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 도시 아이콘이 되가] <11>1961년 영국 '헤이 온 와이'
2018년 01월 15일(월) 00:00
웨일스 산골 세계 첫 헌책마을
중세로 시간여행은 덤

1961년 쇠락한 탄광촌에서 헌책방마을로 변신한 헤이 온 와이는 매년 전 세계에서 100여 만 명이 다녀간다.

사실 헤이 온 와이 책 마을로 가는 길은 녹록치 않다. 런던 유니온 스테이션에서 버밍험행 기차를 타고 2시간을 달리다 다시 해리포드행 기차로 갈아타야 한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종착역인 해리포드역에서 내려 1시간 정도 마을 버스를 타고 더 들어가야 한다. 만약 돌발변수라도 생기면 여정은 더욱 팍팍해진다. 해리포드역에서 헤이온와이를 오가는 버스노선이 많지 않아 시간을 제때 맞추지 못하면 스케줄이 완전 ‘꼬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접근성이 최악이지만 한해 평균 100여 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찾는 데에는 헤이 온 와이 만의 독특한 정취를 빼놓을 수 없다. 마을에 들어서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시대로 온 듯한 고성과 저택들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화려한 랜드마크와 조형물은 없지만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건물과 헌책들, 엔티크숍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은 동화 속의 마을을 거니는 듯한 신비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불과 60여 년 전 만해도 헤이 온 와이는 온기가 없는 외진 마을이었다. 1950년대 초반만 해도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경계에 위치한 헤이 온 와이는 광산촌으로 유명했지만 석탄이 바닥나면서 급속히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던 1961년 어느 날, 영국의 명문 옥스퍼드대 출신의 20대의 열혈 청년 리차드 부스(Richard Booth·84)가 마을 소방서 건물 한 쪽에 헌책방을 오픈했다. 처음엔 산간벽지에 무슨 책방이냐며 비웃었던 마을 주민들은 런던, 아일랜드, 미국을 돌아다니며 희귀본 고서와 헌책들을 모으는 그의 열정에 감동받아 하나 둘씩 빈집에 책방을 열기 시작했다. 당시 오래된 마을과 헌 책방의 조합은 세상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콘텐츠로 자리 잡으며 순식간에 유럽 전체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헤이 온 와이는 900년 전 노르만왕족인 브라우스 2세가 세운 고성(古城)을 중심으로 20여 개의 헌책방이 줄지어서 있다. 세월의 더께가 묻어있는 헌책과 16∼17세기 고서, 신간 등 100만 여종의 서적이 비치돼 전 세계의 방문객들을 불러 들인다. 헌책방에는 아이들 책에서부터 어른들을 위한 책까지 모든 분야의 책들이 골고루 갖춰져 있다. 길이로 환산하면 40여 ㎞에 이른다. 기자가 헤이 온 와이를 방문했던 때는 가을이어서 성수기인 봄 여름 시즌보다는 한시적으로 문을 닫은 서점들이 더러 있었다. 입추가 지나면 해가 일찍 지는 지리적인 특성 때문이다.

그럼에도 매년 마을에서 판매되는 책이 100만 권에 달한다고 하니 세계적인 책 마을의 명성을 짐작하게 한다. 한창 잘 나갈 때는 40여 곳에 달했지만 임대료가 뛰어오르는 젠트리피케이션 영향으로 현재는 20곳의 서점과 카페, 식당, 아트숍, 빈티지 가게 등이 성업중이다.

헤이 온 와이의 랜드마크는 설립자인 리차드 부스의 서점(Richard Booth’s Bookshop)이다. 헤이 온 와이의 소방서 건물을 리모델링한 이곳은 책마을의 신화를 탄생시킨 1호점이기도 하다. 마을 한가운데 위치한 책방은 높은 천장의 유리창을 통해 쏟아지는 따스한 햇살과 나무로 만든 서가들이 어우러져 오래된 도서관을 떠올리게 한다. 3층 건물인 서점은 각 층별로 철학, 영국사, 예술, 군사, 인문, 여행, 어린이 등 각 주제별로 서가를 배치해 고객들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책을 골라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또한 서가한 켠에는 영국 웨일즈 지방의 전통적인 문양이 돋보이는 패브릭 소파와 테이블이 놓여 있다.

리차드 부스 서점은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다. 서점 내의 카페와 영화관, 스튜디오에서는 평일과 주말 단위로 저자와의 대화, 음악공연, 영화 상영 등 다채로운 문화행사들이 펼쳐져 관광객뿐 아니라 주민들의 문화쉼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특히 지난 1988년 문화기획자 노만과 피터 플로렌스(Norman & Peter Florence)가 아이디어를 낸 헤이 페스티벌은 웨일스를 넘어 영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축제로 성장했다. 선데이 타임스, 데일리 텔레그래프, BBC 방송 등 영국의 주요 미디어들이 헤이 페스티벌의 공식 후원자로 나설 정도다.

올해로 31회째를 맞는 헤이 축제는 문학, 음악, 영화, 전시, 어린이 등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초기 전 세계의 희귀 고서와 엔티크를 주로 판매했던 축제는 매년 방문객들의 호응이 이어지면서 근래에는 소설가, 시인, 피아니스트, 성악가, 영화배우들이 앞다투어 행사에 참여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수년 전 헤이 축제를 방문한 빌 클리턴 전 미국대통령은 “헤이 페스티벌은 내 마음의 우드스탁(미국의 유명 록페스티벌)축제”라고 했고 영국의 유명정치인 토니 벤(Tony Benn)은 “(헤이 축제는) 매년 크리스마스와 함께 기다리는 축제”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리차드 부스 서점의 홍보 담당자 패트리샤 트란톤(Patricia Thornton)은 “방문객들이 헤이온 와이를 찾는 이유는 거대한 ‘책더미’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발견하고 직접 읽는 것”이라면서 “인생의 과제가 정보의 단순 습득이 아니라 이해이기 때문에 인터넷과 컴퓨터는 책의 경쟁 상대가 될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 이 시리즈는 삼성언론재단의 기획취재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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