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의 ‘우리지역 우리식물’] 변산반도에서 불어오는 미선나무 향기
2024년 03월 20일(수) 22:00
몇 년 전 한 식물연구기관의 연구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내게 혹시 미선나무 식물세밀화를 그린 적 있는지 물었다. 몇 달 후 미선나무 주제의 심포지엄이 열리는데 포스터와 안내책자 표지에 미선나무 그림을 넣고 싶다는 것이다. 다행히 내게는 이전에 그려놓은 미선나무 그림이 있었고, 자료를 기관에 전달했다.

식물을 기록하는 일을 하다 보면 종종 이와 비슷한 연락을 받곤 한다. 나는 특별한 사유나 경우가 아니라면 공공의 목적에선 자료를 적극적으로 제공하는 편이다. 이 자료가 나에 의해 기록된 것일지라도, 기록의 주인공은 식물이고 식물은 내 소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미선나무를 관찰해온 것은 약 15년 전부터다. 자생지의 개체는 아니고, 국립수목원에 식재된 개체로 처음 만났다. 키 작은 나무들이 모여있는 관목원에는 미선나무 세 그루가 모여 있었는데 흰색이라 표현하기엔 조금 부족한, 노란빛이 강한 미색의 꽃잎이었다.

개나리와 전체적인 형태도 꽃향기도 닮았지만 꽃색이 흰 나무. 여름이 되어 그 나무에 다시 찾아갔더니 꽃이 있던 자리에 연두색의 하트 모양 열매가 달려있었다. 열매는 시간이 지나며 연두색에서 분홍색으로 그리고 분홍색에서 갈색으로 물들어갔다.

미선나무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서만 분포하는 한국 특산식물이다. 게다가 미선나무가 속한 아벨리오필룸속 중 현존하는 식물은 미선나무 한 종뿐이다. 1속 1종의 귀한 식물인 셈이다.

사람 이름 같기도 한 미선이란 이름은 열매가 옛날에 쓰던 미선 부채 모양을 닮아 붙여졌다.

미선나무가 알려진 것은 우리나라 1세대 식물학자 중 한 분인 정태현 선생이 충북 진천군 초평면에 있는 자생지를 발견하게 되면서부터다. 하지만 정태현 선생이 미선나무를 신종 발표한 것은 아니다. 동행한 조선총독부 소속의 일본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에 의해 명명, 발표되었다. 지금으로 부터 100여년 전의 일이다.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은 한반도 특산식물 약 527종 중 327종을 명명했을 정도로 우리나라 자생식물 연구에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그를 빼고는 우리나라 식물에 대해 이야기하기 어려울 정도다. 미선나무의 학명 맨 뒤에도 명명자 ‘나카이(Nakai)’가 붙는다.

미선나무는 일본명으로 우치와노키, 우리말로 부채나무라는 이름으로 ‘동경 식물학 잡지’에 발표되었다. 당시의 기준표본은 현재도 나카이 박사가 있던 도쿄대학교 표본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러한 역사를 지녔음에도 다행히 미선나무는 우리나라의 특산식물 중 연구, 보존이 잘 되어온 편에 속한다. 진천군과 괴산군 자생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으로 시작해 후에 발견된 자생지들이 모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고 보호받고 있다.

안타까운 사실 한 가지는, 미선나무가 처음 발견된 진천 자생지는 사람들의 훼손에 의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지 몇 년 안 되어 해제되었다는 사실이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한국 특산식물 중 히어리, 백양꽃, 진노랑상사화, 변산바람꽃, 노랑붓꽃 등은 전라도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미선나무도 마찬가지다. 미선나무는 충청북도 뿐만 아니라 전북 부안 변산반도에도 분포한다.

충북에서는 매년 미선나무 축제를 열고, 자생지 근교 마을조차 미선나무 마을이라 이름 붙이는 등 미선나무를 지역의 식물로서 알리는 데 적극적이다. 그러다 보니 미선나무가 충북에만 자생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 또한 우리 지역에도 미선나무가 산다는 이 단순한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다.

미선나무 꽃은 흰색이지만 종종 분홍빛의 분홍미선나무 그리고 푸른빛의 푸른미선나무도 볼 수 있다. 꽃잎이 네 장 달린 꽃도 있고 다섯 장 달린 것도 있다. 개나리의 장주화와 단주화 개념처럼 미선나무에게도 장주화와 단주화 두 가지 형태의 꽃이 있다. 미선나무 한 그루에 담긴 이 다채로운 모습을 적어도 우리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지금 미선나무는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미선나무는 증식되어 도시 정원수로도 흔히 만날 수 있다. 다만 증식된 개체들은 자생지의 개체만큼 향기가 짙게 느껴지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심의 궁궐과 공원 등지에서 만나는 꽃나무가 오로지 우리나라에서만 분포하는 식물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미선나무를 쉬이 지나치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식물 세밀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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