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역사의 창’] ‘일본서기’와 종북 몰이
2023년 07월 20일(목) 00:00 가가
역사학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과거의 사료를 해석하는 학문이다. 사료가 없으면 역사학은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역사학의 장점이자 한계이다. 그래서 역사학 공부의 첫발은 사료 공부다. 이를 사료 비판이라고 하는데 두 단계로 진행된다. 첫 단계는 특정 사료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판정하는 ‘진위(眞僞) 판정’이다. 사료의 진위를 판정한 결과 가짜라는 결론이 나왔다면 두 번째 단계로 갈 필요도 없이 그 사료는 폐기된다. 그 사료가 진짜라는 결론이 나왔으면 두 번째 단계로 나아간다. 그 사료의 가치가 어느 정도 되는지를 검토하는 ‘가치 판정’이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말한다. 상당 부분 맞는 말이다. 그러나 역사가는 승자의 시각으로 그 시대를 보지는 않는다. 때로는 승자의 기록보다 지워진 패자의 목소리에 주목한다.
사료 비판의 문제는 가끔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명하기 힘든 사료들이 있다는 점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일본서기’가 그런 경우다. 일본서기는 서기 720년에 야마토왜(大和倭)에서 편찬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거짓말하기로 마음먹고 편찬한 책이다. 일본서기는 ‘고대 야마토의 왜왕(倭王)’을 역사의 주체로 삼아 쓴 책이다. 야마토왜는 빨라야 3세기 후반에 가야계가 규슈(九州)에 진출하면서 시작한다. 일본에서도 ‘일 왕가의 조상’(皇祖:황조)들의 발상지라고 인정하는 규슈 남부 미야자키현(宮崎縣)의 사이토바루(西都原) 고분군이 이를 말해 주는 유적이다. 그런데 이 유적은 서기 3세기 말부터 시작하는 가야계 고분이다. 야마토왜는 빨라야 서기 3세기에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서기는 서기전 660년에 시작하는 것으로 실제 역사를 1천 년 가량 늘려 놨다. 그러니 앞뒤가 맞지 않는 내용이 수를 셀 수 없이 많다. 또한 일본서기는 신라·고구려·백제·가야가 모두 야마토왜에 조공을 바치던 속국이라고 서술해 놨다. 야마토왜는 6세기까지 철을 만드는 제철 기술도 없었는데, 서기전 1세기 건국 당시 상당한 제철 기술을 갖고 있던 나라들이 모두 식민지였다는 것이니 물론 거짓이다. 이런 일본서기는 진서인가 위서인가?
그래서 일본에 근대 메이지(明治) 정권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일본에서도 일본서기를 사실을 서술한 역사서로 보는 학자들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조선총독부의 이미니시 류(今西龍)를 필두로 일본인 식민 사학자들이 일본서기는 진짜고, 삼국사기는 가짜라고 우기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일본서기는 서기 371년에 백제 국왕과 그 아들이 야마토왜의 사신에게 이마를 땅에 대고 충성을 맹세했다고 나온다. 반면 삼국사기는 그해 백제의 근초고왕과 아들 근구수가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해 고구려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고 나온다. 둘 중의 하나는 거짓이다. 이를 사료 비판 해 보면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는 삼국사기 기록은 중국의 ‘북사’(北史)와 ‘위서’(魏書)에도 나오는 역사적 사실이다. 야마토왜의 사신에게 충성을 맹세했다는 내용은 일본서기에만 나오는 넋두리이다. 역사학의 기초인 사료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면 일본서기 내용이 가짜다.
그래서 일본서기는 진짜고 삼국사기는 가짜라고 하는 역사가는 일제가 한국을 점령하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남한 강단 사학계는 이구동성으로 삼국사기는 믿을 수 없고 일본서기는 진짜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일본서기를 인용하면 식민 사학이냐?”라고 항변한다. 북한의 김석형·조희승은 일본서기를 인용해서 임나는 가야가 아니라 가야계가 일본 열도에 진출해서 세운 소국, 분국이라는 분국설(分國說)을 주장했다. 북한 학계의 분국설에 대해 전 세계 어느 누구도 ‘식민 사학’이라고 비판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한 강단사학은 분국설을 비난하면서 북한 학계의 분국설을 인용하면 ‘종북’이라는 ‘종북 몰이’에 나서고 있다. 남한 강단사학이 기댈 곳은 분단, 반통일의 ‘종북 몰이’밖에 없다는 반증이다. 그래서 역사학의 기초인 사료 비판을 무시한 남한 강단 사학이 갈 길을 잃은 것은 역사학의 ‘필연’으로 보인다.
<순천향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그래서 일본서기는 진짜고 삼국사기는 가짜라고 하는 역사가는 일제가 한국을 점령하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남한 강단 사학계는 이구동성으로 삼국사기는 믿을 수 없고 일본서기는 진짜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일본서기를 인용하면 식민 사학이냐?”라고 항변한다. 북한의 김석형·조희승은 일본서기를 인용해서 임나는 가야가 아니라 가야계가 일본 열도에 진출해서 세운 소국, 분국이라는 분국설(分國說)을 주장했다. 북한 학계의 분국설에 대해 전 세계 어느 누구도 ‘식민 사학’이라고 비판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한 강단사학은 분국설을 비난하면서 북한 학계의 분국설을 인용하면 ‘종북’이라는 ‘종북 몰이’에 나서고 있다. 남한 강단사학이 기댈 곳은 분단, 반통일의 ‘종북 몰이’밖에 없다는 반증이다. 그래서 역사학의 기초인 사료 비판을 무시한 남한 강단 사학이 갈 길을 잃은 것은 역사학의 ‘필연’으로 보인다.
<순천향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