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니 뭐니 해도 ‘정(情)세권’이 최고-정유진 코리아컨설트 대표
2022년 11월 07일(월) 00:45 가가
아름다운 빛을 한껏 받으며 담양 읍내 길을 걷고 있었다. 누군가의 집 앞에 자란 탐스러운 무를 보는 순간 발걸음이 멈춰졌다. 가을 석양에 반짝거리는 푸른 무청을 홀린 듯 들여다 보고 있자니 요즘의 먹먹한 심정과 상심이 한순간 떨어져 나가는 듯 했다. 그러고는 “아, 예쁘다!”란 말이 절로 입에서 새어 나왔다. 순간 어디선가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 하나 줄까?”
석양을 등지고 저녁 해에 둘러싸인 어르신은 해맑은 웃음을 지으시며 낮은 담장 너머 서 있는 이방인에게 탐스러운 무 하나를 뽑아 건네주셨다. “뭐요?”나 “거 누구요?” 대신 무를 갖고 싶냐는 질문은 당신의 너그럽고 풍요로운 마음새가 담긴 인사말이였다. 흙이 다 털리지도 않은 무를 받으며 마치 중세시대 영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은 양 충만한 영광과 감동을 느꼈다.
담양에서 광주로 오는 길 내내 그 어르신과 무를 생각했다. 이 경험에 대해 외국인인 남편은 한국의 정이 바로 이런 거라며 지난 한국과 지금의 한국에 대해 토로했다. 그나마 바뀌지 않은 건 오늘 같은 시골의 인심과 정뿐이라며 그래서 서울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분명 그의 말처럼 이 같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정겨운 풍경과 경험을 서울에서 접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올해 10월 기준 우리나라의 총인구는 5146만여 명이라고 한다. 그중 절반 정도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에서 거주한다고 하니 국토 면적의 10분의 1만한 면적에 한국의 인구 절반이 모여 사는 셈이다. 서울 공화국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그러니 국가의 성장 가도를 유지하고 개인의 안녕과 성공을 위해서는 서울과 수도권으로 진입하여 모든 것을 감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회가 되었다.
어느 곳에서나 경쟁을 해서 뒤쳐지지 않고 서울로 가야만 하는 사회가 된 한국은 옆에 앉은 반 친구가 나의 경쟁 상대가 되게 하고, 친구와 이웃을 만들지 않도록 조장한다. 모두가 세뇌라도 당한 듯이 서울에 가야만 하고 서울에서 취업을 해야 하고 서울에서 아파트를 장만하고 사는 것이 성공으로 간주되는 사회가 된 것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선각자들은 수도권 집중을 막지 못하면 나라가 망한다며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강조해왔다. 아울러 지역 균형 발전을 이루기 위한 지방분권 운동에 앞장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서울과 수도권 집중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수도권 인구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미 절반을 넘었고 권력과 돈은 마치 블랙홀처럼 서울과 수도권으로 빨려가고 있다. 이렇게 과밀하게 몰린 도시에서 어떻게 인심과 정이 넘쳐날 수 있을까?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서울에서는 쾌적한 주거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역세권’ ‘숲세권’ ‘공세권’ 등 아파트 분양 광고에 줄줄이 나열되는 다(多)세권을 강조하는 서울 아파트들에는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는 것 같다. 그건 바로 ‘정(情)세권’이다. 정은 사랑이나 친근함을 느끼는 마음이며, 사물이나 대상에 느끼어 일어나는 마음이라는 사전적 정의가 있다.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만남 속에서 친절함과 배려가 없다면 어찌 요즘 같은 팍팍한 삶에 재미와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에 있다는 말을 누구나 알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사람과 사람 간의 사소한 배려와 정을 나누는 것은 바로 그 행복을 가까이에 두는 것이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풍요로움이 넘친다 해도 사람 사이 정을 나누지 못하면 그 사회는 결코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없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베푸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이런 미덕이야 말로 ‘정’이다. 시골의 가을 풍경은 그야말로 풍요롭다. 복잡한 생각과 가슴 아픔을 다독이는 따뜻한 햇살만큼이나 정이 넘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정은 나보다는 남을 우선한 감정으로 남의 입장을 생각하고 이해할 때 생겨나는 감정이다. 그 어느 때보다 서로를 배려하는 사회적 차원의 정이 필요한 시기에 풍요로운 시골의 가을 정취와 인심에 젖은 나는 지인들에게 용기를 내어 말하고 싶다. “친구들이여, 갑갑한 서울살이 그만들 하고 여기 정세권 최고인 동네로 오세요”
담양에서 광주로 오는 길 내내 그 어르신과 무를 생각했다. 이 경험에 대해 외국인인 남편은 한국의 정이 바로 이런 거라며 지난 한국과 지금의 한국에 대해 토로했다. 그나마 바뀌지 않은 건 오늘 같은 시골의 인심과 정뿐이라며 그래서 서울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분명 그의 말처럼 이 같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정겨운 풍경과 경험을 서울에서 접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선각자들은 수도권 집중을 막지 못하면 나라가 망한다며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강조해왔다. 아울러 지역 균형 발전을 이루기 위한 지방분권 운동에 앞장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서울과 수도권 집중화는 더욱 심화되었다. 수도권 인구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미 절반을 넘었고 권력과 돈은 마치 블랙홀처럼 서울과 수도권으로 빨려가고 있다. 이렇게 과밀하게 몰린 도시에서 어떻게 인심과 정이 넘쳐날 수 있을까?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서울에서는 쾌적한 주거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역세권’ ‘숲세권’ ‘공세권’ 등 아파트 분양 광고에 줄줄이 나열되는 다(多)세권을 강조하는 서울 아파트들에는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는 것 같다. 그건 바로 ‘정(情)세권’이다. 정은 사랑이나 친근함을 느끼는 마음이며, 사물이나 대상에 느끼어 일어나는 마음이라는 사전적 정의가 있다.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만남 속에서 친절함과 배려가 없다면 어찌 요즘 같은 팍팍한 삶에 재미와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에 있다는 말을 누구나 알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사람과 사람 간의 사소한 배려와 정을 나누는 것은 바로 그 행복을 가까이에 두는 것이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풍요로움이 넘친다 해도 사람 사이 정을 나누지 못하면 그 사회는 결코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없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베푸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이런 미덕이야 말로 ‘정’이다. 시골의 가을 풍경은 그야말로 풍요롭다. 복잡한 생각과 가슴 아픔을 다독이는 따뜻한 햇살만큼이나 정이 넘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정은 나보다는 남을 우선한 감정으로 남의 입장을 생각하고 이해할 때 생겨나는 감정이다. 그 어느 때보다 서로를 배려하는 사회적 차원의 정이 필요한 시기에 풍요로운 시골의 가을 정취와 인심에 젖은 나는 지인들에게 용기를 내어 말하고 싶다. “친구들이여, 갑갑한 서울살이 그만들 하고 여기 정세권 최고인 동네로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