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너무 더웠다.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 시원한 물줄기가 간절했다. 대숲을 보다 샤워기를 생각해내고는, 오전 내내 대나무에 철사를 친친 감은 사각 샤워기를 만든 다음 호스를 수도꼭지에 연결해 ‘머리 물 붓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다 검정고양이를 봤다. 아주 큰 놈이었다. 풀밭에 잔뜩 엎드려 낮은 포복으로 기고 있었다. 닭장 근처 닭들이 쉬고 있는 나무 그늘을 향해. 나는 깜짝 놀라 소리를 치며 문 옆에 세워 둔 대나무 막대기를 힘껏 날렸다. 고양이는 그런 나를 잠깐 일별하더니 천천히 개울을 건넌 후 다시 바라봤다. 독이 오른 나는 놈에게 돌멩이를 던졌다. 그제야 녀석은 콩밭 사이로 사라졌다.

길고양이를 본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그렇게 큰 놈은 처음이었다. 놈을 보고난 후 우리 닭들을 해친 건 산짐승이 아니라 고양이라는 확신이 굳어졌다. 동네 할머니들이 고양이가 병아리들을 잡아 먹는당게, 라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닭들을 놓아먹이다가 지난 4년 동안 스무 마리의 닭들을 잃었으면서도 그 이유를 산짐승들이 가끔씩 출몰하기 때문이라고만 여겼다.

고양이가 큰 닭들까지 잡아먹을 수 있다는 건 중요한 문제였다. 다시 며칠 뒤 풀어놓은 닭들이 걱정돼 유리창을 넘겨보다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그 놈, 검정고양이가 노랑 암탉 한 마리의 목덜미를 물고 텃밭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팬티 바람임에도 대성일갈, 놈의 뒤를 쫓았다. 벼락같이 방문을 열고 나갔지만 놈은 사라지고 물려가던 암탉만 산비탈에 놓여 있었다. 암탉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다가 이내 생을 마감했다.

그 모양을 보던 나는 대노했다. 뒤란에 묶어 키우던 진돗개를 풀었다. 쉿! 물어라, 곡순아! 개는 고양이를 쫓아 산속을 몇 번인가 뛰어 다니더니 이내 마당으로 달려갔다. 더 큰 사단은 그때 벌어졌다. 마당에서 푸다닥, 닭들이 쫓기는 소리와 함께, 빨리 나와 봐요! 라고 외치는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뛰어 가보니 그곳에는 죽은 닭들이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 날 고양이가 한 마리, 개가 세 마리의 닭들을 죽였다. 개가 죽인 닭 중에는 내가 아끼던, 빛깔 고운 큰 수탉도 포함돼 있었다. 옆구리에 피를 흘리고 있는 수탉을 보며 가슴아파하다가 문득 이 사단이 왜 일어났을까를 생각했다.

모든 것은 고양이로부터 시작되었다. 고양이라니. 고양이는 애완용이었고 그것을 방기한 건 사람이었다. 고양이뿐인가. 피서를 떠나기 위해 하루 300마리 이상의 애완견이 유기되고 있다는 뉴스를 들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누구 때문이라고? 잘못은 사람에게 있었다. 원칙을 지키지 않는 인간이라니. 지구 온난화와 폭염, 물고기 위장 속에서 나오는 플라스틱 조각들, 하와이 해변에 쌓이는 엄청난 양의 쓰레기들. 모든 것은 사람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수탉의 피로부터 전해져 온 울림 때문이었을까, 그 뜨거운 햇볕 속에서도 나는 그런 인간의 오만에 대한 생각에 한참이나 사로잡혀 있었다. 수탉을 보며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열기를 이기지 못해 방으로 들어왔다. 의자에 날파리 같은 곤충이 있었다. 그것을 집어 들었다. 순간 엄지손가락에 엄청난 통증이 밀려왔다. 말벌이었다. 상처 부위를 문지르다 그것이야말로 너부터 시작하라는 ‘경고’임을 깨달았다. 사람이 문제고 사람의 문제이니 사람이 나서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익명의 그늘에서 타인만을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광주는 어떤가. 광프리카, 광주. 가장 열대야가 많은 도시가 아닌가. 우리 세대는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럼 우리 다음 세대는 지구와 함께 파멸해도 괜찮다는 것인가. 그 징후는 너무나 많고 우리는 그것을 이미 알고 있다. 방안에 우뚝 서 나는 뜬금없이 더위와 함께 세상을 등진 두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내게 청소 아주머니들의 새벽 출근버스 6411호를 알게 해 준 노회찬과, 밤이야말로 우리의 선생임을 일깨워준 황현산. 원칙으로 우리들의 가슴을 두드린 이 분들의 삶을 공부하면 그 실천 방법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이 생각은 곧 믿음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