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고마을은 제법 규모가 큰 동네다. 마을 어르신들에 따르면 완도에서는 단일 마을로는 두 번째로 인구가 많다. 300여 가구에 65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한다. 어촌계 인구수는 약 200여 명에 이른다. 농공단지가 있는 죽청리 다음으로 세(勢)가 크다고 한다.

신지면 동부 일대에서는 가장 큰데다 동쪽 끝에 자리한다. 마을을 떠받치고 있는 지세는 완만하게 뻗어 있다. 해발 151m인 범산은 남동쪽으로 뻗어 노적봉을 이루고 그것의 뒷산자락은 동쪽으로 내달려 기선봉(141m)을 떠받든다. 또 한 봉우리는 동촌리를 넘어 가인재를 타고 동두머리에서 멈춰 있다. 해안을 둘러치듯 마을을 감싼 산세는 유순하기 이를 데 없어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마음이 아늑해진다.

동고마을의 인상은 여느 어촌마을과 유사하지만, 그러나 이곳만의 특색이 있다. 바로 파도소리다. 깊고도 웅장해 자못 바다의 위엄이 느껴진다. 잔물결임에도 파도가 연출해내는 소리는 원시적이면서도 묵직하다. 바닷물은 포물선을 이룬 해변의 끝자락까지 밀려와 서서히 사라진다. 산화하듯 소멸하는 파도는 쓸쓸하면서도 가없다.

이 마을은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을까. 동고(東古) 마을에 사람이 입향(入鄕)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 초쯤으로 짐작된다. 마을 노인회장을 맡고 있는 정충섭(82) 어르신이 말하는 마을의 유래는 이렇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 청주한씨가 이곳 지형이 좋아 처음으로 입주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반대편 쪽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걸음을 재촉해 그곳에 가보니 차씨라는 성을 가진 이가 움막을 짓고 살고 있었던 거예요.”

어르신의 말은 이곳 지세가 좋아 한씨와 차씨가 들어와 살면서 점차 마을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일설에는 스님과 동자승과 관련된 이야기도 전해온다.

오랜 옛날 불심이 깊은 스님이 거처할 곳을 찾아 산천을 유람하는 중이었다. 그의 곁에는 동자승이 한 명 있었다. 스님이 동고리에 당도해 야트막한 뒷산에 올라 보니 풍경이 너무 맘에 들었다. 잔잔히 펼쳐진 바다와 확 트인 해변은 복잡한 심사를 풀어주었다. “드디어 내가 기거할 곳을 찾았구나.” 스님은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이곳에 터를 잡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동자승은 따로 기거하도록 동쪽 끝에 거처를 마련해준다.

동고라는 마을 이름이 유래된 내력이다. 동고는 예전에는 ‘동고지’로도 불리었다. 2008년 신지면에서 발행한 향토지 ‘완도신지’에는 마을 이름에 대한 자세한 내력이 나온다.

“당초 신지도의 동쪽 끝 마을이라 하여 동끈지라 부르다가 동쪽 산지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1789년 동산리(東山里)라 하였고, 동하리(東下里)와 합하여 동구지라고 불렀다. 1912년 행정구역명칭일람에 동고지(東古地)라 했으며, 1917년 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에 동고리로 명명했다.”

마을의 안쪽에는 곰솔숲과 백사장이 자리한다. 해변을 끼고 있는 대부분의 마을에는 바다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이 조성돼 있다. 이곳도 예외는 아니어서 아름드리 해송이 도열하듯 늘어서 있다. 300여 그루의 해송은 바람 차단막뿐 아니라, 그 자체로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불어오는 바람 탓에 해송은 하나같이 뒤틀어져 있다.

“우리 마을 해변은 대략 1.5km 정도 됩니다. 명사십리 해수욕장의 명성에 가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름이면 외지인들이 많이 찾아오지요.”

차용석(64) 이장의 말이다. 또한 그는 “우리 마을에는 경치도 경치지만 해조류, 해산물 등 안 나는 게 없을 만큼 다양한 수산물이 생산된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동고마을의 특산물은 톳과 다시마다. 10월 중순경 톳 포자를 가져와 바다에 이식하면 12월 중순 이후로 나물 톳을 채취할 수 있다. 톳의 효능이 좋다고 알려지면서 최근에는 중국에서 값싼 마른 톳이 대량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적잖은 타격이다. 그러나 동고마을 건톳은 전량 일본으로 수출할 만큼 품질이 좋다고 한다.

또한 동고마을에서는 다시마, 미역도 많이 생산된다. 청정한 해역이어서 이곳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의 상품가치가 높다. 웅장하게 밀려오는 파도 아래 풍성한 생명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바다에 있는 산물은 그저 산물일 뿐이라고. 양식장 산물은 수확해 판매가 돼야 비로소 돈이 된다고. 지당한 말임에도 어촌에서의 말은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하늘이 부조를 하지 않으면 바다의 양식장은 하나의 풍경에 지나지 않는다. 풍경과 삶은 서로 다른 실재다. 사람이 뿌리고 바다가 낳아 하늘이 기르는 것이 양식이다. 변별되는 것 같지만 삶과 풍경은 그러나 한가지로 동일하다. 生景不二. 그 경계 위에서 꽃이 핀다.

이 푸르고 아름다운 해변에서 가을이 시나브로 익어간다. 올 가을 동고마을의 톳과 다시마와 다양한 산물이 우리들의 식탁에 오를 날을 기대한다.

/박성천기자 skypark@kwangju.co.kr



*찾아 오시는 길

완도 동고마을 (전남 완도군 신지면 신지로 1251)



▶ 승용차

한남 IC → 경부고속도로 → 서해안고속도로(동서천분기점) → 서영암IC → 영풍교차로(월출산, 성전방면) → 신제교차로(독천방면) → 해남교차로(완도, 해남방면) → 신지대교 → 물하태교차로(신지면사무소 방면)

▶ 고속버스

센트럴시티터미널 → 완도공용버스터미널 → 장용-완도 농어촌버스(약 50분) → 동고리정류장 하차(도보 1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