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의 몫을 회복하려는 공동주의-김재인 철학자,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교수
2022년 09월 13일(화) 00:30
인류는 무엇을 어떻게 공동으로 나눌 것인지를 함께 풀어 가야 한다. 빼앗는 것이 아닌 나누어 주는 것이 행성적 거버넌스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나는 이런 거버넌스를 ‘공동주의’(共同主義, commonism)라고 명명하겠다. 공동주의의 핵심에 있는 ‘공동/공통/공공/공유/함께’를 가리키는 ‘common’은 공동체(community), 커먼즈(commons), 공산주의(communism), 공화주의(republicanism) 등의 사상 경향을 관통한다. 이 개념은 앞으로 더 발전시켜야 하겠지만, 개요를 다음과 같이 그려 보고 싶다.

공동주의란 인류가 공동으로 누려야 할 공통의 몫에 대한 권리 주장이다. 가령 한국은 내국인뿐 아니라 이주민, 난민, 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코로나19를 무료 혹은 최소 비용으로 치료해 주었다. 혹자는 왜 내가 낸 세금으로 저들을 치료하느냐고 묻는다. 어리석은 항변이 아닐 수 없다. 아니, 그러면 몇몇 사람이 코로나19에 감염된 채로 거리를 활보하게 그냥 놔둬야 한다는 말인가? ‘저들’을 돌보고 치료하는 건 ‘우리’가 건강하고 안전하기 위한 가장 빠른 해법이다. ‘남’과 ‘나’, ‘저들’과 ‘우리’는 딱 부러지게 갈라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모두는 한 장소에서 함께 살고 있다. 코로나19가 환히 드러내 준 진실이다.

모두가 얽히고 엮인 현대 사회에서 협력과 연대는 허울 좋은 수사가 아니라 필수고 필연이다. 협력과 연대가 필수라면 무엇이 가장 큰 장애물일까? 바로 용납하기 힘든 격차다. 인간이 일상에서 분노를 ‘느끼는’ 가장 큰 원인은 격차와 차별이다. 격차와 차별을 느껴 사회에 분노하고 나아가 복수하게 될지도 모를 약자들을 미리 배려하는 것은 이제 공동체의 의무다. 내가 살려면 남부터 살려야 한다. 위기를 겪으면서 현실과 당위가 맞닿고 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인간 공동의 공통된 권리 목록을 하나하나 찾아낼 수 있고, 찾아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모든 것이 상품의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돈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제 물음을 바꿔 던질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얼마의 돈을 ‘기본적인 것’으로 공유하면 격차와 차별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하여 협력과 연대에 자발적으로 동참할 수 있을까? 요컨대, 부자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기 위해 지불할 수 있는 최대 비용은 얼마일까? 빈자가 얼마만큼을 ‘공동’으로 나누어야 분노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예전의 관점에서 보면 이 질문은 어리석기 그지없다. 시장 논리에 따르면 능력과 노력과 성공에 따라 보상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패자는 무능의 증거일 뿐이며, 사회에 기여하지 않은 자는 가난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마땅하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 이후 시장은 실패했음이 판명 났다. 시장의 논리도 허구임이 입증됐다.

실제 시장이 무탈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가사, 돌봄, 봉사, 이주민 노동 등 돈으로 환산되지 않거나 적게만 환산되었던 수많은 부품이 사회의 톱니바퀴와 지렛대로 작동해야 했다. 바이러스는 이 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들이 사라지거나 줄어들자 ‘경제’는 성장을 멈추고 후퇴했다. 역설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는 음지에서 조용히 일하던 이들의 존재감을 일깨웠다.

따라서 우리가 알던 시장은 거짓이며, 무대 장치가 가려진 채 작동한다고 착각해 온 무대다. 기능의 관점에서 보면, 무대 위 배우만이 아니라 무대 뒤 스텝도 똑같이 중요하다. 사막에서 물 한 병의 가격을 따지는 건 부질없다. 이제 가격은 허물을 벗고, 가치와 의미가 생생하게 현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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