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 - 박석무 다산학자·우석대 석좌교수
2024년 10월 14일(월) 00:00
역시 세월이 약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 계속되다가도 시간이 지나 새벽이 오면 동이 트면서 날이 밝아진다. 동학농민혁명이 거론되면 전봉준·손화중·김개남 등만 거론되고 정읍과 고창만 동학과 관련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알만한 사람들은 무안에도 배상옥 장군이 있어 위의 세 분에 뒤지지 않을 위대한 장군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다. 물이 흐르듯 세월은 멈추지 않고 흘러가면서, 새벽에 동이 트듯이 무안에도 동학혁명의 큰 인물들이 구전과 기록을 통해 드러나면서 밝은 태양으로 바뀌고 말았다.

무안 청계면에 달성배씨 가문의 배상옥 장군이 있었다면, 몽탄면에는 나주김씨 가문의 김응문·김효문·김자문 3형제에 김자문의 아들 김여정 등 네 분의 지도자들이 있었고, 해제면에는 최창현·최선현·최기현 3형제의 의사들이 있었다. ‘동비’ 즉 동학 반란군으로 처형당한 그들, 무서워서 후손이라고 밝히지도 못했지만, 그 긴 세월이 흐르자 이제는 혁명군 장군이나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사로 추앙되면서 현창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몽탄면 차뫼마을 앞에는 ‘동학혁명투사현창비’가 우람하게 서 있고, 해제면 석룡저에는 해주최씨 3의사 실적비가 세워져 나라를 지키려다 목숨을 잃은 지도자들을 기리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세월은 약이라고 했다.

더구나 김응문 장군의 묘소를 이장하다 마침내 김 장군의 두상 유골이 온전하게 발견되었는데, 동학역사상 최초의 유골로 국보급의 유물로, 동학혁명의 비참상을 한눈에 보게 해 주는 참으로 귀한 유물이다. 참수형을 당한 장군의 유골이 발견된 사실은, 무안의 동학혁명은 가장 진실하게 역사를 밝히는 혁명이었음을 넉넉하게 증명해 주고 있다.

더욱 확실한 역사적 사실의 하나는 배씨, 김씨, 최씨 세 가문은 이른바 무안의 양반 가문으로 유림 활동을 하던 집안들인데, 다른 지역과 다르게 무안의 동학농민혁명은 사대부 가문 출신들이 주도했다는 점에서도 매우 특이한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19세기 말, 다양한 신분 계층으로 이룩된 사회, 상류계층인 양반 가문은 혁명운동에 가담하기를 꺼린 것은 당연했는데, 무안지역은 특수한 현상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숫자를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동학농민군이 죽임을 당한 전투는 세상이 다 아는 우금치전투였다. 그런 전투에 못지않은 전투가 무안의 고막포(지금은 함평군 지역) 전투였다. 수천 명의 농민군들이 무참히 쓰러져간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왜군의 총포에 무너진 죽창부대의 무안 농민군, 그들의 억울한 죽음을 생각하면 그대로 세월만 보낼 수 없다.

이제 동이 터 밝은 태양을 맞은 오늘 무안동학농민기념사업회(이사장 박석면)가 주관하여 ‘무안동학농민혁명기념관’의 건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얼마나 훌륭한 사업인가. 관계 당국은 주저하지 말고 적극적인 도움을 주어서 하루빨리 기념관이 완공되어 위대한 지도자들의 억울함이 풀리고 민족의 역사에 빛나는 업적이 선양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는 젊은 시절 동학혁명 연구에 학문적 노력을 기울이려는 마음을 지녔었다. 한때는 동학 관계자료를 열심히 구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다산학 연구로 방향이 바뀌면서 초심을 지키지 못했다.

1971년 대학가의 교련 반대 운동이 고조되고 있을 때 그때 나는 대학원생으로 후배 대학생들과 함께 ‘녹두(綠豆)’라는 지하신문을 간행하여 대학가에 뿌린 적이 있다. ‘동학 혁명정신’ ‘제폭구민’ ‘보국안민’ ‘광제창생’ ‘척양척왜’ 등의 구호를 열거하고, 그런 숭고한 정신으로 학생운동을 일으켜 가혹한 군사독재정권을 타도하자는 내용이 담긴 유인물이었다.

사실 그 ‘녹두’는 뒷날 전남대학교 학생운동의 정신적 자양분을 제공해 준 신문이 되어 좌경 빨갱이 운동이라는 비난을 학생운동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부여해 주었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동학을 제대로 연구하지도 못했고, 나의 고향 무안의 동학운동에 관한 연구를 전혀 하지 못한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다.

척양척왜의 동학 정신이 새삼스럽게 그리운 시절이다. 제폭구민하고 보국안민해야 할 때도 지금이다. 위대한 동학혁명 지도자들이 무수히 배출된 무안에 기념관을 세움으로써 동학역사가 제대로 알려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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