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의 '그림생각'] (223) 절정
2018년 05월 03일(목) 00:00 가가
개성 박연폭포 볼 날 멀지 않았네
남북 두 정상의 감격 어린 만남으로 커진 ‘더 이상 전쟁은 없다’는 기대감 덕분인지 북한이 한결 가까워진 느낌이다. 누군가는 평양 옥류관 냉면을 먹으러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다고 하지만 북한 땅을 밟게 되는 그날이 온다면 겸재나 단원이 그렸던 옛 그림 속 명승지를 답사하고 싶다.
그 가운데에서도 김홍도의 스승이었던 표암 강세황과 겸재 정선이 걸작으로 남긴 ‘박연폭포’를 보러 고려의 옛 도읍지 개성을 맨 처음 여행하고 싶다. 고려 말의 유학자 길재가 필마로 돌아들어 망국의 한을 노래했고, 황진이와 화담 서경덕의 사랑이 스며있는 개성은 어쩐지 연민과 회고의 감상에 젖게 해 시적이면서도 서사적인 느낌이 다분하다.
겸재 정선(1676∼1759)의 ‘박연폭포’(1750년대 작)는 ‘금강전도’ ‘인왕제색도’와 함께 겸재 진경산수화의 절정이자 조선시대 회화사의 절정을 빛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화면의 왼편 아래 소나무숲에서 폭포를 올려다 보고 있는 이 작품은 줄기차게 떨어지는 폭포소리를 시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세차게 쏟아지는 폭포의 물줄기소리가 그대로 들리는 듯 이른바 청각과 시각이미지가 한데 어우러지는 공감각적 효과를 극대화한 작품이다. 마치 지난 4월 남북 회담에서 두 정상이 지난 70여년 단절의 세월을 건너뛴 듯 거침없이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들 가슴을 뻥 뚫리게 했던 것처럼 박연폭포의 힘찬 물보라가 시원하다.
논고 ‘한국미술사의 절정’에서 미술사학자 이태호교수(명지대 명예교수)는 “박연폭포는 실제 풍경과 비교해서 차이가 날만큼 길이를 2배로 쫙 늘려 표현한 폭포를 중심으로 주변 풍경을 생략하고 압축한 화법을 구사한 겸재식 회화예술의 백미이자 최고”라고 ‘절정’의 이유를 설명해 준다.
〈광주비엔날레정책기획실장·미술사박사〉
그 가운데에서도 김홍도의 스승이었던 표암 강세황과 겸재 정선이 걸작으로 남긴 ‘박연폭포’를 보러 고려의 옛 도읍지 개성을 맨 처음 여행하고 싶다. 고려 말의 유학자 길재가 필마로 돌아들어 망국의 한을 노래했고, 황진이와 화담 서경덕의 사랑이 스며있는 개성은 어쩐지 연민과 회고의 감상에 젖게 해 시적이면서도 서사적인 느낌이 다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