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의 ‘소설처럼’] 커피를 마시며 - 박서련 장편소설 ‘카카듀’
2024년 03월 27일(수) 23:00
흔히 우리더러 배달의 민족이니 한의 민족이니 흥의 민족이니 하지만 근래에는 그저 커피의 민족이라 불러야 맞지 싶다. 여당 비대위원의 말씀에 따르자면, 어쩌면 서민은 갈 수 없는 곳일지도 모를 스타벅스만 하더라도 2023년 기준으로 1893개 매장이 운영 중이다. 그 외에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여러 커피 프랜차이즈가 성업 중이며, 그 틈새에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카페들도 명멸을 거듭한다. 어디 사 마시는 커피뿐이겠는가. 지금 방금 내린 캡슐 커피를 앞에 둔 채 글을 쓰는 중이다. 추운 겨울날 야외 활동 중에 타 먹는 봉지 커피는 그 얼마나 별미인가. 한여름 무더위에 간절하게 생각나는 것은 무엇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이다. 친구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때도 커피가 필요하고, 연인과의 데이트에도 예쁜 카페에서 커피 한잔은 기본적이다. 잠을 쫓을 때 커피를 마시고 집중하고자 할 때 커피를 마신다. 이 정도면 커피의 민족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말이다.

사실 우리에게 커피는 그 대중성만큼의 역사성을 갖고 있지는 않다. 당연하게도 커피는 개항 이후에 시작된 일부 상류층의 문화였고 그중에서도 고종의 깊은 취미였다고 알려졌다. 황제 정도는 되어야 즐길 수 있었던 셈이다. 망국의 운명이 어른거리는 엄혹한 시대, 일반 백성이 커피는커녕 흔한 엽차 한잔할 여유가 있었으랴. 커피를 즐기던 고종은 끝내 대한제국을 지키지 못했고 여러 치욕적인 경로를 거쳐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경성 거리에는 드문드문 끽다점이 생겨났다고 한다. 끽다점은 일본식 다방 킷샤텐에서 비롯된 말로 서양식 카페를 일컬었다. 처음 생긴 끽다점은 경성에 머무는 외국인과 일본인이 주된 고객이었다. 조선인은 출입이 금지되거나 눈치가 보여 쉽게 드나들지 못했다. 서구 문화가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되고 일본 유학생이 많아지면서 우리 민족에게도 서양식 카페에 대한 소구가 생겼으니, 1928년 관훈동 2층 벽돌 건물에 생긴 ‘카카듀’가 그 결과물이라 할 수 있겠다.

‘카카듀’는 조선인의 건물에 조선인의 자본으로 만들어진 조선인의 카페였다. 카페의 공동 창업자는 영화감독 이경손과 그의 오촌 조카이자 하와이에서 태어나 미국 여권을 갖고 있는 신여성 현앨리스. 짧은 영업 기간 그곳에서는 각종 문화예술 행사와 전시가 열렸고 당대의 영화인과 문인, 예술인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마치 지금 자영업자들의 위기와 마찬가지로 ‘카카듀’도 몇 달 되지 않아 문을 닫는다. 경영상의 문제였을까, 카페 주인의 변덕이었을까, 신상의 변화가 있었던 걸까? 박서련 장편소설 ‘카카듀’는 그곳의 이야기를, 그곳에 모였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곳에 모일 수밖에 없었던 청년들의 열망과 좌절을, 허무와 낭만을 그린다.

소설의 전반부는 끽다점보다는 영화 현장이 주된 배경이다. 보헤미안을 자처하는 이경손은 자주 실패하고, 그보다 자주 그만두며, 그것보다 자주 잊어버린다. 질투에 추동되지만 예술에 대한 사랑은 질투만큼 커다랗다. 망해버린 나라에 살기 때문일지도, 망해버린 나라의 사람들이 자신을 몰라 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실패의 와중에 나타난 이가 ‘신파의 얼굴’을 지닌 현앨리스다. 끽다점 동업을 처음 제안한 그녀는 뛰어난 미모와 교양으로 빠르게 가게에 자리 잡는 듯하다. 보헤미안인 이경손과 다르게 현앨리스는 코뮤니스트이고, ‘카카듀’는 그녀에게 거짓과 예술의 전당이 된다. 이경손은 모르는 무언가가, 위험한 사건이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정작 이경손은 ‘시절도 모르고 잘’ 놀고만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의 카페는 100년 전만큼 절실한 공간은 아닐 것이다. 갑작스레 종로서에 끌려가 매를 맞거나 이곳에 머물 수 없어 만주로, 상해로 떠나야 하는 청년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소설을 읽으며 자꾸만 기시감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힘주어 말한다. 나는 예술을 사랑한다고. 나는 불안하다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지금 우리는 카페에 모여 앉아 커피를 마시며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카카듀’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이 기시감의 연원을 더 생각해본다. 이 시절을, 이 시대를, 커피를 마시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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