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희망찾는 사람들]고흥서 굴 양식·유통업 귀어 7년차 강일씨
2018년 08월 28일(화) 00:00 가가
“가업 잇자 고향 내려와…미래 불안감 없는 ‘평생직장’잡았죠”
초창기 마을 어르신들에 일 배워
인터넷 활용 판로 다각화로 활기
가리비·홍합 등 품목 다양화 할 것
정부·지자체 귀어 젊은이 지원해야
초창기 마을 어르신들에 일 배워
인터넷 활용 판로 다각화로 활기
가리비·홍합 등 품목 다양화 할 것
정부·지자체 귀어 젊은이 지원해야
고흥에서 굴 양식·유통 사업을 하는 강일(36)씨는 30대 중반이지만 귀어로는 7년차다. 강씨는 가업 승계를 위해 고흥군 동일면 고향마을로 내려왔다. 고향집은 바다를 코앞에 뒀다. 그의 부모가 일군 굴 양식·유통 사업은 젊은 피 수혈로 이전보다 한층 활기를 띠고 있다. 강씨와 그의 아내가 기존 거래처에 이어 홈페이지 등 인터넷을 이용한 판로 다각화를 시도하면서다.
광주에서 학업을 마치고 영암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그가 귀어하기로 결심한 것은 약 5년 전. 강씨를 포함한 형제들이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고향집에 모인 날이었다. 당시 어렵게 입을 뗀 아버지는 “힘이 달린다. 누가 고향으로 내려와 가업을 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당시 4남매 가운데 누구도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가업 승계자는 며칠 후 강 씨로 결정됐다. 다른 형제들이 난색을 표한데다 어려서부터 집안 일을 도우며 바다일이 재밌다고 느껴온 강씨가 자청하면서다. 아내의 동의를 구한 그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내려가 자리를 잡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 곧바로 고흥으로 내려갔다. 그의 나이 서른 한살 때였다.
자식들에게 가업을 이어달라고 부탁한 아버지였지만, 막상 후계자가 결정된 이후에는 일에 있어서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들이 회사 일을 하며 가끔 도와주던 때와 달리, 혹독하리만큼 매사에 엄격했다고 한다. 자식을 단단하게 만들겠다는 아버지의 배려임을 깨닫고 강씨도, 그의 아내도 일에 관해서 만큼은 묵묵히 견뎌냈다.
바다 양식장과 굴까는 작업장에서 함께 일하는 마을 어르신 등 인부들에게도 몸을 낮추고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마음가짐을 갖고 대했다. 그러기를 햇수로 7년째 된 지금은 일도 손에 익고 소득도 안정화됐다.
귀어에 성공했기 때문일까. 강씨는 귀어의 장점도 한참 설명했다.
“정착기에는 일이 너무 힘들었어요. 근데 일이 손에 익은 후로는 우선 평생 직장이라 생각하니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같은 건 크게 없어요. 체력이 허락하는 한 지금의 일을 계속 할 수 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삶에 여유 같은 게 있다랄까. 벌이도 웬만한 월급쟁이보다는 낫고요”
강일 씨는 요새 거래처 다변화와 인터넷을 통한 소비자 직거래에 힘 쏟고 있다. 매년 겨울 새벽이면 트럭에 가득 실린 굴이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노량진 수산물시장으로 향하지만 경매 가격이 들쭉날쭉한 날이 많기 때문이다. 일이 손에 익은 후 홈페이지를 구축한 것도 이때문이다. 부친이 ‘아날로그 경영’을 해왔다면 그는 여기에 ‘디지털’을 접목한 셈이다. 그는 앞으로 굴 유통 거래선을 활용해 가리비, 홍합 등 품목 다양화에도 나설 계획이다.
가업 승계로 큰 어려움 없이 귀어에 성공했다는 그는 “저는 부모님 때문에 쉽게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어렵게 자립한 사람들도 많을텐데 부끄럽다”면서 “주변에 귀어를 원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사실 스스로 힘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지자체나 정부가 귀어하려는 젊은이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해 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사진=김형호 기자 khh@kwangju.co.kr
가업 승계자는 며칠 후 강 씨로 결정됐다. 다른 형제들이 난색을 표한데다 어려서부터 집안 일을 도우며 바다일이 재밌다고 느껴온 강씨가 자청하면서다. 아내의 동의를 구한 그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내려가 자리를 잡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 곧바로 고흥으로 내려갔다. 그의 나이 서른 한살 때였다.
바다 양식장과 굴까는 작업장에서 함께 일하는 마을 어르신 등 인부들에게도 몸을 낮추고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마음가짐을 갖고 대했다. 그러기를 햇수로 7년째 된 지금은 일도 손에 익고 소득도 안정화됐다.
“정착기에는 일이 너무 힘들었어요. 근데 일이 손에 익은 후로는 우선 평생 직장이라 생각하니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같은 건 크게 없어요. 체력이 허락하는 한 지금의 일을 계속 할 수 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삶에 여유 같은 게 있다랄까. 벌이도 웬만한 월급쟁이보다는 낫고요”
강일 씨는 요새 거래처 다변화와 인터넷을 통한 소비자 직거래에 힘 쏟고 있다. 매년 겨울 새벽이면 트럭에 가득 실린 굴이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노량진 수산물시장으로 향하지만 경매 가격이 들쭉날쭉한 날이 많기 때문이다. 일이 손에 익은 후 홈페이지를 구축한 것도 이때문이다. 부친이 ‘아날로그 경영’을 해왔다면 그는 여기에 ‘디지털’을 접목한 셈이다. 그는 앞으로 굴 유통 거래선을 활용해 가리비, 홍합 등 품목 다양화에도 나설 계획이다.
가업 승계로 큰 어려움 없이 귀어에 성공했다는 그는 “저는 부모님 때문에 쉽게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어렵게 자립한 사람들도 많을텐데 부끄럽다”면서 “주변에 귀어를 원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사실 스스로 힘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지자체나 정부가 귀어하려는 젊은이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해 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사진=김형호 기자 kh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