갈퀴나 그물을 이용한 대량 수확이 가능해 가격은 참꼬막보다 저렴하다. 봄철 많이 잡히는 낙지는 손으로 잡는다고 해서 ‘손낙지’라고도 불린다. 이곳 갯벌에 낙지가 많이 사는 이유는 ‘찔기미(칠게)’가 많기 때문이다. 찔기미를 먹이로 삼는 낙지는 무안 세발낙지보다 크기가 크다. 금어기만 지나면 언제든지 낙지를 잡을 수도 있다.

머리 위 강렬한 태양이 조금씩 서쪽으로 이동하는 때를 맞춰 바닷물도 조금씩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오후 4시가 되자 마을 어장 33ha가 온전히 속살을 드러냈다. 아직은 개발의 손이 미치지 않은 탓에 갈대숲 너머의 갯벌을 바라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우리 득량만 갯벌에서 자라난 꼬막이나 낙지, 바지락은 맛이 아주 좋아요. 한마디로 뻘로 해서는 서해안 대천보다 월등히 좋은 뻘이라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마을을 소개해주는 오숙자 어촌계장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넘친다.

보성군과 고흥군, 장흥군으로 둘러쌓인 득량만은 80년대 이전까지 ‘황금바다’로 불렸다. 자연산 키조개가 많이 생산되고 특히 꼬막 채묘로는 최적지였다. 그러다가 1982년 적조가 발생하면서 어장이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됐고 황금바다의 명성은 사라져갔다.

“당시에는 꼬막 종패의 가격이 1미당 책정됐어요. 망에 1㎝ 정도 크기의 종패를 가득 채워서 일일이 개당 가격을 매겼으니 돈이 얼마나 쏟아졌겠냐 말이죠. 지금은 그때에 비해 100분의 1이나 될까요. 그 정도로 ‘황금바다’였다는 거지요.”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득량만의 어종은 여전히 풍부하고 명성이 높다. 해마다 수확량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지난해 기준으로 석간어촌계에서만 20kg들이 새꼬막 3500망을 수확했다. 어촌계장은 황금바다 전성기때로 돌아갈 수 있도록 어장을 제대로 관리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석간어촌계는 33ha 마을 어장 외에 49ha의 바다 양식장을 보유하고 있다. 취재진이 찾아간 날, 양식장에서는 꼬막 채묘가 진행되고 있었다. 8월 중순이나 9월초 씨가 붙어서 1∼2㎝ 크기의 종패가 되면 바다에 뿌린다. 이 종패가 1∼2년 자라 새꼬막 성패가 되는 것이다. 마을에서 수확하는 꼬막이나 낙지 등은 인근 위판장으로 판매되지만 어촌계로 직접 연락할 경우 택배 배달도 가능하다.

석간마을은 어촌체험마을로 등록돼 있지는 않지만 어촌계에 연락을 할 경우 누구나 와서 무료로 갯벌을 체험할 수 있다. 칠게나 바지락, 쏙, 꼬막도 더러 수확할 수 있으며 어촌계에서는 가족단위 체험객들에게 호미나 장화 등 장비도 대여해 줄 계획이다. 물때는 바다타임(www.badatime.com) 사이트에서 ‘녹동’을 기준으로 보면 된다.

마을과 바다 사이에는 보성군이 조성한 ‘다향길’이 이어진다. 가을에는 알록달록 코스모스를 감상할 수 있고 연내 팽나무를 심어 그늘도 조성할 계획이다. 무엇보다 마을에서 바라보는 일출이 장관이다. 주민들과 관광객들을 위해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데크도 마련돼 있다. 마을 인근에는 비봉공룡알 화석지와 한국차박물관, 율포해수욕장 등이 있어 어촌마을을 둘러보고 관광을 하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문의 어촌계장 010-3604-1174.

/이보람기자 boram@kwangju.co.kr



*찾아 오시는 길

▶ 승용차

호남고속도로→유덕톨게이트→송암톨게이트→지원교차로‘장흥,화순’방면→장수교차로‘안양,회천’방면→율포해수욕장에서 ‘득량’방면→충의로 따라 4.96km

▶ 고속버스

센트럴시티터미널→보성시외버스터미널→보성-천포행 농어촌버스(약1시간소요)→석간정류장하차(도보4분)

▶ 열차

용산역→보성역→우산리정류장(도보2분)→보성-천포행 농어촌버스(약55분소요)→석간정류장하차(도보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