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의 봄- 박용수 광주동신고 교사·수필가
2023년 02월 13일(월) 00:00 가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비로소 꽃이 되었다.”(김춘수 ‘꽃’)
관계의 핵심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그것은 호칭으로 나타난다.
꽃을 부른 것처럼 영산강을 호명해 본다. 영산강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정작 멀리서만 바라보았을 뿐 다른 강처럼 풍덩 빠져 보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옥숙이 숙자 희자 미숙이 점숙이 모두 친구 이름이다. 그런데 이런 이름은 요즘 아이들이 쓰지 않고, 친구들도 상당수 개명을 했다. 혹시 영산강도 이들처럼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걸까.
영산강은 호남 서부 대부분에 걸쳐 흐르고 168개 지류를 품고 담양의 식영정 풍영정 등 유명한 정자는 물론 수많은 사람의 애환을 싣고 흐르는 우리나라 4대강이다.
그래서 여러 작가들의 배경이 되곤 했다. 김신운은 ‘율치 연대기’에서 낚시 기술의 발전 과정을 통해 영산강의 변천사를, 문순태는 ‘타오르는 강’에서 민중들의 도도하고 질긴 삶을, 정찬주는 ‘영산강의 꿈’에서 의병들과 민초들의 희망을 민족 서사시로 장엄하게 부활시켰다.
영산강은 처음부터 유채꽃 만발하고 버들강아지가 봄을 알리는 강은 아니었다. 섬진강에 가면 꽃여울(화탄) 달여울(월탄) 만수탄이 있다. 영산강 본류에서 살짝 벗어난 남평에 있는 돌폿강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화순 도암에 운포 월포 화포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구름개 달개 꽃개, 고유 지명이 생생하게 남아있는 마을이다.
이렇듯 고유어가 한자어로 바뀌고 다시 한자어가 수없이 버림받고 채택되기를 거듭하는 사이 영산강은 제 본뜻을 잃고 무심코 흐르고 있는지 모른다.
곳곳에 강을 예성강 충신강 돌폿강 드들강 금호강 동강 극락강 황룡강 몽탄강 곡강 사호강 등으로 불린 강, 이런 다양한 고유명사를 품은 영산강이 대표 강으로 우뚝 서기까지 무슨 사연이 있었을 터인데….
영산강은 흑산도의 영산도와 무관한 것은 분명하다. 혹시 영산은 꽃 영자를 쓰지만 금성산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강, 그림자 영자가 와전되지는 않았을까. 꼭꼭 숨어있는 마을 꼬두메가 꽃뫼로 변해 영산이 된 것도 같고….
광주천이 운치와 멋이 없다며 ‘대추여울’로 부르자는 이들이 많아졌다. 대추여울, 어등산 노을이 수면 위에서 대추처럼 붉게 일렁이는 듯 시심이 일어난다. 영산강도 어쩌면 이런 아름다운 이름들을 여럿 품고 있었을 게다. 왜 녀석은 제 이름을 잊어버렸을까. 그리고 아무 상관없는 영산도가 자신을 오염시키는 데도 무연한 걸까. 견훤이나 삼별초 또는 36년의 한스러운 역사에 스스로 맥이 풀린 것일까.
그런데도 상류와 하류 나름대로 멋을 간직한 자존심 강한 강이다. 수많은 이야기와 정자를 품고 있고, 드넓은 농토를 거느리고 있는 남도의 대동맥이다.
구진포 장어, 드들강 쏘가리, 극락강 메기탕, 충신강 붕어찜 등 맛집도 많았다. 그런데 하굿둑과 여러 보들이 들어서면서 물길이 막히고 고이면서 영산강은 시들시들해졌다. 물론 홍수를 예방하고 물을 저장하는 일은 중요하다. 허나 매년 겨울 영산강 상류를 포클레인으로 평탄하게 고르는 사업은 중지했으면 좋겠다. 상류는 자연 하천 그대로 유지하여 강의 맛이 나는 멋진 경관이 생기도록 해야 한다.
깊고 얕은 곳이 생기면서 상하로나마 곡천이 되면서 물길이 생기고 맑아지며 물고기들이 사는 등 생태계가 복원된다. 즉 자연은 그냥 놔두면 스스로 예술 작품을 만든다. 적어도 화순 담양 상류 정도는 각 지천을 물길이 생기는 대로 두면서 영산강을 보존했으면 좋겠다.
어찌 이름이 중할까. 강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 역시 강이다. 아름다운 강은 또다시 이름도 윤슬이나 여울처럼 빛날 터이다. 스스로 멋진 강이 되면 물고기도 새들도 몰려들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도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멱도 감고 물장구도 치면서 자연의 일부가 될 것이다.
영산강의 봄은 수많은 지류가 제 모습을 찾고 제 이름을 되찾을 때 비로소 오지 않을까.
관계의 핵심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그것은 호칭으로 나타난다.
꽃을 부른 것처럼 영산강을 호명해 본다. 영산강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정작 멀리서만 바라보았을 뿐 다른 강처럼 풍덩 빠져 보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영산강은 호남 서부 대부분에 걸쳐 흐르고 168개 지류를 품고 담양의 식영정 풍영정 등 유명한 정자는 물론 수많은 사람의 애환을 싣고 흐르는 우리나라 4대강이다.
그래서 여러 작가들의 배경이 되곤 했다. 김신운은 ‘율치 연대기’에서 낚시 기술의 발전 과정을 통해 영산강의 변천사를, 문순태는 ‘타오르는 강’에서 민중들의 도도하고 질긴 삶을, 정찬주는 ‘영산강의 꿈’에서 의병들과 민초들의 희망을 민족 서사시로 장엄하게 부활시켰다.
영산강은 처음부터 유채꽃 만발하고 버들강아지가 봄을 알리는 강은 아니었다. 섬진강에 가면 꽃여울(화탄) 달여울(월탄) 만수탄이 있다. 영산강 본류에서 살짝 벗어난 남평에 있는 돌폿강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화순 도암에 운포 월포 화포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구름개 달개 꽃개, 고유 지명이 생생하게 남아있는 마을이다.
영산강은 흑산도의 영산도와 무관한 것은 분명하다. 혹시 영산은 꽃 영자를 쓰지만 금성산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강, 그림자 영자가 와전되지는 않았을까. 꼭꼭 숨어있는 마을 꼬두메가 꽃뫼로 변해 영산이 된 것도 같고….
광주천이 운치와 멋이 없다며 ‘대추여울’로 부르자는 이들이 많아졌다. 대추여울, 어등산 노을이 수면 위에서 대추처럼 붉게 일렁이는 듯 시심이 일어난다. 영산강도 어쩌면 이런 아름다운 이름들을 여럿 품고 있었을 게다. 왜 녀석은 제 이름을 잊어버렸을까. 그리고 아무 상관없는 영산도가 자신을 오염시키는 데도 무연한 걸까. 견훤이나 삼별초 또는 36년의 한스러운 역사에 스스로 맥이 풀린 것일까.
그런데도 상류와 하류 나름대로 멋을 간직한 자존심 강한 강이다. 수많은 이야기와 정자를 품고 있고, 드넓은 농토를 거느리고 있는 남도의 대동맥이다.
구진포 장어, 드들강 쏘가리, 극락강 메기탕, 충신강 붕어찜 등 맛집도 많았다. 그런데 하굿둑과 여러 보들이 들어서면서 물길이 막히고 고이면서 영산강은 시들시들해졌다. 물론 홍수를 예방하고 물을 저장하는 일은 중요하다. 허나 매년 겨울 영산강 상류를 포클레인으로 평탄하게 고르는 사업은 중지했으면 좋겠다. 상류는 자연 하천 그대로 유지하여 강의 맛이 나는 멋진 경관이 생기도록 해야 한다.
깊고 얕은 곳이 생기면서 상하로나마 곡천이 되면서 물길이 생기고 맑아지며 물고기들이 사는 등 생태계가 복원된다. 즉 자연은 그냥 놔두면 스스로 예술 작품을 만든다. 적어도 화순 담양 상류 정도는 각 지천을 물길이 생기는 대로 두면서 영산강을 보존했으면 좋겠다.
어찌 이름이 중할까. 강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 역시 강이다. 아름다운 강은 또다시 이름도 윤슬이나 여울처럼 빛날 터이다. 스스로 멋진 강이 되면 물고기도 새들도 몰려들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도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멱도 감고 물장구도 치면서 자연의 일부가 될 것이다.
영산강의 봄은 수많은 지류가 제 모습을 찾고 제 이름을 되찾을 때 비로소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