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에서 근무한지도 어느덧 5년이 지난 지금은, 연차별로 더해지는 업무의 양과 수술의 깊이도 그와 함께 늘었다. 심리적인 부담감과 더불어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과연 스스로에게 보람이 있는 일인가라는 생각도 자주 가져 보았다.

신규 간호사 시절에는 모든 일에 열정을 쏟게 되고, 아무리 힘들어도 웃을 수 있었는데 최근에는 웃는 일보다 화내는 일이, 인내심으로 버티는 것도 버거운 날들의 연속이기에 더 없이 힘든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결국 일이 나고 말았다. 평소 기상 시각 두 시간 전부터 배가 너무 아파서 잠을 깰 수 밖에 없었다.

“아! 왜 이러지, 왜 이렇게 배가 아픈 거야.”

출근해서도 같이 일하는 선생님이 말을 걸어도 인상만 써지고 여느 때처럼 웃으면서 대화하기가 많이 힘들었다.

수간호사 선생님께도 보고가 된 상황이었지만, 그냥 무던히 아프다가 말겠지 싶어서 나는 퇴근시간까지 참았다. 퇴근하고 탈의실로 갈 때쯤에는 뭔가 허탈함과 함께 ‘그래도 근무는 무사히 마쳤구나’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런데 아침·점심 두 끼를 먹지 못해서 어지러운데다가 저녁까지도 먹기 힘들 정도로 식은땀이 나면서 통증이 나아지지 않아 병원 앞 내과에 가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수롭지 않은 배앓이 일줄 알았다.

“맹장이 8㎝나 부어 있어요. 소견서를 써 줄 테니 당장 수술이 가능한 대학 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받으세요. 보호자에게 연락하고 지금 바로 대학 병원으로 가세요.”

이런 맙소사!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게 아닌가! 한 번도 수술을 받지 않은 나로선 이게 무슨 장난 같은 일인가 싶고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의뢰서와 CD를 받고 나니, 배가 계속 아파 더 이상 지체하면 큰 일 나겠다 싶어 다시 내가 근무하는 전남대병원 응급실로 왔다.

내 직장엔 아파서 가고 싶지 않은데…. 이런 일로 다시 환자로 오게 되니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근무하고 있는 병원임에도 불구하고 수술실 외에는 가 본 적이 없어 응급실과 직원들이 낯설었다.

채혈하고 복부 CT도 찍었다. 동맥혈 가스 분석 검사는 얼마나 아픈지! CT 찍을 때 주입하는 조영제 알레르기로 두드러기가 나서 주사를 또 맞았다. 책으로만 익힌 것들을 직접 경험해보고,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나서 보니,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환자들도 참 많이 아팠겠다. 많이 떨리고 긴장되었겠다 싶었다.

5년 동안 근무한 수술실이지만 수술대에 누워있으니 모든 게 낯설게만 느껴지는데 환자들은 얼마나 더 낯설게 느껴졌을까. 막상 내가 환자가 되어서 누워보니 안면이 있는 사람들인데도 그냥 혼자가 된 기분이었다. 무서웠다.

마취를 하기 전에 다시 한 번 타임아웃으로 정확한 환자, 영상 자료, 수술 부위 위치 확인, 감염 및 알레르기 유무 등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재확인했다. 동료들은 수술실 침대에 누워 올려다보는 나에게 안심하라고 금방 끝날 거라고….

나의 동료들이 크게만 느껴지고 자꾸 손에 땀이 났다. 그렇게 마취약에 취해 잠이 들었다.

수술은 잘되었지만 병실로 옮겨져 마취에서 깨어나니 너무 아팠다.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최고의 고통이었다. 복강경 수술로 절개가 아주 작았는데도 이렇게 아픈데, 더 큰 수술을 하는 환자들은 얼마나 고통일까 싶었다. 어른이 되면 아이일 때보다 덜 아플 줄 알았다. 경험해보니 환자는 아이건 어른이건 아프면 똑같다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 일에 치중해 환자의 마음을 배려하지 못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처음 나이팅게일 선서식을 했을 때의 나의 마음가짐은 환자를 먼저 배려하고 위로하는 따뜻한 간호사가 되겠다는 다짐이었는데, 내가 참 많이 알지 못했고 잊고 일 해왔구나 싶었다.

힘들었던 순간들이 나를 우선으로 생각하지 않고 환자들을 생각할 수 있는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다른 의료진들도 열심히 일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퇴원을 하게 되는 날은 나 말고도 병실에 남아있던 사람들도 어서 퇴원하기를 기원했다. 우리 병원에 오는 환자들의 모두 치료가 잘 되어 본래의 건강함을 되찾기를 간절히 진심으로 바랐다. 잊을 수 없는 8월의 어느 멋진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