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역사의 창’] 역사교과서의 고려·조선국경
2024년 07월 04일(목) 00:00
역사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과 공간이다. 역사왜곡이란 바로 시간과 공간을 왜곡하는 것이다. 일제가 자행했던 역사왜곡은 결국 이 시간과 공간을 왜곡한 것이고, 현재 국내 식민사학이 비판받는 이유 역시 시간과 공간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사의 시공간은 이미 흘러버린 과거이기에 ‘타임머신’을 타지 않는 한 과거로 돌아가 그 시대를 볼 수 없다. 그러나 역사학에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타임머신’의 단편들이 존재한다. 그 시대 사람들이 남긴 사료이다. 사료는 크게 둘로 나뉜다. 그 시대 사람들이 남긴 사료를 1차 사료라고 하고, 이 1차 사료를 가지고 후대의 학자들이 저술한 것을 2차 사료라고 한다. 역사해석에 더욱 중요한 것은 물론 1차 사료다.

한국사의 경우 대부분의 1차 사료들이 한문으로 되어 있기에 일반국민들이 해득하기 힘들다. 그래서 대부분의 국민들은 역사학자들이 쓴 2차 사료로 역사를 접한다. 역사학자들이 쓴 2차 사료 중에 국민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학교 현장에서 사용하는 ‘역사교과서’이다. ‘역사교과서’가 1차 사료와 다른 내용을 담고 있을 때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현재 사용하는 역사교과서는 고려의 북방에 대해서 압록강 서쪽에서 함경남도 함흥부근까지 비스듬히 사선으로 그려놓고 있다. 고려 강역은 한반도의 3분의 2 정도에 불과하다. 이를 보는 학생들은 고려는 참 볼 품 없는 나라라고 생각하게 되어 있다. ‘역사교과서’는 조선의 세종이 김종서와 최윤덕을 보내 사군육진을 개척하면서 비로소 국경이 압록강~두만강까지 확장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과거의 국정교과서는 물론 지금 학생들이 배우는 검정 역사교과서가 모두 그렇게 되어 있다. 고려, 조선의 국경은 압록강~두만강을 넘은 적이 없다. 그러나 뒷부분에 가면 1909년 일본이 청나라와 ‘간도협약’을 맺어 간도를 팔아먹었다고 비판한다. 고려~조선 1000여 년 동안 압록강~두만강 북쪽은 우리 영토였던 적이 없다. 그러면 일제가 고구려나 대진(발해)의 영토를 팔아먹었다고 비판하는 것일까?

고려~조선의 북방강역에 대해 1차 사료는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을까? 이에 대한 1차 사료로는 우리측의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 등이 있고 중국측에서는 원나라의 정사인 ‘원사(元史)’와 명나라의 정사인 ‘명사(明史)’ 등이 있다. 1368년 건국한 명나라가 고려 땅에 철령(鐵嶺)을 설치하려고 하자 분노한 우왕과 최영 장군은 요동정벌군을 조직했다. 요동정벌군을 이끌고 간 이성계·조민수가 왕명 없이 군사를 돌리는 반역을 단행해 탄생한 것이 조선이다. 그런데 모든 역사교과서는 이 철령을 함경남도 안변이라고 말하고 있다. 명나라에서 동쪽 안변에 철령을 설치하려고 하자 분노한 고려군이 북쪽의 압록강으로 갔다는 것이다. 1차 사료인 ‘명사(明史)’는 요동도지휘사사 산하의 ‘철령위(鐵嶺衛)’의 위치를 현재의 요녕성 심양(瀋陽) 남부 봉집보(奉集堡)라고 말하고 있다. 서쪽으로 요하(遼河)가 흐르는 이곳 철령이 고려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고 ‘명사’는 말한다. 대일항전기 때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 등의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이런 1차 사료를 무시하고 함경도 안변을 철령이라고 조작했고, 해방 후 국사학계(?)의 태두로 떠받들린 조선사편수회 출신 이병도는 이케우치 히로시를 “존경할만한 인격자”라며 추종했고, 현재 한국의 국사학계는 이케우치 히로시와 이병도 등이 조작한 철령을 역사교과서에 실어 우리 미래세대를 일제 식민사학의 노예로 만들고 있는 중이다.

최근 필자 등은 ‘온 국민을 위한 역사교과서’를 출간해 광복 이후 80여 년 동안 계속되어 온 일제 식민사학의 전면적 해체를 시도하고 있다. 지난 6월 25일 광주의 바른역사시민연대 주관,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등의 주최로 ‘바른역사교과서 출간기념 학술대회’가 열렸다. 역사를 바로잡지 못하면 피로 쟁취한 이 나라 민주주의는 물론 나라의 지속가능성조차 담보하기 힘들다는 절박한 문제의식의 소산일 것이다.

<순천향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