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좋았다. 낚시는 더 좋았다. 조상현(42·사진)씨는 어릴 적부터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짐을 쌌다. 귀어 3년이 중요한 시기라고들 하는데 조씨는 조바심내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간 끝에 3년차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완도군 장사도에서 보길도 가는 길목 앞바다에서 전복과 가리비 양식을 하고 있다. 연 1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조씨는 지난해부터 (사)한국수산업경영인 완도군 노화읍 협의회 사무국장도 맡고 있다.

조씨는 지난 2015년 1월 완도에 귀어했다. 동부제철이라는 안정된 직장을 뒤로하고 귀어하는 터라 일단 홀로 완도행을 택했다. 보성 출신인 조씨는 완도에 특별한 연고가 없었다. 귀어한지 3개월 만에 태어난 막내가 눈앞에 아른거렸지만 먼저 터를 잡고 가족을 데려와야 했다는 생각뿐이었다.

귀어 6개월 뒤에 조씨의 가족은 완도군 노화읍에 보금자리를 얻었다. 살뜰한 아내 신은진(39)씨와 올망졸망한 삼남매는 그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귀어에 ‘꽃길’은 없다. 알게 모르게 업계 텃세도 있었다. 결혼 3년차에 선택한 귀어에 온 가족이 고군분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가 수산업경영인협회 사무국장을 맡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현지 출신이 간부를 맡는 것이 불문율이었는데, 귀어인이 지역 어업인 단체업무를 총괄하게 된 것은 파격이었다. 조씨는 사무국장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주위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이웃을 위해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기 때문이다. 동네에서 그는 ‘스마일 맨’(Smile Man)으로 통한다. 조씨는 귀어의 가장 중요한 덕목을 이웃과 어울려 사는 것으로 꼽는다. 그는 어촌의 인력이 부족한 탓에 자신이 일할 시간도 부족하지만 이웃과 일을 품앗이하는데 주저 없이 동참하고 있다. 동네 어르신들을 극진히 대접하는 그는 1년에 두 번 독거노인을 찾아 세간을 수리하는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아내 신씨도 자연스럽게 마을 일에 동참하게 됐다.

조씨에게는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 있다. 귀어 초보는 특히 게으른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매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는 조씨는 해지기 전까지 쉬지 않고 전복을 돌본다. 요즘은 1년에 두 번 있는 전복 선별 작업으로 정신없이 바쁘다.

조씨의 전복은 바다 건너 캐나다, 베트남 호치민, 스웨덴 등 세계 곳곳으로 나간다. 그의 전복을 맛본 이들이 해외에서도 주문을 하는 것이다. 주문이 많을 때는 하루에 100건의 전화가 온다. 조씨는 젊은 귀어인 답게 SNS를 통해 상품을 직거래하고 있다. 카카오스토리 채널과 블로그 등 온라인을 통한 주문 상담이 활발하다. 하지만 고객을 대하는 자세만큼은 ‘아날로그식’이다. 조씨는 전복을 고객에게 보내면서 항상 글귀를 보내는 것을 잊지 않는다. 고객이 지닌 사연에 따라 “건강하시라”, “이번 달도 고생 많으셨다” 등 진심이 담긴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조씨의 이런 맞춤형 응대에 감동한 고객들은 으레 단골이 되게 마련이다.

조씨는 “대규모 양식업자처럼 수십억씩은 벌지 않아도 바다에서 한 해, 두 해 살면서 매출이 늘어가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다”고 말한다. 조씨의 올해 매출은 지난해에 비해 2배 성장했다.

조씨는 최근 목표가 생겼다. 자본금이 마련되면 전복의 가공과 유통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처리장을 세우는 것이다. 그는 “‘삼남매’를 붙인 이름으로 어업에 뛰어든 만큼 더 좋은 품질의 전복을 생산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백희준기자 bhj@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