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도 극복하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때였다. 쉼 없는 삶과 팍팍한 도시생활에 지칠 무렵 문득 고향에 내려가 살고 싶어졌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 한달만에 타지생활을 청산하고, 곧장 고향인 완도 신지면으로 ‘귀어’했다. 무턱대로 내려온 탓인지 부침도 심했다. 다시 도시로 떠났다. 그리고 돌아왔다. 그땐 실패는 없었다.

완도군 신지면에서 톳 양식과 숙박업을 하고 있는 임상모(51)씨는 10년 전 귀어했다. 준비 없이 결정한 귀어의 결과는 혹독했지만 이제는 ‘귀어인’이라는 말보다 ‘주민’이라는 말이 더 익숙하다. 톳 양식부터 숙박업까지 연 매출 1억 5000만 원을 올리며 완벽히 정착했다.

“서울생활을 할 땐 사업을 많이 했었죠. 사업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굴곡이 닥칩니다.”

임씨는 도시에서 라이브 카페를 운영했다. 장사가 잘 됐다. 그러다 IMF가 닥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적자에 적자를 면치 못하다 결국 가게 문을 닫고 일자리를 구해 기술을 배웠다. ‘사업본능’이 발동해 재차 회사를 차리고 남아 있던 빚도 청산, 제자리를 찾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도심생활의 염증이 찾아왔다.

“고향 친구들을 만나 술잔을 기울이다가 ‘도시생활보다 고향에서 한적하게 사는 게 마음이 편하다’는 말을 들었어요. 가슴이 쿵쾅거렸습니다. 한달 만에 모든 걸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왔어요. 낚시배 하나 사서 손님들 태우고, 바다에 나가 일 좀 하면 먹고는 살 것이라 생각했죠.”

임씨는 낚싯배 한 척을 구입했다. 바다가 고향이지만 바다 일은 하나도 몰랐다. 배는 고장나 수리를 맡기는 날이 허다했고, 가정형편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두 아이와 부인을 고향에 두고 일거리를 찾아 다시 고향을 떠났다. 귀어 1년 만에 맛본 쓰라린 실패였다.

임씨는 “고향에 내려왔지만 또 다시 직장을 찾아 나서면서 ‘내가 이러려고 고향에 왔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며 “심기일전해 다시 고향에 돌아가자 마음 먹었다”고 설명했다.

3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그는 ‘바다 놈은 바다 일을 하자’고 마음을 다잡은 뒤 톳 양식에 도전하려했다. 하지만 양식장도 없었고 바다 일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우선 친구들에게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일손이 부족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일을 도왔다. 일도 손에 익고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그를 보면서 주민들의 마음도 열리기 시작했다. 어촌계에 가입했고 어촌계장까지 됐다.

“‘초짜 어부’가 어촌계장이 된 것 자체가 파격적인 일이죠. 그만큼 부담감도 컸습니다.”

어촌계장을 맡아 4년 동안 조금이라도 정부·지자체 지원금을 받기 위해 뛰어다녔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 시작한 톳 양식도 자리를 잡아갔다. 마을 앞 명사십리 해수욕장 번영회 사무장도 맡아 마을 상권을 살리는데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해조류를 가공한 식품을 개발하는 등 몇 해 전 추진하다가 실패했던 사업을 다시 추진해보고 싶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신지면 어민들의 90% 상당이 나물톳 양식을 하고 있는데, 갈수록 수입이 적어지는 등 고민이 깊어지고 있어서란다. 해조류 가공 등 6차 산업으로 마을 공동의 이익까지 일궈내고 싶다는 게 그의 마음이다.

/글·사진=박기웅 기자 pboxer@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