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향 40주년과 함께하는 남도투어] 맛과 멋·온정 가득한 전남의 전통시장
2024년 02월 05일(월) 19:50
5·10일 따뜻한 정을 만날 수 있는 ‘곡성 석곡시장’ 오일장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호남 최대 재래시장 ‘순천 아랫장’
창평 정통시장…2년전 화재로 임시시장서 명절 대목 기대
지역 특산물·먹거리 가득한 전통시장서 설 장보기 하세요

곡성 석곡시장 약초 가게. 건강한 식재료들이 한가득이다.

시골 전통시장에는 정이 오고간다. 물건을 사고파는 소비자와 상인이 아닌, 사람 사는 마음과 정을 사고파는 설렘 가득한 하루가 열리는 날이다. 전남에는 2023년 기준 총 61곳의 오일장이 열리고 있다. 농산물이나 해산물 등 계절에 따라 다양하고 신선한 특산물을 만날 수 있다. 딱히 사고자 하는 물건이 없더라도 장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도 모르게 꽉 닫은 지갑이 열릴지도 모른다.

순천 아랫장 농산물 코너에서 한 상인이 이른 아침부터 판매할 파를 다듬고 있다. 전남의 전통시장에는 맛과 흥과 정이 넘쳐난다.
◇따뜻한 정이 오가는 곡성 석곡시장= “이것 좀 잡솨 봐. 아무나 안줘요. 뜨겅께 얼른 받으쇼.” 뻥튀기 기계 앞에서 구경하고 서 있는 기자에게 갓 구워 나온 땅콩 한주먹을 건네주는 할머니. 괜찮다며 가져가서 드시라고 하는데도 뜨거우니 빨리 받으라고 재차 권해주신다. 유독 크기가 크고 토실토실해 보이는 땅콩은 막 구워서인지 유달리 고소한 맛이다. 추운 날씨에 오래 서 있어 얼어가고 있던 손발까지 녹여주는 따뜻한 맛이었다.

담양 창평오일장에서 만난 건고추 파는 할머니.
지난 1월 10일 찾아간 곡성 석곡전통시장. 겨울이라 날씨는 제법 쌀쌀했고 곳곳에 삼삼오오 모여 원형 철통 장작불에 불을 지피고 추위를 녹이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60~70대 할머니 할아버지 상인들이다. 시골 장은 보통 5일 단위로 장이 서는데 이를 ‘오일장’이라고 부른다. 장이 열리는 날을 ‘장이 선다’라고 표현한다. 석곡시장은 매월 5일과 10일 단위로 장이 선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시장에 와서 아버지 일을 도와드리고 했어요. 그때 장사 규모는 지금과 비교가 안됐죠. 하루장만 봐도 그때 돈으로 100만원~150만원씩 팔았으니까요. 그때는 우시장이 있어서 사람도 많았고 물건도 어마어마했어요. 순천, 주암, 목사동면까지 인근 면에서 많이들 찾아왔습니다.”

석곡전통시장 김종희 상인회장은 어릴 적부터 석곡장에서 놀다시피 자랐다. 부친이 이곳에서 건어물과 식품 잡화점을 운영했고 뒤를 이어 물려받았다가 지금은 업종을 바꿔 자전거 판매 수리일을 하고 있다.

석곡시장은 보통 새벽 5시부터 하루가 시작된다. 상인들이 먼저 나와 오늘 팔 물건들을 정리하고 나면 6~7시부터 손님들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날이 늦게 밝아지는 겨울철에는 7시 넘어서부터나 사람구경을 할 수 있다. 예전에는 오후 3~4시까지도 장이 이어졌지만 요즘에는 점심 이후로는 거의 파장이다. 그나마 명절이 다가올수록 방문객도 늘고 파장 시간도 늦춰져 비로소 장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서너 장 부터나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해요. 설 명절이 2월 10일이니까 3~4장 전인 1월 20일부터 25일, 30일, 2월 5일까지 북적거린다는 거죠. 방앗간도 바빠지고 야채 파는 곳이나 옷가게까지 다들 바빠집니다. 말 그대로 명절 대목입니다.”

석곡장은 오일장이지만 매월 마지막 장은 끝날 열린다. 31일까지 있는 달은 30일이 아닌 31일 장이 서고, 올 2월은 29일 장이 선다.

순천 아랫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먹음직스런 꽈배기와 도너츠.
◇없는 게 없는 호남 최대 규모 순천 아랫장= 설 대목인줄 착각할 뻔 했다. 아직 한 달이나 남아있는데 말이다. 1월 12일 방문한 순천 아랫장은 새벽부터 대낮까지 상인들과 방문객들이 발디딜 틈 없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매월 2일과 7일 장이 열리는 순천 아랫장은 호남 최대의 재래시장이자 전국에서도 세 번째로 큰 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중앙광장으로 들어서니 직접 농사지은 각종 야채와 채소들을 가지고 나와 좌판을 하는 할머니들이 여럿이다. 대파, 쪽파, 봄동, 배추, 당근, 브로콜리, 감자, 고구마, 달래, 양배추, 시금치, 양파, 그리고 각종 나물류까지 종류를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광장 주위로 우거지 국밥, 국수, 명태찜, 짬뽕 식당이 역시나 분주하게 움직이고 전집도 몇군데 장사를 하고 있다. 짜장 집은 방송에도 여러 번 등장했던 유명 맛집이다.

유독 손님들이 북적이고 활기차 보이는 곳은 수산물시장이다. 수산물에만 50여 개의 점포가 운영되고 있다. 수산물시장에서 반가운 얼굴을 다시 만났다. 석곡장에서 건어물을 판매하던 한영기씨가 아랫장에서 생선 손질에 여념이 없었다. 30여 년 전부터 아내와 함께 오일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는 한씨는 석곡장, 구례장, 순천 아랫장까지 3곳의 오일장을 돌아다닌다. 5일 중에 3일은 장을 돌고 이틀은 생선 작업을 한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아랫장 상인회 부회장을 맡아 전통시장의 질서와 안녕을 책임지는 봉사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순천 아랫장이 큰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질서와 체계가 갖춰진 건 상인회의 노력이 컸다. 서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자리를 지키며 장사를 할 수 있도록 설득하고 장이 열리는 날 아침이면 상인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음악과 함께 안내 방송을 해주곤 한다.

“순천은 교통 물류단지 중심지에요. 여수, 고흥, 광양, 벌교, 구례의 중심지다보니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시장은 타 지역 상인들을 배척하지 않고 함께 하고 있어요. 남원에서 오는 분도 있고 진주에서 오는 분도 있어요. 대구에서 와서 대추를 팔기도 하지요.”

천세두 순천 아랫장 상인회 회장은 “하루면 1만명 이상이 찾아오는데 고객들에게도 다양한 재미를 줄 수 있어야 하기에 여러 지역의 좋은 물건들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여수에서 나는 신선한 생선, 구례 등 산간지방의 산나물 등 다양한 먹거리를 살 수 있는 아랫장으로 많이 찾아와달라”고 전했다.

이른 아침 석곡 오일장에서 볼 수 있는 풍경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갓 쪄낸 찐빵.
◇담양의 맛·멋·문화가 깃든 창평전통시장= “이거 하나 드셔보세요. 우리밀로 만든 약과라 맛이 다를 거에요. 국산 밀가루와 조청으로 만든 약과에요.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약과 하나 드셔보세요.”

창평전통시장 초입에 자리하고 있는 약과 아주머니의 손과 입이 쉴 틈이 없다. 시장을 찾은 모든 방문객에게 약과 하나씩을 건네주며 담양 특산물인 한과와 약과를 소개하기에 여념이 없다.

담양군 창평면에 위치한 창평전통시장은 매월 5일과 10일 장이 서는 오일장이다.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100년이 넘은 전통시장으로, 예부터 대나무를 이용한 죽세공품이 많아 이를 사기 위해 중국에서 상인들이 찾아오면서 한때 전국에서 개성 다음으로 세금을 많이 내는 시장이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안타깝게도 창평전통시장은 지난 2022년 12월 화재로 많은 점포를 잃었다. 기와를 이용해 전통가옥처럼 세운 아름다운 시장이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한 달 여 만인 이듬해 1월 기존 시장 맞은편 공영주차장 부지에 마련된 임시시장으로 옮겨 지금까지 장사를 이어오고 있다. 다가오는 설이 임시시장에서 맞는 세 번째 명절장이다.

임시시장이라고는 하지만 몽골텐트 60칸이 줄줄이 이어져 제법 전통시장의 규모를 갖추고 있다. 지역에서 생산된 한과와 쌀엿, 말린 고추, 각종 잡곡류와 채소류, 말린 나물, 늙은 호박 등 농산물이 가득하고 군밤과 호떡 등 먹거리도 서운치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창평장이 활성화 된 데에는 창평국밥의 공이 크다. 과거 창평시장에는 우시장과 도축장이 있었기 때문에 신선한 재료를 구할 수 있어 국밥집이 많이 생겨났다. 창평국밥의 인기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해 국밥집을 찾은 이들의 발길이 자연스레 시장으로 옮겨져 활성화 됐다. 창평전통시장은 오일장이지만 상설시장으로도 운영된다.

/글=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실시간 핫뉴스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