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밥 먹고 합시다’] 삼합과 낙지호롱
2024년 01월 17일(수) 21:30 가가
오랜 친구가 목포에서 출판기념회를 치렀다. 핑계가 좋아서 전국에 사는 선후배들이 어울려 하루 먼저 진을 쳤다. 목포역 뒷동네에 방을 잡고 동네 산책을 했다. 길건너 죽교동으로 해서 다시 구도심으로 돌아 한 바퀴, 호흡도 좋았다.
역시 먹는 일 만큼 남도에서 기대가 큰 게 없다. 옛날 치과가 있던 자리라고 했던가. 치과 이름 그대로 주점이 되었다. ‘게미진다’는 건 호남에서 쓰는 말인데, 어쩜 그리 음식에 걸맞는 말인지. 무얼 시켜도 혀에 붙는다. 찬을 한 상 까는데, 어찌나 정갈하고 흐뭇하던지. 이미 그 반찬으로 목포의 생막걸리가 몇 병 쓰러졌다. 목포는 왜 막걸리도 맛있는지 모르겠다. 크게 좋아하지는 않아서 어지간해선 잘 안 먹는 굴전이며 육전이 달고 기름져서 죄책감까지 들었다. 이런 맛의 호사를 함부로 누려도 되는 거야. 날이 차고 세상이 흉흉하니 그랬을 것이다.
그래도 목포에 왔으니 홍어는 먹자고, 삽합으로 하자고 누가 말해서 접시 하나를 시켰다. 목포 왔다고 꼭 삼합 시키는 건 촌스럽다고, 다른 게 얼마나 많은데 꼭 삼합이냐 하여 좌중이 흔들거렸는데 기어이 합의를 봤다. 그럼 작은 접시로 간단히 하자고. 결국은 그게 패착(?)이었다. 다시 한 접시 더. 또 한 접시. 진작에 큰 접시를 하나 시킬 것이지.
홍어는 전국화된 음식이다. 처음에는 호남출신 출향 인사들이 많은 서울과 부산 일대에서 먹었다. 그러다가 맛 그 자체로 인기가 생겼다. 전국 어디든 홍어삼합을 팔게 된 것이다.
홍어는 좋아하는데 나는 함부로 잘 시키지는 않는다. 값도 비싼 음식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다른 이유가 있다. 홍어의 품질을 떠나 수육이 영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다. 갓 삶은 고기가 아니거나 더러는 수입산을 잘못 써서 퍽퍽하고 비린내가 나는 집도 많다. 목포에서도 그런 경우를 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망설임은 거기서 온 셈이다. 그러나 그 집은 수육까지도 훌륭했다. 촉촉하고 진했다. 홍어는 제철을 맞아서 찰기가 마치 개혼하는 잔칫집 찰떡 같았다. 입에 붙어 떨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흑산도 치’의 위력이었달까.
삼합은 원래 홍어의 이동경로인 목포-나주로 거쳐 호남 여러 지역에 핏줄처럼 번져가는 오랜 음식이었다. 잔칫날이니 홍어에 고기 삶고 김치를 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헌데 그게 그리 단순하지 않은 연유가 있다는 것이다.
“잔치를 하면 남은 음식을 싸주잖아. 꾸러미나 봉지 안에서 홍어며 돼지고기며 김치가 어우러져 같이 뒤섞여 있게 되는 거지. 잔칫날 멀리 걸어서 오가며 그 음식이 섞일 수밖에. 걸어다녔으니까. 그걸 따로 먹을 수도 없잖아. 함께 먹어보니 기막히더라 말이지. 삼합은 그렇게 탄생했다고.” 신안 출신 인사의 말이다. 아주 그럴 듯하다. 민속적인 해석이다. 동의한다. 설사 누가 ‘삼합은 그렇게 나온 게 아니고 내가 만든 작품이요!’하더라도 이 해석은 그 자체로 가치 있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낙지호롱도 마찬가지야. 옛날엔 낙지를 잡아서 나뭇가지에 둘둘 말아서 가져왔다고. 이 놈이 발을 뻗치고 하니, 고정시키는 거지. 그렇게 들고 온 낙지를 보니, 그대로 구워도 되겠더라. 양념 발라 불에 그대로 올리니 호롱구이가 되어버린 거지.” 역시 누가 낙지호롱은 그게 아니라 해도, 이 해석은 의미 있다. 독자들 사이에서 사실이 다르다 하실 분도 있을 테다.
그러나 민중의 음식은 그 다양한 해석이 따라야 더 흥미롭다. 무슨 공산품처럼 딱 떨어지게 결론이 나지 않아서 더 아름답다. 짜장면은 어느 중국집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 정확히 언제 생겼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더 구미가 당기고 설왕설래가 있고 짜장면 하나만 놓고 전문가들이 일주일간 토론을 할 거리가 된다.
홍어삼합도 아직 갈 길이 먼 음식이다. 학술적 연구, 생태적 조사는 많이 이루어졌는데 그 음식을 먹는 인류문화적 연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래서 살아 있는 음식이다. 아이고, 글을 쓰다보니 다시 혀에 붙던 그 홍어가 생각나네. 내 옆에는 그놈이 없으니 당장 괴로운 일이다.
<음식 칼럼니스트>
역시 먹는 일 만큼 남도에서 기대가 큰 게 없다. 옛날 치과가 있던 자리라고 했던가. 치과 이름 그대로 주점이 되었다. ‘게미진다’는 건 호남에서 쓰는 말인데, 어쩜 그리 음식에 걸맞는 말인지. 무얼 시켜도 혀에 붙는다. 찬을 한 상 까는데, 어찌나 정갈하고 흐뭇하던지. 이미 그 반찬으로 목포의 생막걸리가 몇 병 쓰러졌다. 목포는 왜 막걸리도 맛있는지 모르겠다. 크게 좋아하지는 않아서 어지간해선 잘 안 먹는 굴전이며 육전이 달고 기름져서 죄책감까지 들었다. 이런 맛의 호사를 함부로 누려도 되는 거야. 날이 차고 세상이 흉흉하니 그랬을 것이다.
홍어는 좋아하는데 나는 함부로 잘 시키지는 않는다. 값도 비싼 음식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다른 이유가 있다. 홍어의 품질을 떠나 수육이 영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다. 갓 삶은 고기가 아니거나 더러는 수입산을 잘못 써서 퍽퍽하고 비린내가 나는 집도 많다. 목포에서도 그런 경우를 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망설임은 거기서 온 셈이다. 그러나 그 집은 수육까지도 훌륭했다. 촉촉하고 진했다. 홍어는 제철을 맞아서 찰기가 마치 개혼하는 잔칫집 찰떡 같았다. 입에 붙어 떨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흑산도 치’의 위력이었달까.
“잔치를 하면 남은 음식을 싸주잖아. 꾸러미나 봉지 안에서 홍어며 돼지고기며 김치가 어우러져 같이 뒤섞여 있게 되는 거지. 잔칫날 멀리 걸어서 오가며 그 음식이 섞일 수밖에. 걸어다녔으니까. 그걸 따로 먹을 수도 없잖아. 함께 먹어보니 기막히더라 말이지. 삼합은 그렇게 탄생했다고.” 신안 출신 인사의 말이다. 아주 그럴 듯하다. 민속적인 해석이다. 동의한다. 설사 누가 ‘삼합은 그렇게 나온 게 아니고 내가 만든 작품이요!’하더라도 이 해석은 그 자체로 가치 있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낙지호롱도 마찬가지야. 옛날엔 낙지를 잡아서 나뭇가지에 둘둘 말아서 가져왔다고. 이 놈이 발을 뻗치고 하니, 고정시키는 거지. 그렇게 들고 온 낙지를 보니, 그대로 구워도 되겠더라. 양념 발라 불에 그대로 올리니 호롱구이가 되어버린 거지.” 역시 누가 낙지호롱은 그게 아니라 해도, 이 해석은 의미 있다. 독자들 사이에서 사실이 다르다 하실 분도 있을 테다.
그러나 민중의 음식은 그 다양한 해석이 따라야 더 흥미롭다. 무슨 공산품처럼 딱 떨어지게 결론이 나지 않아서 더 아름답다. 짜장면은 어느 중국집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 정확히 언제 생겼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더 구미가 당기고 설왕설래가 있고 짜장면 하나만 놓고 전문가들이 일주일간 토론을 할 거리가 된다.
홍어삼합도 아직 갈 길이 먼 음식이다. 학술적 연구, 생태적 조사는 많이 이루어졌는데 그 음식을 먹는 인류문화적 연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래서 살아 있는 음식이다. 아이고, 글을 쓰다보니 다시 혀에 붙던 그 홍어가 생각나네. 내 옆에는 그놈이 없으니 당장 괴로운 일이다.
<음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