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 이상은, 애정·서정시 빼어난 晩唐 대표 시인
2019년 04월 30일(화) 00:00

<초당대총장>

이상은(李商隱, 813~858)의 자는 의산으로 회주 하내 출신이다. 두목과 더불어 만당(晩唐)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10세에 부친이 병사하자 장남으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게 되었다. 시인인 삼남서도절도사 영호초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변려체를 전수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영호초의 도움으로 25세에 진사에 급제했다. 교서랑, 동천절도 서기, 검교공부낭중 같은 하급 직위를 역임했다. 837년 재상 영호초가 죽었다. 그는 경원절도사 왕무원의 부름을 받아 참모 겸 사위가 되었다. 영호초는 우승유파인 반면 왕무원은 이덕유파였다. 영호초의 아들 영호도는 그를 변절자로 여겨 혐오했다. 839년 장인의 후원으로 비서성 교서랑이 되지만 배신자라는 비난 속에 홍농현 현위로 좌천되었다. 이후 여러 지방관을 지냈지만 영호도의 견제로 변변한 자리를 얻을 수가 없었다. 무종 회창 2년(842) 다시 비서성 자리를 얻었지만 모친이 사망해 3년상을 치러야 했다. 3년상을 마칠 즈음 무종이 죽고 선종이 즉위했다. 851년 재상 영호도에게 매달려 태학박사라는 하위직을 얻었다. 영호도는 그를 소인의 무리로 여겨 거들떠보지 않았는데 그가 남긴 시를 읽고 마음을 바꿨다. “당신이 지위가 높아 말타고 행차하니 동각에 올라서도 그대를 엿볼 기회를 주지 않네(良君官重施行馬 東閣無因許再窺).” 이후 유중녕이 검남동천절도사가 되자 그를 낙부판관으로 기용했다. 향리로 돌아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는 난해하고 기묘하기로 유명하다. 전고(典故)도 은밀해 시의 의도를 알아내기가 어려웠다. 사람들은 그를 달제어(獺祭魚)라 불렀다. 글을 쓸 때마다 많은 책을 검열하고 좌우에 이를 수북이 쌓아놓은데서 유래했다. 인용하는 범위가 고전뿐 아니라 풍문, 소설, 괴담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당대의 온정균, 단성식과 함께 ‘삼십육체(三十六體)’라 불렀다. 두목과 함께 대소이두(大小李杜)로 추앙받았다. 시의 형식과 기교를 끌어올려 ‘신묘’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후일 “마치 백가지 보물이 늘어져 있고, 천가지 비단과 철망이 얽혀 있으며, 아름답고 고와 어디에도 적용시킬 수 없다”는 평을 받았다.

그의 시에는 상징적 표현이 많다.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정치상황이나 인간관계 등을 고도의 상징과 은유 기법으로 묘사했다. 정치적으로 성공하지 못하고 애정 면에서 사연이 많은 까닭에 신비적인 표현과 간접적 묘사로 의미를 전달했다. 무제시(無題詩)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대표적 무제시인 다음 시를 보면 이런 면이 뚜렷이 나타난다. “만나기도 어렵고 이별도 어려워라. 동풍이 약해지니 온갖 꽃 시드네. 봄누에는 죽을 때에 비단실 뽑아내고 초는 재가 되어서야 촛물이 마르네”(相見時難別亦難 東風無力百花殘 春蠶到死絲方盡 蠟炬成灰淚始乾).

그는 만당의 시인으로 기울어지는 나라의 운명을 깊이 인식했다. 등낙유원(登樂遊原)이라는 오언절구에서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다. “어둠이 다가오고 있어 마음이 불안하네. 수레를 몰아 고원에 오르니 석양은 무한이 좋구나. 다만 이는 황혼에 가깝구나”(向晩意不適 驅車登古原 夕陽無限好 只是近黃昏).

애정시와 서정시에 뛰어났다. 금슬시(錦瑟詩)는 많은 젊은이들이 즐겨 암송하는 대표적 애정시다. “금슬을 열어보니 공교롭게 오십 줄, 줄마다 기둥 하나 젊은 날이 떠오르네.”라는 시구로 농염한 격조와 신비로운 경향으로 감동을 준다. ‘낙씨의 정자에서 최옹과 최연이 생각나 부치다’라는 시에서 탁월한 서정적 묘사력을 엿볼 수 있다. 마지막 구절인 “마른 연잎을 남겨 빗소리를 들려준다”(留得枯荷聽雨聲)는 아름답고 순결한 시적 이미지를 잘 전달한다.

그는 연상인 시인 두목을 좋아했다. 호방한 두목의 시를 높이 평가했다. 시 두사훈(杜司勳)에는 “봄을 아파하고 이별을 아파하는데 마음을 기울인 사람은 세상에 오직 두목뿐이네”(刻意傷春復傷別 人間惟有杜司勳)라는 구절이 있다. 그의 글은 서곤체(西昆體)라 하여 후학들이 존숭했다. 번남갑집 20권, 번남을집 20권 및 옥계생집 3권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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