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에는 없고 광주에는 있는 것 - 박진현 문화·예향 담당 국장
2024년 08월 07일(수) 00:00
지난 5월 말, 베니스 비엔날레로 향하는 여정은 녹록치 않았다. 인천공항에서 바로 가는 직항편이 없어 헬싱키를 경유해 베니스 마르코 폴로 공항에 도착해야 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물의 도시’인 베니스 본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공항에서 수상버스로 갈아 타고 1시간 남짓 더 가야 했다.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선착장으로 걷다 보니, 문득 오래전 일본의 나오시마(直島)지추미술관을 가기 위해 배를 탔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때의 ‘고생길’과는 차원이 달랐다. 인천에서 출발해 베니스에 도착하기까지 장장 20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최종 목적지인 아르세날레 역에서 가장 먼저 이방인을 맞은 건 베니스 비엔날레의 티켓부스였다. 붉은 색 바탕에 ‘Biennale Arte 2024’라는 흰색 글자가 쓰인 4개의 부스앞은 티켓을 구입하려는 관광객 행렬로 북적였다. 주전시장인 용봉동 비엔날레관에서만 티켓을 판매하는 광주와는 다른 풍경이었다. 성인기준 입장료 30 유로(4만5000원)의 만만치 않은 가격에도 티켓은 불티나게 팔렸다.



20시간의 여정이 행복한 이유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4월20일~11월24일)는 말 그대로 명불허전이었다. 창설 129년을 맞은 최고(最古)의 비엔날레 다운 세계 최고(最高)의 면모를 체감할 수 있었다. ‘어디에나 이방인은 있다’(Foreigners Everywhere)라는 주제로 지아르디니 공원과 아르세날레에서 열리고 있는 본전시는 서구 중심의 미술지형에서 소외된 ‘아웃사이더’들이 뿜어내는 도발적인 메시지로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개막 전후 전 세계에서 수천 여 명의 저널리스트들이 ‘이슈메이커’의 진원지를 보기 위해 베니스를 찾은 것도 그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베니스의 저력을 엿볼 수 있는 건 국가관(National Pavilions)이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펼쳐지는 300여 개의 비엔날레 가운데 베니스만의 차별화된 콘셉트인 국가관은 한국을 비롯해 88개국이 지아르디니와 아르세날레에서 자국의 예술적 역량을 뽐낸다. 베니스가 자체 예산을 들여 개최하는 본전시와 달리 버버리, 샤넬, 현대 등 글로벌 기업들의 후원으로 이뤄지는 병행전시다. 각국의 자존심이 달린 만큼 전시관의 스케일이나 퀄리티는 본전시와 우열을 가르기 힘들다. 베니스 비엔날레가 미술올림픽으로 불리는 이유다.

특히 인상적인 건 도시와 비엔날레의 환상적인 콜라보다. 베니스에 발을 내딛는 선착장에서부터 카페, 레스토랑, 호텔, 관광지 등 여기저기에 내걸린 비엔날레 현수막과 조형물, 다양한 이벤트들은 수상도시를 축제의 장으로 물들인다. 유동인구가 몰리는 목좋은 곳에 자리한 홍보부스 등은 베니스 인근의 명소를 찾은 관광객들을 비엔날레로 끌어 들이는 효과를 톡톡히 한다.

현대미술의 보고(寶庫)인 페기 구겐하임미술관과의 시너지는 가히 압도적이다. 특히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는 한해 평균 50만 여 명이 다녀가는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과 연계해 전설적인 컬렉터 페기 구겐하임(1898~1979)의 화려한 소장품과 에드가 드가, 에두아르 마네, 빈센트 반 고흐, 피카소 등을 수집한 아트 딜러 저스틴 탄호이저(Justin K.Thannhauser)의 컬렉션을 유치해 ‘비엔날레 특수’를 누리고 있다.



30살 맞은 광주비엔날레, 미래는

‘판소리, 모두의 울림’을 주제로 내건 제15회 광주비엔날레 개막일이 30일 앞으로 다가왔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은 1995년 국내 최초로 국제미술축제를 표방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를 맞아 우리의 전통 음악인 판소리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소리풍경’(Soundscape)으로 국내외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여기에 올해 처음으로 베니스 비엔날레의 국가관을 차용해 도심 곳곳에 31개를 설치하는 승부수도 띄웠다. 하지만 도보로 이동이 가능한 베니스와 달리 차를 타고 움직여야 하는 지리적 여건상 비엔날레의 열기를 용봉동 전시관이 아닌 도시 전역에 퍼뜨리는 전략이 통할 지 궁금하다.

광주비엔날레는 30년의 세월이 말해주듯 광주를 대표하는 문화브랜드이다. 제1회 대회에 무려 160만 여 명이 다녀가는 신드롬을 일으켰지만 갈수록 비엔날레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국제 미술지형의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예전의 명성을 잃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창설 30주년의 위상에 걸맞은 국제미술축전 다운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129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베니스가 해를 거듭할 수록 퀄리티 높은 전시와 효율적인 운영으로 부동의 지존(至尊)자리를 지켜가고 있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제15회 대회는 비엔날레의 미래를 좌우할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특히 지역의 현실에 대한 고민 없이 선진 비엔날레인 베니스의 노하우를 벤치마킹하는 것은 보여주기식의 이벤트가 될 우려가 있다. 비엔날레를 지역의 미술·관광 인프라와 연계하는 전략 역시 관행을 답습한다면 특수는커녕 시너지 조차 기대하기 어렵다. 광주의, 광주만의 차별화된 ‘비엔날레 마케팅’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이젠 베니스에는 없지만 광주에는 있는, 뭔가를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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