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함께 전달된 미술관 그림 달력 (297) 달력
2020년 01월 16일(목) 00:00 가가
우리가 흔히 ‘명화’라고 부르는 그림들을 최초로 접했던 것은 어린 시절 우연히 우리 집에 걸리게 된 제약회사 달력 덕분이었던 것 같다. 아마 르누아르 작품이었을 것이다. 중산층 가정으로 보이는 우아하고 고급스런 분위기에 예쁜 금발의 숙녀가 피아노 레슨을 받고 있는 모습을 담은 명화 달력은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이윽고 한해를 보내고 나면 명화달력은 새 학년 새 교과서 책가위로 재활용되기도 했는데 책가위가 닳을까봐 교과서를 아꼈을 정도로 순진한 시절이었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으로 날짜를 확인하고 일정을 관리하는 요즘에는 옛날처럼 달력이 요긴하진 않지만 그러다보니 달력수요도 줄고 실제 달력도 귀해진 것이 사실이다. 올해 광주시립미술관에서 5천 여 점의 소장품 가운데 열두 작품을 선정하여 새해달력을 만들었다. 누군가 명화달력을 통해 불후의 명작들을 최초 만나게 되면서 뜻하지 않은 인생의 영감을 얻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스펙터클한 볼거리의 소용돌이가 어지러운 시대이지만 역설적으로 미술관 그림 달력이 잔잔한 감동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소중한 만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5세기 유럽 최고의 세밀 화가였던 랭부르형제(폴, 에르망, 장)의 ‘베리공작의 호화로운 기도서’는 최초의 명화달력으로 알려진 그림이다. 프랑스 국왕 샤를 5세의 동생이었던 베리공작이 랭부르형제에게 주문하여 그린 이 기도서는 귀족들의 가정용 기도서로 달력이 포함됐다. 공작의 생활과 영지 농민들의 풍속이 12달 계절에 맞게 화려한 채색으로 묘사되어있다.
‘베리공작의 호화로운 기도서’ 중 1월 달력인 이 그림은 그림 오른편에 털모자를 쓰고 앉아있는 베리공작이 새해 신년 연회를 열고 있는 모습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실내에서 잘 차려입은 손님들이 함께 즐거워하고 있는 분위기를 섬세한 묘사와 채색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신년의 설렘이 느껴진다.
<광주시립미술관 학예관·미술사 박사>
<광주시립미술관 학예관·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