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예술 애호가에 대한 헌사 - 김미은 여론매체부장·편집국 부국장
2023년 09월 06일(수) 00:00
“아빠 친구분들이야.”

검은 상복을 입은 그의 아내가 말했다. 일행은 그녀를 껴안은 채 울음을 터트렸다. 영정 사진을 멍하니 바라봤다. 믿기지 않은 현실이었다. 그가 좋아했던 영화 속 한 장면, 연극 속 한 장면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오랫동안 문화부 기자 생활을 하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글을 썼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작품을 만들어내는 예술가들과 피땀 어린 결과물이 주된 글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그걸 감상하고, 감동받는 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폴시케’라는 시민이 남긴 흔적

그런 점에서 ‘polsike(폴시케)’라고 불렸던 그는 내가 아는 한, 광주에서 가장 열성적인 향유자였다. 무엇보다 예술가들을 응원하고, 늘 감사의 마음을 전했던 마음 따뜻한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국어교사였던 그는 명예퇴직 후 가장 먼저 광주일보를 구독했다. 문화면에 실린 공연, 전시, 강연 관련 세세한 정보을 얻고 싶어서였다. 그는 문화계의 유명인사였다. 클래식, 연극, 무용 등 장르를 가리지 않았고 미술관도 자주 찾았다. 20년도 더 전에 내가 처음 그를 만난 광주극장 역시 그의 아지트였다. 스무 살이 넘는 나이 차였지만 한번도 그 간극을 느끼지 못했다.

이 글을 쓰며 오랜만에 ‘벌써’를 뜻하는 전라도 방언에서 이름을 따온 그의 블로그 ‘polsike의 제멋대로 영화 이야기’에 들어가 봤다. 153만 명이 다녀간 블로그에 적힌 2885개의 글은 광주에서 열렸던 숱한 문화행사의 아카이브 창고였다. “선우예권의 연주에 감동하여 나는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늘 솔직한 감상평을 내놓는 그와 작품 이야기를 할 때면 언제나 즐거웠다. 호불호가 갈렸던 봉준호 감독 작품을 제외하면 취향도 비슷했다. 워낙 다양한 공연과 영화를 섭렵하는 그 덕에 놓칠 뻔한 작품을 관람한 적도 많았다.

그는 무엇보다 작품에 감동을 받으면 그 마음을 예술가들에게 ‘꼭’ 전하는 사람이었다. 희끗희끗한 머리의 그가 공연 후 로비에서 출연자들과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자주 보고는 했다. 꽃다발을 전달하고, 단원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그가 애정을 줬던 지역 단체들은 많다. 많이 아꼈던 극단 ‘얼·아리’가 ‘발톱을 깎아도’로 전국 연극제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을 때는 누구보다 기뻐했다. 임지형, 김미숙 교수의 무용 작품도 빠짐없이 관람했다. 구자범 지휘자 시절부터 광주시립교향악단의 응원군이었고, 광주시립발레단의 열혈팬이었다. 그는 아마도 광주의 예술가들이 가장 사랑했던 관객이었을 것이다.

그는 사랑하는 작품을 널리 알리는 자발적 홍보대사이기도 했다. 지금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고차분 작가가 대표적이다. 2019년 첫 대면한 그림에 대해 그는 “작품들이 반갑게 내게 눈짓을 하며 말을 걸어왔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자고. 그래서 하나하나 이야기를 나누며 감상했다. 전시회에서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라고 썼다. 이후 고 작가의 작품을 여러 점 구입했고, 블로그에 많은 글을 올렸다. 문정현 감독의 다큐멘터리 ‘할매꽃’에 감동받았던 그는 문 감독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나주 추어탕집 홍보에도 열심이었다.

예술 생산자이기도 했던 그는 칠순을 맞아 풍경 사진전을 열었고 시와 사진을 함께 모은 책 ‘자자애애’를 펴냈다. 누군가는 이 책에 대해 “어떤 곳에는 소년이, 어떤 곳에는 소녀가, 또 어떤 곳에는 인생의 선배가 계신듯하다”고 썼다.



지역 예술가들의 응원군

뭐니뭐니해도 그가 가장 사랑했던 공간은 광주극장이었다. 개관 기념일 즈음이면 언제나 그의 이름이 적힌 화분이 놓여 있었고 선물을 증정하는 자체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 이명세 감독의 ‘형사 dualist’ 등 좋아하는 작품 홍보를 위해 코스프레도 마다하지 않았다.

광주극장에 붙어 있는, 20년 전 빛바랜 광주일보 기사 속에서 웃고 있는 그의 모습에 아련해진다. 극장 측은 올해가 가기 전 그를 기억하는 작은 행사를 기획중이다. 그가 광주극장에서 열 다섯 번이나 보며 환호했던 영화 ‘헤드윅’을 함께 보며 서둘러 가버린 그를 떠올리면 좋겠다. 모든 예술과 지역의 예술가들을 사랑했고, 그 사랑을 아낌없이 표현했던, 평범한 이가 남긴 흔적들을 되새기면 좋겠다. 지역 문화계를 풍요롭게 하는 건 수많은 ‘폴시케’들일 터다.

그에 대해 긴 이야기를 썼지만 가장 깊게 남아 있는 건, 가슴 뭉클했던 이 장면이다. 그는 폐지 줍는 어르신들을 위해 자가용 트렁크에 늘 박스나 신문지 더미를 싣고 다녔다. 그러다 멀리서 리어카를 끌고 가는 어르신들이 보이면 얼른 내려 차 트렁크를 열고 박스를 할머니, 할아버지의 리어카에 잔뜩 실어드리곤 했다. 떡이며 먹을거리도 함께.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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