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심장 대구에 울려 펴진 ‘임을 위한 행진곡’
2024년 12월 15일(일) 19:55
윤석열 탄핵집회 시작되자 ‘거리의 애국가’로 소개 한목소리로 제창
“같은 목표 이룰수 있어 뿌듯” 광주에 대한 미안함에 참석한 시민도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14일 대구 중구 국채보상로를 가득 메운 시민들이 윤석열 탄핵과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매일신문= 안성완 기자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보수의 텃밭인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지난 14일 ‘임을 위한 행진곡’(임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대구·경북 시민들은 이날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의결을 촉구하며 한 목소리로 임 행진곡을 목 놓아 제창했다.

표결을 한 시간여 앞둔 이날 오후 3시부터 대구·경북 시민들은 동성로로 발길을 옮겼다. 시민들의 손에는 ‘윤석열 탄핵’이라는 손팻말이 들려 있었다.

윤 대통령 탄핵을 촉구 하는 탄핵집회가 시작되자, 집회 사회자는 임 행진곡을 ‘거리의 애국가’로 소개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들까지 화면 속 임 행진곡 가사를 따라부르며 윤 대통령 탄핵을 촉구했다.

시민들은 “이번에는 반드시 탄핵을 시켜야 한다”며 동성로를 가득 메웠다. 시위 현장 곳곳에는 손팻말과 함께 핫팩을 나눠주는 시민들이 있었고 인근 카페에는 ‘시위에 참여하는 대구시민은 매장에서 음료를 무료로 드시라’는 공지가 붙어있었다.

시민들은 “보수색이 강한 대구지만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도 촛불시위는 열렸다. 하지만 이렇게 인파가 많이 모인 건 처음 있는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집회를 지켜보던 시민들도 “오늘 의원들 투표 잘해야겠다. 잘못하면 큰일 나겠는데”라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허명희(여·35·대구 수성구)씨는 이날 응원봉을 들고 혼자 현장을 찾았다. 허씨는 “지금까지 경상도는 보수의 텃밭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앞으로는 2030이 바꿔 나갈 것”이라고 단언했다.

2차 표결을 앞두고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제안설명에서 “1980년 광주가 2024년 12월 우리를 이끌었고 광주시민의 용기와 민주주의가 우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고 말하자 일부 시민들은 고개를 주억거리고, 고개를 떨구기도 했다.

경주와 진주, 삼천포 등 자신의 거주지에서 탄핵 집회가 열리지 않아 대구를 찾았다는 경북 시민들도 있었다.

구미에서 온 김영대(52)씨는 딸 김예서(12)양의 손을 잡고 집회에 참여했다. 김씨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어 시위에 나왔다. 주말이라고 마냥 노는 것보다 역사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느낌을 전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이돌 응원봉을 든 김양도 “뉴스로만 접하던 집회에 참가하니 느낌이 다르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박현준(49·수성구)씨도 “대구 경북에서 사는 게 부끄럽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대구에서 큰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겠지만 이렇게 수만 명이 한뜻으로 모인 모습을 보면 변화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참가 이유를 밝혔다.

광주에 대한 미안함으로 시위에 참여했다는 시민들도 있었다.

장영옥(여·61·달서구), 노성현(65)씨 부부는 이날 손을 잡고 시위에 참여했다. 노씨는 장씨의 권유로 이날 처음으로 시위에 나왔다고 했다.

장씨는 “광주를 생각하면 눈물나고 감사하다. 계엄이 선포되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두려움을 느끼면서 홀로 맞서 싸웠던 1980년 그 날의 광주시민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생각하면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이제는 대구도 부패한 보수의 심장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나라의 존립이 달려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상천(52·구미시)씨도 “광주는 떠올리면 애틋하고 미안한 도시”라며 “보수의 상징인 경상도도 많이 바뀌고 있다. 광주와 함께 민주주의를 이끌어나가며 광주에 진 빚을 갚아 나가고 싶다”고 소원했다.

오후 5시께 탄핵안 가결 소식이 동성로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에서 전해지자 시민들은 동성로가 떠나갈듯한 폭발적인 함성을 쏟아냈다.

가결 소식과 동시에 이문세의 ‘붉은노을’ 전주가 흘러나오자 저마다 손에 든 응원봉과 피켓을 힘차게 흔들며 한마음 한뜻으로 환호했다.

친구 서봉연(12·대구시 동구), 배현준(12·동구)군과 함께 집회 현장을 찾았다는 김문호(12·동구)군은 “엄마에게 말하지 않고 와서 혼날수도 있지만 아마 응원해주실 것”이라며 “잘못한 사람은 그에 따른 벌을 받아야 한다고 배웠다.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잘못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대구·경북 시민들은 가결 결과가 발표되고 전체 시위 일정이 끝난 뒤에도 날이 어둑해질 때까지 자리에 남았다.

조다연(여·22·경주)씨는 “여운이 가시질 않는다. 올해 이룬 것 하나 없다고 생각했는데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라는 커다란 목표를 다 함께 이룰 수 있어 뿌듯하게 연말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대구=김다인 기자 kd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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