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출어람 청어람
2019년 03월 28일(목) 00:00 가가
[임지헌 첨단우리병원 원장]
해마다 봄이 되고 새 학기가 되면, 학생은 말할 것도 없고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있는 젊은 학부형도 신경 쓸 일이 많다. 바뀌는 교실과 친구 및 선생님, 이러한 변화는 우리에게 익숙함과 편안함보다는 긴장도를 올리게 한다. 그리고 중년이 넘은 대다수 사람은 내분비적으로 반응 조절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환경 변화보다는 편안하게 유지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진다. 그래서 정치인 중에서 젊었을 때는 개혁 세력이었던 사람이 나이 들어서는 보수의 아이콘으로 변신해 나타나는 것도 의학적으로 충분히 설명된다.
한자 성어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 청색은 쪽풀에서 나왔으나 쪽빛보다 더 푸르다)은 사제지간을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된다. 이를 제목으로 정한 것은 스승의 발자취를 다시 한 번 비춰보는 기회를 가져보고 싶어서다. 이번 봄에 정년 퇴임 하신 내 은사님께 항상 감사한 마음은 있지만 직접 표현해 본 적은 없다.
필자는 전남대병원 송은규 교수님을 의대 본과 3학년 실습 때 처음 뵀다. 의과대학 교육 과정은 본과 3학년 후반기가 되면 1년 동안 각 조별로 진료과에서 1주일씩 실습을 한다. 각각의 진료과에 교수진이 보통 6~7명이 넘어서 어떤 경우는 특정 교수님과 한번도 마주치지 못한 채 실습이 끝나기도 한다. 그래서 2001년 당시 교과 과정에서는 ‘선택 실습’이라고 해서 학생이 특정 교수에게 1주일 추가 실습을 신청하는 제도가 있었다.
평소 정형외과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송 교수님께 선택 실습을 지원해 1주 동안 졸졸 따라다녔다. 그러면서 나름 학생으로서는 약간 어려울 만한 수준의 질문을, 밤새 찾아서 교수님께 말을 걸었고, 송 교수님이 그때 5층 연구실로 데려가 당시 최근 발표하셨던 논문 인쇄본을 선물로 주셨다. 무릎 관절 연골판 치료법도 함께 설명해 주신 기억이 있다.
송 교수님은 1978년에 전남의대를 졸업하고 1986년에 다시 대학병원에 교원으로 복귀하셨다. 80년대는 의료 보험 제도가 지금과 크게 달라, 쉽게 말하면 부를 많이 축적할 수 있어 개원의 유혹이 컸던 시절이다. 그런데 모든 것을 뒤로하고 노성만 주임 교수님의 부름에 바로 다시 들어오셨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 서울대병원에서도 시작하지 않았던 정형외과 파트 분과를 노성만 교수님의 지휘 하에 척추 정재윤 교수, 상지 문은선 교수, 무릎은 송은규 교수로 나누셨고, 이후로 송 교수님의 무릎 연구 일생이 시작됐다.
지금은 흔한 수술이 됐지만, 관절경을 이용한 무릎 전방 십자 인대 수술법을 직접 배우러 1989년에 미국 연수를 다녀오셨다. 당연히 아직 한국에는 수술 기구가 없어 기구 제작사에 의뢰해 필요한 기구들을 만들어 수술을 하셨다. 그리고 교수님의 학자적인 집요함을 엿볼 수 있는 것은 모든 수술 환자 한 분, 한 분의 증례를 기록하고 이를 표로 정리 인쇄해서 진료를 할 때마다 옆에 두고 환자 증상을 업데이트하고, 찾아보고 확인하셨다. 젊은 독자들은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VHS 비디오 테이프를 다 돌려 편집기에 띄우고 필요한 부분만 남기는 밤샘 작업이 필요했다. 엑셀 프로그램, 동영상 제작·편집 기술은 한참 뒤에 등장했다.
이런 각고의 노력으로 송 교수님은 우리나라 무릎(슬관절) 학회에서 능력을 점차 인정받게 됐고, 이 정점을 찍은 것은 단연 무릎 인공 관절 치환술에서 내비게이션과 로봇 수술의 도입이었다. 이는 미국에서 개발되고 발전되기 시작했는데, 곧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을 것이라고 예견하시고 2003년에 국내 대학병원으로서는 처음으로 도입하셨다. 당시 초기 버전으로 만들어진 내비게이션 수술 기구를 미국 생산 업체와 같이 개선하고 더 발전시켰을 뿐 아니라 2004년에는 로봇을 이용한 인공 관절 수술도 이에 결합해 전남대병원 관절센터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려놓으셨다.
이같이 빛나는 업적도 교수님 일생의 연구에서는 한 분야에 불과한 것이라 ‘청어람’을 절대 못 할 것 같아 부담스럽지만 제자로서 연구 과정 일부를 담당했고, 또 결과물의 한 꼭지에 필자가 참여했다는 것을 떠올리면 뿌듯하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서 올 3월 초에 열렸던 송 교수님의 정년 퇴임식에 다녀왔다. 새로운 시작을 하시게 된 교수님의 정년 뒤 펼쳐질 제 2막의 건승을 기원하면서, 다시 한번 불러 본다. “송은규 교수님, 정년 퇴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앞으로도 후학들에게 좋은 가르침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필자는 전남대병원 송은규 교수님을 의대 본과 3학년 실습 때 처음 뵀다. 의과대학 교육 과정은 본과 3학년 후반기가 되면 1년 동안 각 조별로 진료과에서 1주일씩 실습을 한다. 각각의 진료과에 교수진이 보통 6~7명이 넘어서 어떤 경우는 특정 교수님과 한번도 마주치지 못한 채 실습이 끝나기도 한다. 그래서 2001년 당시 교과 과정에서는 ‘선택 실습’이라고 해서 학생이 특정 교수에게 1주일 추가 실습을 신청하는 제도가 있었다.
지금은 흔한 수술이 됐지만, 관절경을 이용한 무릎 전방 십자 인대 수술법을 직접 배우러 1989년에 미국 연수를 다녀오셨다. 당연히 아직 한국에는 수술 기구가 없어 기구 제작사에 의뢰해 필요한 기구들을 만들어 수술을 하셨다. 그리고 교수님의 학자적인 집요함을 엿볼 수 있는 것은 모든 수술 환자 한 분, 한 분의 증례를 기록하고 이를 표로 정리 인쇄해서 진료를 할 때마다 옆에 두고 환자 증상을 업데이트하고, 찾아보고 확인하셨다. 젊은 독자들은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VHS 비디오 테이프를 다 돌려 편집기에 띄우고 필요한 부분만 남기는 밤샘 작업이 필요했다. 엑셀 프로그램, 동영상 제작·편집 기술은 한참 뒤에 등장했다.
이런 각고의 노력으로 송 교수님은 우리나라 무릎(슬관절) 학회에서 능력을 점차 인정받게 됐고, 이 정점을 찍은 것은 단연 무릎 인공 관절 치환술에서 내비게이션과 로봇 수술의 도입이었다. 이는 미국에서 개발되고 발전되기 시작했는데, 곧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을 것이라고 예견하시고 2003년에 국내 대학병원으로서는 처음으로 도입하셨다. 당시 초기 버전으로 만들어진 내비게이션 수술 기구를 미국 생산 업체와 같이 개선하고 더 발전시켰을 뿐 아니라 2004년에는 로봇을 이용한 인공 관절 수술도 이에 결합해 전남대병원 관절센터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려놓으셨다.
이같이 빛나는 업적도 교수님 일생의 연구에서는 한 분야에 불과한 것이라 ‘청어람’을 절대 못 할 것 같아 부담스럽지만 제자로서 연구 과정 일부를 담당했고, 또 결과물의 한 꼭지에 필자가 참여했다는 것을 떠올리면 뿌듯하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서 올 3월 초에 열렸던 송 교수님의 정년 퇴임식에 다녀왔다. 새로운 시작을 하시게 된 교수님의 정년 뒤 펼쳐질 제 2막의 건승을 기원하면서, 다시 한번 불러 본다. “송은규 교수님, 정년 퇴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앞으로도 후학들에게 좋은 가르침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